커피

카페인에 대한 사람의 반응은 상당히 편차가 있는 편인데, 나는 민감한 편에 속한다.

하루 한 잔, 최소 14시 이전에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자주 마시지는 못하기 때문에 내게 할당된 1일 1잔을 싸구려 믹스커피나 기타 출처가 의심되는 커피로 채우는 것은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30대 이전에 커피에 대한 인상은 ‘큰 활력과 귀찮음을 동시에 주는 존재’ 정도였다. 굳이 찾아 먹지 않아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는, 밤샘이나 필살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정도의 존재였다.

여기서 귀찮음이란 마치 내 몸속 소화기 구조가 일직선형으로 배치된 것은 아닌가 라는 착각이 들정도의 이뇨작용에서 기인한 것이다.

30대 이후의 커피에 대한 인상은 점점, 날이 갈수록, 하루가 다르게 필수재의 위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오늘은 커피를 마셔보지 않고 업무에 집중해 보겠다”라는 다짐은 1~2시간도 지나지 않아 부질없는 도전이었음이 판명난다.

커피를 마셨을때와 마시지 않았을때의 집중도와 업무를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는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가급적 출근하자 마자 마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과거에는 주말에 커피를 마실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당연히 굳이 뭔가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주말에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활력이 없거나, 머리가 띵하거나, 쉼의 의욕 조차 상실되어가는 것을 느낌에 따라, 하루가 끝나는 시점에 스스로 보람찬 주말을 보냈노라고 자위하기 위해서라도 커피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생각에 미치자 문득 슬퍼진다.

나는 내가 지니고 있던 본연의 집중력, 삶에 대한 긍정성, 업무수행 능력 및 태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는데, 카페인이라는 한낱 화학물질 따위에 어느 순간부터 일정부분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 만의 ‘No 카페인 데이’ 따위를 지정하여 운영해 보곤 했지만, 이러한 시도는 카페인에 대한 나의 의존성을 재확인하는 계기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은 카페인에 둔감한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난 커피 마셔도 아무렇지도 않던데?”, “커피 마셔도 잠 잘오던데?”, “처음에는 한 잔이었는데 지금은 5~6잔은 마시는 것 같아” 등등의 둔화 현상은 나타나지 않기에 그점은 물론 다행스럽다.

하지만 미량, 일정량이라도  화학물질에 의존해야만 내 역량의 최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슬프게 느껴진다.

아주 작은 빈 틈 일수도 있지만, 나 자신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일정 부분 철회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러 계기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하나, 둘 철회하는 일이 분명 많아 질 것을 직감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 이 글은 카페인의 영향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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