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여장을 풀자 마자 우에노 공원으로 향했다. 첫날의 계획은 도쿄국립박물관과 도쿄도미술관, 둘째날은 국립서양미술관이었다. 모두 우에노 공원이었으므로, 처음 이틀간은 우에노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고려하지 않았다.
우에노 공원 스타벅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 10위 안에는 못들어도 35위 정도 안에는 충분히 들어 갈 것 같다.
국립박물관에서는 그리스문명전이, 도쿄도미술관에서는 퐁피드센터 타임라인 전이 열리고 있었고, 두 특별전 모두 정확히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미술사적인 의미가 큰 전시였으므로, 그래도 나름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의 첫 전시로 그리스문명전에 들어갔다. 일본의 어느 공공시설물에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잠금장치 달린 우산 꽂이대가 인상적이다. 이렇게 장우산을 꽂아놓고 들어가면 손도 자유롭고 안전사고 우려도 없어진다.
그리스문명전에서 느낀 첫번째 인상은 노인이 많다는 것이다. 이른 오후 시간이었기에, 젊은이들은 학교나 직장에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일본의 고령화는 이미 잘 알려진 바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노인이 상당히 많았다. 최소 60대 이상의 노인이 관람객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남는 시간이 넘쳐서 시간을 때우러 온 것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오디오가이드를 경청하면서 메모를 하고, 안경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모습이 매우 진지했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조용했다. 심지어 내 옆에 서있던 어르신의 배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에 내가 다 신경이 쓰일 정도로 조용했다. 이렇듯 조용한 관객에 대한 일본에서의 인상은 노인에게서나, 나중에 보게된 중학생 아이들에게서나 마찬가지였다. 관람객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들 노인들은 과거 일본의 전후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세대다. 하지만 이들이 오로지 경제성장에만 경도된 것은 아니었나보다. 문화예술이 주는 풍요로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하나라도 더 머리와 가슴에 담으려는 진지한 마음이 전해졌다.
전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높은 수준이었다. 조각, 벽화, 장신구, 도자기 등 종류별로 다양한 미술품이 단조롭지 않게 잘 혼합되어 전시되어있었고, 문명별, 시대별 구분도 명쾌했다. 사실 2천년이 넘는 유구한 시간동안 풍화작용과 전쟁, 자연재해로 인하여 고대 그리스 미술의 상당수가 소실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다수의 서양미술사 교과서에는 우리가 그리스 미술에 대해서 조잡하다고 느끼는 인상의 대부분은 후대 로마시대에 넘쳐났던 그리스 미술작품의 복제품 때문에 비롯된 인상이라는 설명이 종종 등장한다. 그정도로 희귀한 고대 그리스 미술작품들이 지구 반대편에 해당하는 일본에 이렇게 많이 날아올 수 있었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는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 모작을 꼽을 수 있는데, 이번 전시의 몇 안되는 모작이었지만, 파르테논 신전을 뜯어서 들고 올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파르테논 신전이 건축학, 미술사학적으로 갖는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할 수 없는 구성이었을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신전의 나머지 모습을 알 수 있도록, 즉 모작이 어디에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전체 건물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구성해 놓고 그 안에 프리즈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일부 부조 작품에서도 소실된 전체를 알 수 있도록 작품의 외부에 확장되는 일러스트를 그려 놓았었는데, 전시장에 떨어져 있는 일부로서가 아니라, 본연의 위치에서 그 작품이 어떠한 가치를 점하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스파르타의 조각들도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스파르타의 이미지는 영화 300을 필두로한 각종 미디어 매체의 영향으로 강하고, 우락부락하고, 글자 따위는 쳐다도 안볼것 같고, 무언가 세밀하게 조각하거나 그리는 사람이 있으면 우르르 몰려들어서 구타라도 할 것 같은 상마초 무식쟁이들의 이미지였지만, 그들의 전쟁영웅 조각은 매우 작고 섬세했으며 아름다운 육체에 대한 찬사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가장 문예에 뒤쳐지는 것으로 알고 있던 그들에게도 이런 아름다움이 있었다는 것이 이례적으로 다가오면서 더욱 강한 인상을 받았다.
도쿄국립미술관의 상설 전시도 있었지만 자국 유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 밖이었고, 앞으로의 전시를 위해서는 체력을 유지해야 했기에 도쿄도미술관으로 이동했다.
포토존 판넬의 캐릭터 뒷 면에는 저 캐릭터들의 사실적인 뒷통수가 그려져 있다. 별 것 아니지만 그렇게 세심하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