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고 스타 내한공연 (잠실실내체육관)

링고 스타의 내한공연 소식은 비틀마니아들의 SNS를 타고 은밀하게 퍼져나갔다. 폴 매카트니 때 처럼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은 다 뒤집어 질 정도의 파급력은 절대 아니었다. 나도 인스타 친구의 게시물을 통해 그 소식을 접하고, 주저 없이 예매를 하긴 했지만, 기대에 벅찬 예매였다기 보다는 사실 약간의 쓴 웃음과 함께였다. 폴 매카트니 내한공연의 성공이 아니었다면 이 이벤트가 성사될 수 있었을까? 라는 (베베 꼬인) 생각을 하며…

공연은 생각보다 좋았다. 링고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찼고, 건강했고, 발랄했고, 전성기 목소리 그대로였다. 물론 그가 끊임없이 투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잘 “관리된” 상태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내가 어줍잖게 공부했던 바로는, 링고는 사실 음악에 대한 열정 보다는 무비스타, 셀렙이 되고 싶은 열망이 강했던 멤버로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 정도로 폼을 유지하고 있다는게 비틀마니아로서 고마웠다. 어쨋든 생존해 있는 두 멤버 모두 비틀즈 멤버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고 음악에서 손을 놓고 있지 않다는게 고마웠다.

비틀즈의 음악에 한창 빠져 있을 당시, 나는 링고의 노래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특유의 나른함, 태평함, 긍정성, 천진난만함이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난 뭔가 심오한(=남들과 다른척 하기 좋은) 것을 좋아했고, 그도 아니면 차라리 Penny Lane과 같은 노골적인 팝을 원했다. 링고의 나른하면서도 귀엽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세계는 나와 다른 세계로 인식하고 있었고, 플레이 리스트 중에서도 그다지 집중할 필요 없는, 쉬어가는 곡들로 치부했다. 물론 그가 락 드러밍의 기초를 쌓는데 매우 큰 공헌을 한 아티스트이자, 비틀즈의 8년 간의 음악 행보를 가능하게 한 윤활유 같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은 백번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이번 내한공연도 3층으로 예매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가급적 공연장에서 만큼은 타이타닉 삼등석 같은 서러움을 겪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좋은 자리에 집착하곤 했지만, 굳이 링고에게까지 그렇게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선택은 옳았다. 링고의 노래는 여전히 나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지 않았다. 다만 생존해 있는 비틀즈의 목소리를 모두 들었다는 성취감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감동받았던 콘텐츠는 사실 링고의 것들이 아니고 토토의 레파토리였다. Rossana, Africa, Hold the Line 으로 이어지는 토토의 3대 히트곡 레파토리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꽉 짜인 락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작년에 한창 빠져 있었던 토토의 음악을 저런 최고 수준의 세션으로 원작자의 의도에 가깝게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산타나 레파토리도 즐거웠다. 산타나는 내가 지금 내한공연을 고대하는 아티스트 순위로 따지면, 콜드플레이, 드림씨어터, 토토에 이어 4위 쯤에 위치하기도 하지만, 특히 연주곡 중간에 스페니쉬로 추임세 넣는 것을 라이브로 보니 그 특유의 정열적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꼭 내한 왔으면 좋겠다.

공연은 계획된 대로 앵콜 한 곡 조차 없이 칼같이 끝났고, 감정적 전이지대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하게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늦가을 바람을 맞으며 잠실실내체육관을 나서서 집에 오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 공연은 가성비 측면에서 최고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10만원을 내고 비틀즈와 토토, 산타나의 라이브를 한 자리에서 접한 것 아닌가. 그것도 해당 밴드의 전직 멤버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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