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그린 화가, 호안 미로 특별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정말 미칠 듯이, 심각하게 더웠던 지난 여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호안 미로 특별전에 다녀왔었다.

호안 미로에 대해서 아는 바는 거의 없었다. 그의 이름이 증명하듯 스페인 출신이라는 것 밖에는. 미술사 책을 통해서 현대미술 챕터에 도판 하나 정도는 보긴 했지만 어떤 화가인지 정확한 설명은 없었기에 그냥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현대미술에 여전히 공포를 갖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마 개인적으로 아무런 계기가 없었다면 이 전시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어떤 사람을 알게 됐는데, 그 사람이 스페인에 여행갈 계획이 있다기에 아는 척 하려고 호안 미로와 스페인 미술의 특성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늘어 놓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다음번 만남을 거기서 갖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었음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지만, 어쨋든 난 호안 미로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인연은 사라졌지만 예술에 대한 감상은 내 마음에 남아있기에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억지로라도 거장들의 특별전을 보는 것은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 유사한 사례가 2015년 초에 봤던 조르지오 모란디 특별전이었는데, 모란디 작품의 진가에 대해서 나중에 더욱 깊게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을 다시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 되면서 거기에 갔던 과거의 내가, 그리고 나를 인도해 줬던 사람이 뒤늦게 매우 고맙게 느껴졌었다.

어쨋든 호안 미로 전에는 다양한 시기의 작품이 매우 폭넓게 전시되어, 그의 지치지 않는 정력과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시시각각으로 인생의 궤적으로 경험하는 것들이 그대로 그의 예술 속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쭉 늘어놓고 보면 이게 정말 한 사람이 창조한 예술적 스펙트럼인가, 하는 놀라움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별, 새, 여인, 해와 같은 공통적인 모티브는 평생에 걸쳐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잔틴 미술과 스테인드 글라스, 일본 미술, 초현실주의, 야수주의 등 그때그때 그가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고유의 예술 세계와 결합되어 새로운 양식으로 창조되는 것을 보면 무엇이 거장을 만드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가 일본에 방문하고 나서는,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아서 새하얀 세계들을 창조하기 시작한다. 새하얀 세계에 굵고 거친 선이 들이 되고 산이 된다. 빨간 원은 해가 된다. 또 몇 번의 터치로 새가 창공에 날개를 편다. 이처럼 무한한 공간 속에 몇 개의 선으로 세상을 표현하는, 우리가 흔히 여백의 미라고 이야기 하는 동양 미술의 특징을 창조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서양 미술의 전통에 입각해 있던 그에게 캔버스를 그대로 비운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것이다. 심지어 절대주의를 제안했던 말레비치도 네모와 원이 그려진 하얀 배경은 하얀 물감으로 칠하지 않았던가? 그는 비움 속에 정신을 드러낸다는 관념을 수용하고, 그 관념 안에 고유의 미적 아이콘들을 반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양 미술에 미친 일본 미술의 끊임 없는 영향이 여기 저기서 발견될 때 알 수 없는 부러움과 질투가 계속 치밀어 오른다..)

스페인 미술의 특성은 흡입력이라고 본다. 카톨릭, 기독교, 이슬람의 복합적인 문화를 골고루 수용하면서 발전해 왔던 민족적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호안 미로 특별전에서 그러한 스페인 미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다.

작품 외적으로는 그의 아틀리에를 복원해 놓은 공간이 시선을 끌었다. 최근의 전시들을 보면, 이렇게 작품 외적으로 작가의 삶을 느낄 수 있도록 독창적인 콘텐츠들을 마련하는 것이 주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독창적인 콘텐츠를 구성해 놓고, 관람객은 그것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마케팅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또 그 세계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러한 콘텐츠는 앞으로 더욱 강조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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