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에 현지에서 공연했던 ‘미스사이공 25주년 특별 공연’이 개봉했다. 소위 ‘4대 뮤지컬’이라고 포장되는 작품 중 막내 격인 미스사이공도 초연한지 25년이나 지났다.
(사실 카메론 매킨토시 경이 제작한 80년대 태생의 작품들을 4대 뮤지컬로 묶어 버리면, 그 시기 전후의 주옥같은 작품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해진다. 따라서 차라리 ‘매킨토시의 4대 뮤지컬’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 4대 뮤지컬을 능가하는 작품이 그 이후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매킨토시 4대 작품 중 레미제라블은 10주년, 25주년에 기념 콘서트를 했었고, 오페라의 유령도 25주년 콘서트를 했었다. 이들 공연의 영상을 보았기 때문에 미스사이공 25주년 콘서트도 비슷한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그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지금까지는 레미제라블 10주년 콘서트를 능가하는 단일 공연은 뮤지컬 역사상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미스사이공 25주년 공연은 이를 능가하지는 못할지언정, 좀 다른 측면에서 새로운 금자탑을 쌓는 의미가 있었다. 그 다른 측면은 영화적인 연출이다. 내가 기대한 갈라콘서트는 동작을 최소화하고, 음악의 완성도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확장된 오케스트라, 백업 합창단 같은 요소들이었는데, 이번 미스사이공 25주년 콘서트는 그냥 뮤지컬 그 자체였다. 뮤지컬 그 자체를 연기와 음악,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정석대로 보여주는데, 배우의 감정과 동작을 따라가는 클로즈업과 카메라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영화적인 터치를 가미한다.
우리가 뮤지컬을 볼때는 고정된 시점에서 보게 되어 있다. 좌석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뒤로, 옆으로 움직이면서 보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런데 이 영상에서는 대형스크린으로 얼굴만 크게 잡아서 감정의 절정에서 또르르 흘러 내리는 눈물을 보여준다거나, 배우의 동선을 스피디하게 따라가면서 역동적인 무대의 변화를 디테일하게 잡아준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한 편의 뮤지컬 실황을 봤다, 라기 보다는 한 편의 뮤지컬영화를 봤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여기에는 사실적인 세트, 의상, 소품도 한 몫 했다. 뮤지컬영화 팬으로서, 미스사이공을 대작 ‘전쟁+로맨스’ 뮤지컬영화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생각은 사라져버렸다.
사실 미스사이공을 영화로 제작해서 이번 영상 보다 예술적 완성도가 높거나, 더 큰 감동을 줄 확률은 없다고 보면 된다. 영화화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음악의 생략은 수 많은 뮤지컬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고, 어떤 최고의 배우를 캐스팅하더라도 이번 영상 속에 등장하는 2014년 웨스트엔드팀의 기량을 능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량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팀의 기량이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새삼스럽게도 다시 한 번 감탄에 또 감탄을 멈출수 없었다. 특히 킴은 매우 청아하고 깨끗한 이미지와 목소리로 급속도로 진행된 사랑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냈고, 빨간머리 앤 가사에 나오듯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것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엔지니어는 진짜 엔지니어였다. 엔지니어 그 자체라는 말 외에는 어떤 수식어도 불가능할 정도로 사실적인 캐릭터 해석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소름 돋는 노래를 들려준 것은 주연들이 아니라 지지였다. 스페셜 피날레 갈라 파트에서 지지가 레아 살롱가와 함께 “The Movie in My Mind”를 불렀는데, 그 보컬의 처연한 감수성과 압도적인 힘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스크린과 스피커를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정말 소름끼치는 것은, 이 공연이 배우들이 고정적으로 서서 노래를 부르는 일반적인 갈라콘서트가 아닌, 거의 100% 수준의 동선과 연기가 포함된 실제 뮤지컬 공연의 실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황 레코딩 음반의 수준이 기존의 어떠한 갈라콘서트 실황에서의 그것 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지금도 듣고 있지만… 믿을 수 없는 품질이다…
배우들의 기량 측면에서 짚고 넘어갈 또 한 가지. 난 사실 미스사이공 공연을 보지 못했는데, 원래 이렇게 키스신이 많은 건지… 놀랐다. 몇 년 동안 연습과 공연을 이어가면서 이렇게 많은 키스와 사랑 노래를 나눈다면… 배우들 간에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노래 중간중간, 쉼표 마다 키스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호흡이 하나도 달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정말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배우들이다.
작품의 내용 면에서는 할 말이 없다.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작품이지만, 그 논란 중 어느 하나도 나의 감상을 발해하지 않았다. 기술적 완벽함은 모든 것을 상쇄한다.
음악, 연기, 노래, 무대, 촬영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실황 영상이었다. 그동안 미스사이공 한국 공연은 오리엔탈리즘과 인종적 차이에 따른 표현의 한계 등 이런저런 핑계들로 외면했었는데, 다음에 하면 꼭 봐야겠다. 비교하지 않으려 노력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