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슈퍼소닉

난 영국 락음악을 좋아한다. 비틀즈를 필두로, U2, 퀸, 콜드플레이, 스크립트, 킨 등등.. 영국 및 아일랜드의 락 밴드들은 뭔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미국과는 다른 감성이 있다. 마치 그것이 깊이인양 착각하게 하는… 마냥 명랑해야 할 것 같은 팝에서도 그런 감성을 느낄 수 있다. 파이브, 웨스트라이프, 보이존 등 보이밴드지만 어딘가 모르게 아티스틱 했다.

하지만 브릿락의 대표주자들이라 할 수 있는 라디오헤드, 블러, 트레비스, 오아시스는 내 취향과 약간 거리가 있는 밴드들이다. 이들의 어떤 부분이 내 취향에 부합하지 않는지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난 아마 좀 더 쉽고, 교과서적이며, 정제된 사운드와 하모니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오아시스의 전기 다큐멘터리 ‘슈퍼소닉’을 보았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비틀즈의 다큐멘터리는 놓쳤으면서 오아시스는 챙겨 봤다는게 아이러니다. 별로 친하진 않은 친구지만 그래도 친해지면 언젠가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약간은 의무적으로 만남을 가진 그런 느낌이었다.

요즘 자연, 과학, 예술, 시사를 막론하고 다큐멘터리 수준이 상향평준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예상보다 훨씬 퀄리티가 높은 다큐멘터리였다. 아마 겔러거 형제가 직접,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풍부한 인터뷰 및 멀티미디어 자료들이 오아시스 마니아들을 열광케함은 물론, 입문자에게도 훌륭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명곡들은 알고 있지만, 앨범 단위로 오아시스를 들은 것은 아직 1집 뿐이라서 모르는 노래들이 엄청 많이 나오면 어떻게 하나.. 살짝 걱정이긴 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결성부터 2집 발매 후 까지의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70% 가까운 분량은 1집 발매 전후의 이야기들이었다. 2집 발매 후의 이야기들도 대체로 음악 마니아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명곡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몰입에 어려움은 없었다.

누가 리암이고 노엘인지도 구분하지 못했던 나에게 이번 다큐멘터리는 음악 라이브러리의 한 켠을 그들에게 내줘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였다. 당장 오늘부터 2집을 듣기 시작했는데, 그들과 친해지고 나서 그런지 거친 외침들이 그냥 거칠게만 느껴지진 않았고, 마치 고독과 상처를 덮기 위한 나약한 젊은이의 방어기제처럼 들렸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꼽으라면, 리암의 공허한 눈빛을 꼽고 싶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사운드, 끝이 보이지 않는 객석의 함성, 그리고 그들이 내뿜는 텁텁한 수증기가 공연장을 가득 매운다.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무대 앞으로 나아간 리암은 자신의 음악에 홀려 유영하는 산호초처럼 나풀거리는 수 천, 수 만의 군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모든 소음과 시간마저 사라진 것 같은 순간을 맛본다. 오직 우주 속에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무대 위에서의 활홀감, 그것에 도취된 순간을 절묘하게 잡아냈다. 가장 큰 쾌락의 순간에 가장 큰 공허함을 동시에 발산하는 것 같은 그 처연한 눈빛을 담은 것만으로도 이 다큐멘터리는 충분한 지불가치를 지니고 있다. 비록 오아시스 팬이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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