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의 여인 展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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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르누아르의 여인 전은 한가람미술관의 오르세미술관 전과 마찬가지로 ‘2016 한-불 수교 130 주년’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르누아르의 핵심적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고찰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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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작품의 수준은 솔직히 말해서 높지 않다.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네임 벨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예술에는 서열을 매길 수 없지만, 대중의 기대치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대표작’이라는 폭력적인 단어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제는 단순히 유화 작품 몇 개를 카테고리에 따라 배열해 놓고 포토존 하나 설치해 놓는 수준으로 예술애호가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차별화된 콘텐츠가 있어야 하며, 예술가와 관람객이 이번 전시를 통해서 감정적으로 교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아니면 예술가의 시선으로 현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사색의 기회와 통찰을 제공해야 한다. 르누아르가 그린 ‘여인’, 그 밝고 아름다운 판타지 세계에서 그런 것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수준 높은 작품들의 향연에 흠뻑 취한 관람객이라면 그런 비판은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관람을 마치고 의무방어전을 치루듯이 엽서 2~3개를 사서 나오는 뒤통수가 어쩐지 헛헛하여 발걸음을 주저주저하면서 마지못해 락커에서 짐을 꺼내다 보면 이런저런 별 생각이 다 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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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작품은 네임 벨류에 비하면 찾기 쉬운 편이다. 우리가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법한 미술관에는 어지간하면 그의 작품이 한, 두 개 정도는 있다. 나도 미술관에 찾아다닌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상당한 수의 르누아르 작품을 접했다. 그의 작품은 어디에 가져다 놓아도 관람객들을 행복하게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 미술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고난을 겪는 난해한 구간에 그의 그림을 걸어주면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고 “미술은 어렵지 않아요”라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아마 그래서 많은 콜렉터들이 그의 그림을 탐냈는지도 모른다. 혹은 사업가와 자산가들이 사모님에게 선물하기 좋은 예쁜 그림이라서 많이 퍼진 것 일 수도 있다. 어쨋든 그만큼 그의 전시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는 높고, 익숙한 이미지 몇 개는 꼭 직접 만나기를 원한다. 그런 기대치에 꼭 부응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간판스타라는게 괜히 중요한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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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의미는 르누아르의 한글 표기법이 ‘르누아르’라는 것을 배우는 계기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피에르가 아닌, 장-오귀스트 르누아르라고 착각할 때가 있었는데, ‘장 르누아르’는 그의 아들이라는 것도 이제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건 지나친 비약이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루시베라르의 초상, 하얀 덧옷을 입은 소녀(1884)(그림보기)’ 였다. 르누아르의 초상화 중에서 이토록 고전적으로 얼굴을 처리한 작품을 보지 못했다. 물론 고전적이라고 해봤자, 앵그르 보다는 벨라스케스에 가깝지만, 그 얼굴의 온화하고 매끄러운 텍스쳐가 신선함을 주었다. 얼굴 뿐만 아니라 갈색과 회색이 섞여 있는 신비로운 머릿결에서도 벨라스케스 같은 섬세함이 느껴진다. 또한 이 신선함은 흰 옷을 그릴때 사용된 전형적인 인상주의적 터치와 대비되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 하얀 덧옷의 거친 촉감과 얼굴의 섬세한 마무리의 대비는 프란스 할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편 머리 꼭대기의 리본 장식과 검정 옷에서 사용된 붉은 색은 소녀의 창백한 혈색을 위 아래에서 감싸며 효과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소녀는 이질적이고 어두운 공간 속에 둥둥 떠올라 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데, 그 눈빛의 처연함 때문인지 혹은 모호함 때문인지 언제까지나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을 것만 같다.

결론적으로 이 소녀의 엽서는 물론이오, 머그컵까지 샀다(12,000원). 그 어떤 전시나 세계적인 미술관에서도 머그컵의 유혹으로부터 지갑을 굳건히 지켜왔던 내가 그녀의 처연한 눈빛에 투항하고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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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전광수 커피의 아인슈페너는 생각보다 맛이 없다. 단 맛이 인위적이며, 크림이 순두부처럼 뭉쳐서 커피와 어우러지지 못한다.)

+

요즘은 에드워드 호퍼를 읽으며 그의 전시가 열리기를 고대하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그가 찾아 올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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