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016)

심각할 정도로 정직하게 독음한 한국 제목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전형적인 국내파인 나 로 하여금 당연히 영국의 맨체스터를 연상케했다. 당연히 영국영화인 줄 알았다. 그래서 영화 시작과 동시에 기대했던 영국 발음이 들리지 않는 것에 상당한 의아함을 가지게 되었고, 10분여가 지나고 나서야 미국영화일 수도 있겠다는 심증이 굳어졌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부족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상하게 남자주인공이 밴 애플렉을 닮았다. 그래서 뭐지… 밴 애플렉이랑 형제라도 되나… 이런 생각을 영화 끝날때까지 했는데 맞았다. 영화가 끝나자 마자 검색을 해보니 그가 밴 애플렉의 동생이란다. “크… 나의 사람 보는 눈은 역시 정확해”, 라는 아무런 쓸데 없는 도취와 “너무 사전 지식 없이 영화 본 거 아니야?”라는 자책이 혼재되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나서는 “이런 중견배우를 몰랐단 말이야?” 라는 자책이 추가되었다.)

어쨋든 음악영화, 뮤지컬영화, 혹은 미술 및 기타 예술에 관한 영화가 아니면 이 곳에 리뷰를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 영화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굉장한 차별성(강점)을 지니고 있는 영화인데, 첫째는 케이시 애플렉의 연기이고, 둘째는 유머의 활용이다.

누구라도 케이시가 맡은 리(Lee 겠지?)라는 배역을 맡을 수 있었겠지만, 그만큼 잘 소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케이시가 시종일관 보여준 ‘영혼 없는 남자’ 연기는 중반부까지 관객들로 하여금 감독이 의도한 것이 분명한 의아함을 충분히 유도한다. “뭐지, 저 남자는 왜 저렇게 영혼(맥아리 or 의욕)이 없지?” 영화를 보는 관객은 당혹스러움 속에 이러한 의문을 품게 된다. 물론 그의 뼛속까지 각인된 깊은 상처가 서서히 밝혀 지고 그때부터 우리는 이 남자의 아픔에 자연스럽게 동참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케이시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약간 모자라지만, 쾌활하고, (동성)친구들한테는 인기 좋은, 맥주 엄청 밝히는 초보 유부남과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엄청난 상실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무너지기 직전의 남자를 오가는 동안 관객으로 하여금 의심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감정에 동화되게 만든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특히 그의 ‘영혼 없는 눈빛’ 연기는 그간 봤던 어떤 ‘영혼 없는 눈빛’ 보다 더 영혼 없어서 나 자신의 영혼까지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영혼 없는 남자연기상 부문이 있다면 무조건 수상이다.

영화가 유머를 활용하는 방식은 여태 보지 못했던 방식이다. 과거의 상처, 가족이라는 진하고도 징한 인연, 살점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과 상실감,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계속되는 오해속에 틀어지기만 하는 관계, 그 총체적인 역경 속에 짖궂은 웃음 포인트가 켜켜이 녹아들어 있다. 처음에는 지금 이 상황에서 웃어도 되는건가? 이게 감독(작가)이 의도한 유머 맞나? 확신이 들지 않아서 주저주저 “풉”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하지만 주인공의 형인 조가 병원에서 진단을 받는 그 심각한 장면에서 인물들 간의 수준 낮은 만담을 듣노라면, 우리는 이 영화가 유머를 활용하는 방식이 이런 것이고, 이게 모두 의도된 유머라는 것을 간파하게 된다. 그때쯤 되면 더 크고 자신감 있게 웃을 수 있게 되고, 그 어떤 코미디 영화보다 더 많이 웃게 된다.

그 모든 유머들이 자신감 있게 웃으라는 감독의 명백한 의도였다는 사실은 ‘엠뷸런스 이송’ 씬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인간 본연의 공감능력에 의거하여 처절한 슬픔에 이입되려 했던 감정선은 금새 무너지고 “감독 양반, 이게 무슨 고약한 장난인가”, 라는 생경한 감정을 느끼지만, 이내 우리의 입꼬리는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유머를 블랙코미디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지 확신이 잘 서지 않는 이유는 딱히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즉, 이런 유머는 처음봤다.

이상의 차별성 외에도 기본기 자체가 탄탄한 영화이다. 인물의 갈등과 화해를 묘사하는 방식은 절대 식상하거나 촌스럽지 않고, 과거의 상처에서 극복되는 과정에 있어서 섬세한 감정 변화도 촘촘하게 표현되었다. 빼어난 연기와 섬세한 감정묘사, 거기에 당혹스럽기까지한 유머의 양념이 적절하게 배합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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