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은 그것을 집어삼킨 모체, 페이스북과는 또 다르다. 그것은 태생부터 감성이 점철된 사진, 그 시각적 이미지에 의존하였으므로, 개별 유저들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단면을 보여주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최근 여러 차례의 업데이트를 거쳐 유저들이 페이스북에서 진저리를 쳤던 성가셨던 요소들을 답습하려하는 경향이 느껴지지만, 대세인, 쿨한, 핫한, 감성적인, 뉴제너레이션을 위한 SNS라는 인스타그램의 아성은 아직 건재하다.
최근 몇 년 새, 인스타그램이 전시 문화, 나아가 대중문화 전반의 양상을 서서히 바꾸어 놓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이제 대중의 주머니를 털겠다는 굳건한 일념을 품은 컨텐츠 기획자들은, 단순히 관람객의 ‘보는 즐거움’을 만족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는 관람객의 관람객까지 만족시켜야 한다. 관람객은 자신의 경험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재해석하여 또 하나의 시뮬라크르로 세상에 내어 놓는다. 이제 내면의 감상은 예술적 체험에 있어서 본질의 지위를 상실한다. 내가 느낀 것, 그리고 느껴서 내 놓는 것, 모두가 본질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클림트 인사이드 展’은 트렌디한 전시이다. 전시장인 S-FACTORY가 위치한 성수는 ‘대림창고’의 개장을 신호탄으로 이태원,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열망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주인장 개인의 취향이 넉넉히 묻어나는 핫한 카페, 펍, 갤러리, 컨셉트스토어 등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았고, 건대입구 상권과 커먼 그라운드에서부터 이어지는 완연한 청춘과 자본주의의 냄새가 공업소와 수제화로만 알려졌던 이 동네까지 스멀스멀 미치고 있는 중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창고나 공장의 골격을 그대로 활용하여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인근에 위치한 대림창고의 컨셉트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전시 자체만 놓고 보면 특별할 것은 전혀 없다. 신개념 미디어아트로 포장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과 달리 3D, VR, AR 같은 신기술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그냥 클림트의 작품을 영상, 또는 슬라이드로 재해석하여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스크린이나 구조물에 띄워주는 것이다. 영상, 음향이 복합적으로 클림트의 명작을 재조명해주고 있고, 여러 프로젝터가 일사분란하게 하나의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만할 뿐, 그 밖의 인사이트는 얻기 힘들다. 컨텐츠 수도 부족하다. 클림트를 사랑하고, 이 전시를 보기 위해 1시간 가량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여 찾아왔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은 기념품을 판매하기 위한 큰 그림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가 순항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 앞서 언급한 인스타그램의 영향일 것이다. 이 전시는 플래쉬를 터트리지 않는 촬영을 허가하고 있고, 어두움 속에서 명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미디어가 발산하는 빛은 다분히 ‘있어 보임직한’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 자신의 치부를 교묘하게 덮어버릴 수 있는 최적화된 조도는 덤이다. 결정적으로, 나만 빼고 다들 쿨하고 핫한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추정은 현대인으로 하여금 내면의 문화적 절박감을 유발한다. 또한 관람객 입장에서는 자아 깊숙한 곳에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던 관람도 멋지게 포장된 인증샷과 피드백을 통해 충분히 유쾌하고 보람있었던 경험으로 포장되어 내면의 불만족을 왜곡해 버리는 경향이 종종 나타난다.
결국 이제는 어떤 전시를 통해 딱히 감동 받지 않아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 감동은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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