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아틀리에 STORY 展 (예술의전당 – 한가람디자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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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가 흩날리는 주말, ‘현대미술의 거장 14인’이라는 다소 과도한 포장에 이끌려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을 찾았다. 여러 전시 중에서도 귀한 휴가를 할애하여 이 전시를 찾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동시대 우리나라에서 평단과 대중의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대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컸다. 전시에 출품한 14명의 화가 중 단 몇 분의 이름만이라도 새겨갈 수 있다면, 현대 국내 작가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한 나에게 있어서 미술 감상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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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주최한 skyA&C는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예술) 전문 방송 채널이다. 이름을 보면 아마 스카이라이프와 모종의 지분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한데, 나는 이런 방송사가 있다는 것도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skyA&C에서 심층 취재했던 작가들 중 14인을 선별하여 그들의 대표작들을 보여주는 형태로 기획되어 있다. 방송과 작가의 접점이 전시의 계기가 되었던 만큼, 전시의 각 섹션에서는 skyA&C가 담았던 화가의 작품활동, 인터뷰, 아틀리에의 모습 등이 모니터로 상영되면서 화가에 대하여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었다. 담담하면서도 생생하게 작가의 목소리와 작품 활동을 담아내고 있는 그 자료화면들을 보니 <인생극장>, <그것이 알고 싶다> 외에는 TV 프로그램을 거의 시청하지 않는 나에게도 해당 채널에 대한 시청 욕구가 샘솟았다. 만약 지금 나에게 skyA&C를 지원하는 TV가 있다면, 아마 당분간 대부분의 시청 시간은 이 채널로 고정해 놓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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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화가 14인의 대표작들은 물론 아틀리에의 재구성을 주요한 콘텐츠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아틀리에를 찾아가는 skyA&C 콘텐츠의 본질을 실제 공간 속에 재구성해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최사가 중점적으로 소구하는 콘텐츠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면서도 작품의 뒷이야기들, 영감의 원천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게 마련인 미술 애호가들의 호기심도 적절히 충족시킬 수 있는 바람직한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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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품한 작가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였으므로,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작품 본연의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한국의 현대화가들’이라는 제목의 베스트 앨범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작가는 김남표, 구자승, 강형구였다.

김남표 작가는 목탄으로 섬세하게 표현된 초현실적 풍경을 보여주었다.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의 공존’을 보여주면서도 먹이나 여백, 그리고 건축물과 소재에서 느껴지는 동양화적 모티브를 강조하는 그의 화풍은 마치 르네 마그리트나 달리가 오늘날 한국에서 환생한다면 그릴법한 이미지라는 느낌을 주었다.

위풍당당한 백호, 깃털이 화려한 새가 거대한 캔버스에서 튀어나올 것처럼 관객을 압도하지만, 실질적으로 압도하는 것은 작품의 물리적인 크기나 소재의 신비스러움이 아니라 표현의 섬세함과 정교함이었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한번 보고, 재원을 다시 보면 과연 ‘목탄으로 이러한 세밀한 표현이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지만, 가까이에서 세밀하게 다시 들여다보면 목탄, 콘테가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윽고 대가다운 정점의 표현 기술과 집념에 절로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구자승 작가는 사실주의적 정물화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인물화에 있어서도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절정의 원숙함을 보여준다. 그의 정물화는 정갈하고 빈틈없으며, 밝은 색채 속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것 같은 물성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조르지오 모란디가 추구했던 단순한 기하학으로 대체된 물질들의 아름다움이 여기서는 유사한 톤으로, 하지만 전혀 다른 세밀함과 구체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흡사 오래된 필름카메라, 그것도 거장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사랑 받으며 길들여진 것 같은 최고급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느낌을 준다. 만약 이 그림이 정말 사진이라면, 그 사진을 찍은 스튜디오도 일견 평범해 보이겠지만 사실은 조명 한 줄기에서부터 찰나의 공기 흐름까지 그 무엇 하나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은 것이 없는 그런 곳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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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수이 스쳐지나가버릴 어느 요소 하나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구도, 명암, 표현의 세밀함이 사실주의적 정물의 수호자인 노작가의 기품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14인의 그림 중 단 하나의 그림을 내 집 거실에 걸 수 있다면 그의 정물을 걸고 싶다. 이 그림 하나로 인해 나의 거실은 평온하고 정갈하면서도 지적인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누구라도 당당하게 초대할 수 있을 공간으로 변모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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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작가는 클로즈업된 인물의 얼굴, 그 중에서도 강렬한 눈빛을 강조하였다. 표현 자체는 머리카락 한 올, 삐져나온 코털까지 놓치지 않는 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깝지만, 그 리얼리즘이 앉혀있는 바탕을 일반적인 캔버스에서 알루미늄으로 대체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여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다. 현대의 차가운 기계문명의 총아와도 같은 알루미늄에 사실적으로 앉혀있는 거대한 얼굴, 그리고 그 안에서 독자적으로 반짝거리는 강렬한 눈빛은 이것이 아무리 사실적일지라도 결국은 시뮬라크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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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은 알루미늄이 아닌 캔버스에 그려졌는데, 그 작품에서도 눈 부위만큼은 알루미늄으로 덧대어 놓았다. 다른 부분은 포기하더라도 눈빛만큼은 작가의 본질과도 같은 금속성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마음의 창’이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기계화된 것일까? 아니면 아무리 숨으려고 해봐도 우리를 꿰뚫어보는 그 차가운 시선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것인가? 금속성의 망막에 맺힌 우리 자신의 희뿌연 상(像)은 자아인가, 아니면 제3의 존재인가? (그런데 캔버스에 알루미늄을 덧대고 유채로 그렸는데 왜 ‘캔버스에 유채’일까? 혼합재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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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저마다의 개성과 철학을 덧입고, 하늘 아래 동일한 영감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때 예술가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주는 것은 피카소와 같은 뛰어난 개성과 창조성일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날과 같이 더 이상 새로움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점에서는, 어쩌면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무서운 집념으로 몰아붙이는 그 일관되고도 숭고한 ‘예술 의지’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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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고도 다양한 작품 세계를 접하면서 예술적 지평이 넓어졌다(벌써?)는 뿌듯함을 안고 한가람미술관 본관 2층으로 향했다. <2017 예술의전당 소장품 展 – 한국현대사진의 흐름>을 보기 위해서였다. ‘무료관람’이라는 빨간 글씨는 예술의 값어치를 격하시키는 것 같아 슬픈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예술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아름다운 활자이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다수의 대중을 지향하는 공공예술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은 어느 문명에게나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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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45년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 사진이 부르주아 계층의 사치스러운 취향으로 도입되어 점차 독자적인 예술적 지평으로서 전환을 이루어나가는 시기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품들은 주로 순수한 예술적 목표에 의하여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기 보다는 현실 세계 속의 민초들의 삶을 담담하게 묵시해나가는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진의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것은 구도, 조명과 같은 기술이 아니라 세상, 특히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기술은 그러한 시선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을 뿐. 사진 기술의 진보 속도를 감안하면 너무나도 보잘 것 없었던 그 시대, 이 세상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떠받치고 있던 ‘보통 사람들’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드러난 작품들이 많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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