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STIC FANTASTIC: 상상 사용법 展(디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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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예술을 만나서 스스로를 정화한다. 예술이 품고 있는 이상과 철학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다. 고대이집트 왕의 무덤에서부터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자본은 언제나 예술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며 미술사에 자신의 이름을 우겨넣는다.

오늘날의 기업도 마찬가지인데, 대림그룹이 보여주는 행보는 그 중에서도 뛰어난 편에 속한다. 대림그룹의 사회공헌 기관인 대림문화재단은 대림미술관과 디뮤지엄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핫’한 전시를 성공적으로 기획해 왔다. 여기서 열리는 전시들은 주제 및 마케팅 측면에서 대체로 트렌디하고 젊은 감성에 효과적으로 소구할 수 있도록 면밀하게 기획되어 왔다. 관람권은 애초에 1만원 선으로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고, 각종 쿠폰 남발 및 SNS공유 이벤트 등의 영향으로 복잡하고 귀찮은 ‘손품’을 조금 팔면 커피 한잔 값으로도 관람이 가능하도록 문턱을 낮추고 있다. 운영 면에서는 대체로 ‘인증샷’에 매우 관대하여, 관람객 간 바이럴을 통한 자발적 홍보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대림 계열 전시를 보다보면, ‘아 이거는 인증샷 찍으라고 구성해 놓은 거네’라는 식으로 기획자의 의도가 보이는 섹션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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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디뮤지엄에서 열린 전시도 상기와 같은 대림 계열 전시의 특징들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상상 사용법’이라는 에디킴 노래를 연상케 하는 부제도 그렇거니와, 플라스틱 자체가 주는 총천연색의 물성이 존재 자체 만으로도 주 관람층인 청춘들의 비비드함과 잘 어우러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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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곳곳에서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주기에 여념 없는 청춘들이 보였다. 아마도 디뮤지엄 스테프들의 주 역할은 자신과 또래인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는데 있어서 작품을 건드리지 않도록, 또 동선을 막지 않도록 저지하는 것 같다. 여기서 찍힌 인증샷은 카페, 셀카, 하늘 등으로 점철된 그들의 SNS 피드 속에서 스스로의 삶이 ‘의식주휴미락(衣食住休美樂)’ 면에서 얼마나 균형잡혀있는지를 보여주는 증표로 기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 기획자의 성과지표는 그가 재임했던 기간 동안 ‘#디뮤지엄’ 이라는 해시테그가 얼마나 증감했는가로 간단히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나 SNS 피드 속에서나 ‘#디뮤지엄’이 ‘#일상’과 만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전시 기획자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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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을 낮춘 ‘유사고급문화’를 현대 사회가 낳은 전형적인 키치로 볼 수도 있겠지만,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는 문화 저변 확대를 위한 시금석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세번은 쉽다. 젊은이들이 ‘미술관’과 ‘전시’라는 단어에 학을 떼게 만든 것보다는 어떤 목적이든 간에 찾아와서 하나라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미래의 사회적 문화자산을 쌓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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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플라스틱’이라는 현대 대량생산사회를 상징하는 소재가 어떻게 미학적으로, 동시에 실용적으로 구현되어왔는가를 주요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통해 되짚어 보고, 그 미래를 조망해 보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총천연색의 색감과 유연성을 지닌 플라스틱이 상용화 초기에는 그 물성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힘써왔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히려 그 물성을 부인해 가는 과정으로 발전해 온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주거학’에 잠시 발을 담궜다 뗀 배경 때문인지, 전시회에 왔다는 생각 보다는 OO전람 등에서 개최하는 건축가구박람회장에 온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그런 박람회도 어지간한 전시회 못지 않은 조형적 미학을 구현하기 때문에 전시와 디스플레이의 간극이 모호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당장 이케아만 가보더라도 공간을 매우는 전문가들의 감각이 어느 정도까지 섬세해졌는지 느낄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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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계열 전시에 올 때마다, 입장권 매출 대비 기념품 매출을 비교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마 1이 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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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을 마치고 대림 계열 미술관의 막내인 구슬모아당구장을 가봤다. 하나의 전시 컨셉트로 파티션 없이 단일 공간을 채우는 ‘미술관 겸 휴식공간 겸 카페 겸 PUB’ 같은 곳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무더운 날씨에 육수를 한 껏 쏟은 탓에 ‘헨 킴: 미지에서의 여름’ 전시에 집중할 감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ARK BEER라는 미술관 자체의 독자적인 라벨을 붙인 맥주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는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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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던 길, 한남동 어느 건물 옥상에 있던 벌거숭이 나무 한 그루 ─ 나와 달리 이 녀석은 여름의 끝자락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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