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초가을 정경

때늦은 휴가를 내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야생동물 #풍경 #자연 이었으나,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해야 할 것 같다. 야생동물을 보기에는 탐험심과 사전준비가 미흡했고, 풍경을 담기에는 안목이 부족했고, 자연에 오래 거하기에는 체력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인상들을 담기 위해 노력하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껏 거닐었기에 후회 없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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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도립공원 – 직박구리
2 DSC04086 직박구리
노루생태관찰원 – 직박구리

제주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는 직박구리였다. 산 속에서 사람 소리를 듣고 삐이익삐이익 경고음을 주고 받는 녀석들이 있다면 거의 직박구리라고 보면 된다. 개구쟁이 같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경계하다가 다가가면 잽싸게 사라져 버린다.

3 DSC04262 흰뺨검둥오리
1100고지 습지 – 흰뺨검둥오리

흰뺨검둥오리 가족은 1100고지에서 유일하게 만난 동물친구들이었다. 이 곳은 천혜의 고지대 습지 환경을 갖추고 있기에 조용한 구석에서 진득하게 기다리면 더 많은 야생동물을 볼 수 있을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늦게 방문하는 바람에 고지대의 기후 변동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여 금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잔잔한 호수에서 떠다니는 오리들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평안해지곤한다.

4 DSC03936 큰오색딱따구리
치유의 숲 – 큰오색딱따구리

치유의 숲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가 안경에 습기가 찰 즈음 머리 위에서 딱딱딱 소리가 들려왔다. 큰오색딱따구리였다.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조도가 낮았고, 계속 주택공사가 한 창이라 멈춰있는 모습을 담기 힘들었다. 그래도 제주도 상징새인 녀석을 보아서 다행이다.

6 DSC03942 다람쥐 치유의숲
치유의 숲 – 다람쥐

치유의 숲에서는 다람쥐와 노루도 볼 수 있었다. 야생 노루는 여기서만 발견했다. 하지만 초점이 어긋난 틈에 녀석은 금새 달아나버렸다.

왜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초점이 어긋나는걸까…

5 DSC04045 큰부리까마귀
마방목지 – 큰부리까마귀

제주도에서 비둘기보다 흔한 새가 까마귀인 것 같다. 거칠 것 없는 녀석들은 마치 제주 상공의 제왕처럼 으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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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목지

안개 낀 마방목지는 어딘가 모르게 낭만적이다. 비록 말들이 자유롭게 뛰어 노는 활기찬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안정감을 준다. 녀석들은 거의 항상 풀을 뜯고 있는 탓에 고개를 든 모습 조차 귀한 사진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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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

위풍당당한 말 한 마리가 컨스터블이 칠한 듯한 하늘 아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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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생태관찰원

오름을 자유롭게 뛰노는 노루를 상상하며 노루생태관찰원을 찾았지만, 역시나 허탕이었다. 먹이주기 체험장에서 인간의 손길에 길들여진 어린 노루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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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항 – 동네개

시골개들은 특징이 있다. 항상 뭔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 마음씨 좋은 사람들만 사는 곳이라 낯선 사람도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시인이 갖는 오만한 낭만일 수도 있다.

어느 골목에서라도 녀석들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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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 숲 – 삼나무

사려리 숲에서 지정된 산책로를 벗어나 사람들이 좀처럼 가지 않는 고지로 이동했다. 몇 시간을 멍하니 기다렸으나 애석하게도 역시 야생동물은 어린 뱀 한 마리 외에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숲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좋았다. 쭉쭉 뻗은 삼나무를 기어 오르는 넝쿨에서 야생의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 저기 쌓여 있는 나무토막들을 보면서 숲을 관광지화하기 위해 너무 많은 나무를 쳐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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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

치유의 숲 탐방로를 거닐다가 잘려진 고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끼가 뒤덮인 모습이 야생의 운치를 더 해주는 것 같다.

나무는 죽어도, 잘려도 다시 숲의 일원이 된다. 곤충과 미생물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거름과 흙이 되어 숲 자체로 돌아간다.

13 DSC03872 섶섬부근
섶섬을 바라보며 – 이별

카페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된 섶섬은 아름답고 운치있는 무인도였다. 거기서 한 참을 쉬면서 바다와 배, 기암괴석들을 바라보았다. 아스라한 수평선을 뒤로 한 배와 섬이 애절한 이별의 정서를 자아내고, 그 위에는 포실포실한 구름이 낮게 덮여 있다.

14 DSC03905 섶섬부근
섶섬을 바라보며 – 각자의 길로
15 DSC03895 섶섬부근
섶섬을 바라보며 – 용틀임하는 용암석

비록 부둣가의 작은 용암석이지만 내게는 그 유명한 용두암 못지 않게 웅장한 포효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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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봉 – 카누 타는 사내

서우봉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홀로 카누를 타며 바다와 사투를 벌이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어 보이는 그 사내는 1시간 이상 자유롭게 바다를 유영했으나, 그 얼굴에는 즐거움 보다는 고된 기운이 역력했다. 목적이 없는 유영도 나름 괜찮아 보인다. 그러면 유영 그 자체가 목적일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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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봉 – 해 품은 바다
18 DSC04210 서우봉
서우봉 – 제주 전경

날씨가 청명해서 제주 전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 했다. 도시에서는 좀 처럼 보기 힘든 탁 트인 원근감에 비현실적인 정서마저 느껴진다. 한라산 아래 시내가 스푸마토로 묘사되어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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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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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몬도에서

이번 여행의 숨은 주제는 ‘모든 커피를 바다 보며 마시기’였다. 카페인에 민감한 나는 하루에 단 한 잔의 커피만을 섭취할 수 있으므로, 그 한 잔의 질이 중요하다. 이번에는 매일 점심 후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시자는 목표를 세웠고 완벽히 달성하였다. 그중에서도 카페 델몬도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고, 이번 여행 전체를 통틀어서도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하얀 빈티지 데크, 푸른 바다, 청량한 바람, 라떼의 그라데이션까지. 옆자리가 허전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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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해수욕장 – 주황색 지붕의 세 집

표선해수욕장에서 마을 쪽을 바라보니, 동일한 모양의 빌라 세 채가 눈에 들어왔다. 최대 망원으로 당겨서 찍었다. 후경의 나무와 지붕이 수평을 이루고, 은은한 하늘의 그라데이션이 주황색 지붕과 대조를 이루면서 르네 마그리트 풍의 생경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21 DSC04427 표선항
표선항 – 정박된 어선들

정박된 어선들 뒤로 휘갈겨진 구름과 하늘의 색조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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