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래의 「미술철학사(2016)」

감히 평가하는 글을 쓰기 두려운 책이다. ‘내가, 감히, 이 대작을 어떻게?’ 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노교수의 집념이 아로새겨진 총 세 권의 「미술철학사」세트는 자그마치 2,656쪽, 3.4㎏의 물리적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8년 동안 집필했고, 1년 6개월 동안 편집했으며, 원고지 8,400장이 소요되었고, 각주는 1,400개, 도판 859개, 저작권료 3,000여만원, 언급 작가 수는 200여명에 이른다. 물론 조수(조교)가 있었겠지만, 팔만대장경을 파내는 이름 없는 장인과도 같은 노교수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벽돌을 연상케하는 이 묵직한 책을 한 권만 챙겨들고 길을 나서도 1시간 이내에 어깨, 팔, 다리 등에 근육통이 엄습한다. 전업 독서가가 아닌 이상 세 권을 틈틈히 다 읽으려면 아무리 빨리 읽는 자라도 족히 두 달은 걸릴진데, 그 과정에서 시시때때로 관절염의 징후와 더불어 ‘아니 저 사람은 왜 여기서 백과사전을 읽고 있어’라는 세간의 시선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을 겪은 자만이 ‘이광래 교수의 미술철학사를 읽었노라, 사유했노라, 통섭했노라, 그리고 해체했노라’ 고 자신있게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광래 교수는 우리나라의 생존 철학자 겸 교수로서는 손꼽히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의 다른 저서를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그가 얼마나 독자적이고 가치있는 사상세계를 구축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엄청나게 많은 책을 썼고, 또 번역한 것은 사실이다. 일부 번역서에 대해서는 출판계 및 사상계에서 오역 논쟁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그의 철학사적 이해와 서술의 스펙트럼에 대해서 존경을 보내지 않기란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 그가 만년에 이르러 미술에 천착하기 시작했고, 평생을 헌신해온 철학과의 자연스러운 통섭이 이루어지며 「미술철학사」라는 크고 탐스러운 열매가 맺어지게 되었다.

책의 완성도와 깊이를 떠나서, 한글을 모국어로 쓰는 사람에 의해 미술사와 철학사를 아우르는 대작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완성도와 깊이를 떠나겠다고 한 것은 그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 안에는 대가의 방대한 지적 스펙트럼이 알알이 맺혀있고, 인류가 아름다움과 진리를 동시에 추구할 때 어떤 현상들이 빚어졌는지 통시적/공시적으로 빈틈 없이 조망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게 마련이다. 아쉬움이라기 보다는 주의사항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이광래 교수는 한 예술가가 지니고 있는 사유의 깊이, 즉 역사적 흐름 속에서 현존재로서의 자각을 토대로 개인의 사상과 철학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높게 평가한다. 유구한 미술사의 흐름을 통시적/공시적으로 가로지르는 예술혼과 그 기저의 욕망에 주목하는 것이다. ‘미술사를 수놓는 위대한 미술작품이나 사조가 등장하게 된 사상적 배경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하여 2,656쪽을 할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유의 깊이가 얕거나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는 예술가들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한다는 인상을 준다.

미술에 대한 사상적 근거를 조망하는 것은 이 책의 본질이지만, 그러한 주제의식에 과몰입하여 예술을 비평하는데 있어서 편협한 사고틀을 갖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역사성이 결여된 예술가는 저급한가? 사상적 기반이 얕은 작품은 명작이 될 수 없는가?’ 현명한 독자라면 이 질문의 대답이 명백한 “아니오”임을 늘 가슴 속에 주지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술철학사는 “예”라는 답변을 내 놓을 수 밖에 없을지라도, 미술사가라면 더 큰 숲을 봐야 할 것이다.

언어는 영혼을 담고 있다. 비슷한 문장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화자의 고유한 인품이나 습관이 묻어난다. 저자의 철학 분야 지식이 우리나라 최정점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책은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비교적 쉽게 서술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니 저자의 습관 하나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하나의 주장이나 설명을 해 놓고, 그 내용의 결과에 해당하는 다른 사례들을 뒤에 덧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단순 예문임. 책에 이런 문장 없음).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기존에 정답이라고 믿고 있던 가치를 전복하고 해체하려는 예술가들의 욕망이 비약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뒤샹이 변기에 서명을 해서 출품했던 까닭도 마찬가지이다. ⓒ폴락이 바닥에 놓인 캔버스에 페인트를 뿌려댔던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주장을 해 놓고(ⓐ), 뒤이어 연관된 서술을 “~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도 다르지 않다” 식으로 붙인다(ⓑ, ⓒ). 이 문장 자체가 어법이 안맞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닌데, 너무나 자주 반복되기 때문에 거슬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문장의 서술구조가 복잡해지거나 논점이 명확하지 않으면 ⓑ와 ⓒ를 읽을 때마다 다시 ⓐ로 역주행해서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게 은근히 성가시다.

방대한 「미술철학사」로 저자가 추구하는 예술철학을 종결지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이번엔 문학이다. 「미술철학사」 발간 1주년도 되지 않아 「미술과 문학의 파타피지컬리즘(2017)」을 출간한 것이다. 이건 그래도 양심상 624쪽이다. 이쯤되면 그의 지적 분출욕망이 어디까지인지 두렵기까지 하다.

아… 이건 또 언제 다 읽어…..

이광래의 「미술철학사(2016)」”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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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로그 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답글 남기는 건 처음이지만요) 덕분에 좋은 책 알게 되었어요. 저도 시간을 내서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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