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그리다: 모네에서 마티스까지(Painting the Modern Garden: Monet to Matisse, 2016)

메가박스에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스크린 뮤지엄’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이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멀티플렉스 극장이 시도하고 있는 콘텐츠이지만, 메가박스는 그 이전부터 유명 오페라 극장의 공연이나 발레 실황을 상영하며 ‘고급 예술’을 저렴하게 즐기고 싶은 관객들에게 다가가곤 했다. 이번 스크린 뮤지엄 시리즈는 그러한 고급 예술의 지평을 미술로 확장한 것이다. 메가박스의 계열사에서 직접 배급하는 다섯 편의 다큐멘터리가 기획되어 있는데, 1편은 안타깝게도 일정이 안 맞아 놓치고 말았다. 이채로운 것은 4편으로 보쉬가 편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히에로니무스 보쉬를 다룬 콘텐츠가 주요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한다는 것 만으로도 주목할만한 시도가 될 것 같다.

작품은 2016년 1월 30일부터 4월 20일까지 영국왕립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에서 열렸던 동명의 전시(Painting the Modern Garden: Monet to Matisse)를 중심으로, 해당 전시의 주제에 관련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인터뷰(큐레이팅)와 실제 정원 풍경, 그리고 출품작들에 대한 설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면은 전시장의 그림과 배경이 되는 정원을 차례로 비추며 정원의 색감이 인상주의와 야수파로 대변되는 근대 미술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지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현악 선율이 강조된 간명한 BGM으로 청각을 자극하면서 정원을 그려낸 대가들의 작품을 묵묵히 담아낸다. 점점 두터워지고 강렬해지는 시대의 색감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대는 정치적 혼란기에서 벗어나 산업혁명의 열매를 맛보기 시작한 때로, 도시와 중산층이 급부상하면서 여가와 안정에 대한 욕구가 증대되던 시기였다. 중산층은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을 즐김과 동시에, 자신의 여유와 전원적 삶에 대한 취미를 은연 중에 과시하고 싶어 했다. 또한 교역이 증가하면서 농수산, 원예 분야의 수출입이 활발해졌고, 종래에 보지 못하던 신품종들이 이채롭게 다가오며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원예 기술도 발달하여 다종작물의 육종과 교배를 통해 개량종 및 신품종이 잇따라 개발되었으며, 이러한 새로운 꽃과 나무는 정원에 신선함과 다채로움을 더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각에 예민했던 화가들, 특히나 작업실에서 자연으로 시선을 돌리고 캔버스를 챙겨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던 외광파 화가들에게 이러한 정원의 변화는 무궁무진한 소재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미술사에서 ‘정원’ 하면 누구나 ‘모네’를 떠올리듯, 작품의 40% 정도 분량은 모네와 지베르니(Giverny) 정원에 헌정되어 있다. 모네는 뛰어난 관찰자, 화가, 혁명가, 연구자였던 만큼, 뛰어난 원예가이기도 했다는 것이 전시와 다큐멘터리의 기획 의도이다. 모네는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절, 아르장퇴유에서 월세를 살면서도 정원이 딸린 집을 고집했고, 손수 꽃과 나무를 가꿨다. 특히 당대에 수입되기 시작한 달리아 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시절 정원을 향한 가난한 화가의 애정어린 시선은 르누와르가 그린 초상화에서 따뜻하게 묘사되었다(그림). 이후 지베르니 시절의 정원에 대한 열정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당대에 붐이 일고 있던 정원 박람회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연못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속된 설득과 청원으로 결국 뤼강의 물을 끌어오는 공사를 성사시켰다. 소박한 일본식 다리가 설치된 그 연못에서 섬세한 빛의 연구를 거듭해 결국 대가로서 인정받고, 인상주의 화가들의 공통 조상이자 대부가 되었다. 지금도 시골마을 지베르니에는 모네의 정원과 연못을 보기 위해 매년 5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고 하니, 가축 사육에 지장이 있다며 연못 설치를 반대했던 당시 주민들의 후손은 민망함과 흡족함이 교차하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티소의 그림은 단 한 작품(국화, c.1875)이 조명되었는데, 그의 그림은 언제나 나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현대의 패션화보를 연상케 하는 티소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과 더불어, 꽃에 심취한 한 여인과의 순간적인 눈 맞춤은 무아지경에 빠진 순간을 방해한 관람자로 하여금 약간의 죄책감과 당혹감 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노랑과 하양이 어우러진 국화와 여인의 정경 속에서 꽃은 인물이 되고, 인물은 꽃이 되며 순결한 아름다움이 현시되고 있다. 다큐의 큐레이터는 이 작품을 설명하며, 닫힌 정원과 숙녀의 도상이 전통적인 성모 마리아의 상징성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도 추상으로 치닫기 시작하는 칸딘스키의 정원(그림)과, 울긋불긋한 색채로 압도하는 마티스의 정원(그림)이 대조를 이루며, 비슷한 풍경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각자의 조형언어로 해석하는 대가들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양질의 미술 콘텐츠를 기획한 메가박스에 응원을 보내며, 나머지 세 편도 자못 기대된다.

(너무나 잔잔하고 서정적인 연출 탓에 약간 졸기는 했지만, 그것은 작품의 잘못이 아니라 피곤했던 내 탓이므로 비판하지 않기로 한다.)

정원을 그리다: 모네에서 마티스까지(Painting the Modern Garden: Monet to Matisse, 2016)”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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