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판 「레미제라블(2012)」의 대성공 이후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뮤지컬영화나 음악영화가 개봉하는 것이 정석처럼 굳어지고 있다. 뮤지컬영화 마니아로서는 그 어느 시즌에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르가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린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1년에 한 편 씩이라도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나.
작년 겨울에 「라라랜드(2016)」에 크게 실망을 한 후로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컸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음악에서 만큼은 제발 실망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랐다. 다행히도 「위대한 쇼맨(2017)」은 그 바람을 충족시켜주었다.
영화는 주인공이 꿈을 쫒아 집념과 열정을 발휘하여 밑바닥에서부터 정상까지 올라가며 성공의 참 의미를 되새긴다는 이야기와 사회에서 소외된 비주류들이 주체가 되어 행복을 발견해간다는 이야기가 두 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그 두 이야기 속에 계층을 뛰어 넘는 사랑과 우정, 가족의 소중함 같은 진부한 헐리우드식 양념을 덧뿌린다. 뮤지컬영화 치고는 이야기 구조가 복잡한 편인데, 러닝타임은 104분에 불과하며, 주요 넘버는 11개로 절대 적지 않은 수이다. 이는 뮤지컬영화 다운 ‘함축의 미’를 더욱 극대화해야만 영화의 완성도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인데 일견 성공한 것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음악의 힘이다.
이 영화의 음악들은 대체로 아주 단순하고, 어디선가 분명 들어본 것 같은 검증된 선율의 소프트 락/컨트리를 바탕으로 가스펠/소울 풍의 편곡을 효과적으로 적용하였다. 기승전결의 구조가 뻔뻔할 정도로 명확하며, 후반부에 가세하는 풍성한 앙상블의 합창과 절도 있는 비트의 힘은 진부한 구성임에도 그 듣는 재미를 부인하기 힘들다(‘Come Alive’, ‘This is Me’, ‘From Now On’). 꽤 많은 갈등과 성장, 그리고 심리적 변화들이 단 한두곡의 넘버로 함축되어 있는데, 이러한 음악의 힘이 아니었으면 아마 그 느슨한 개연성에 고개를 가로저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명료하게 쳐내지 않은 제작진을 비난했을 것이다.
휴 잭맨의 메인 보컬은 분명 스튜디오에서 많이 만져줬겠지만, 「레미제라블」 때에 비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처럼 느껴진다. 「레미제라블」의 현장 녹음 기법은 영화사적으로 의의가 있으며, 특히 감정 전달에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지긴 했으나, 온전한 듣는 재미를 위해서는 하나의 실험으로 그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잭 애프론도 마찬가지이다. 「하이스쿨 뮤지컬(2006)」 1편의 립싱크 굴욕 사건은 이제 상기할 필요 조차 없을 정도로 원숙한 보컬을 보여주었다. 「하이스쿨 뮤지컬 시리즈」와 「헤어 스프레이(2007)」 속 풋풋했던 첫사랑의 아이콘으로서의 모습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고 느끼함만이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그래도 한 배우의 성장을 보고 있다는 즐거움만은 또렷하게 남겨주었다. 제니 린드 역의 레베카 퍼거슨은 유일하게 립싱크를 선보인 출연자인데, 그녀의 넘버 ‘Never Enough’는 모든 관객을 홀려야 하는 과업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시대적 배경과 장르의 이질감이 너무나 극심하여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 작품의 전체적인 톤을 감안해서 고급스러운 크로스오버 느낌(예를 들어 셀린디옹 풍의…) 정도까지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아델 풍은 좀 심했다.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다던가, 필립 칼라일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주인공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소외된 자들을 눈요기꺼리가 아닌 주체적 인간으로서 존중한 것이 맞는가, 등의 논쟁까지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일단 노래가 좋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빈틈 없는 영화적 짜임새와 음악적 완성도, 그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뮤지컬영화의 탄생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상기하며 2018년을 기약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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