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에서 ‘클래식 소사이어티’ 라는 기품 있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클래식 생중계 콘텐츠 중 하나이다. 새해 첫 날 아침에 펼쳐지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를 상영하는 것이다. 신년을 고급 예술로 고급스럽게 시작하면, 그에 걸맞는 고급스러운 한 해가 펼쳐질 수 있을 것만 같다는 기대가 자극되어 극장을 찾았다.
공연은 총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빈을 상징하는 왈츠와 폴카가 서로 교대로 연주되었다. 2부도 왈츠와 폴카가 주를 이루지만, 좀 더 다채로운 선율과 풍성한 구성으로 변화가 이루어졌다. 솔직히 1부에서는 단조롭고 나긋나긋한 왈츠의 온건함을 이기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눈꺼풀을 덮는 불경을 저질렀다. 인터미션 후에는 다행스럽게도 집중력이 올라갔고, 변화되는 곡 구성에서 나름대로의 재미를 발견하면서 즐겁게 감상했다.
Program
1부
Johann Strauss, Jr.
Entrance March from the Operetta “The Gypsy Baron”Josef Strauss
Wiener Fresken (Viennese Frescos), Waltz, op. 249Johann Strauss, Jr.
Brautschau (Bride Shopping), Polka, op. 417
Leichtes Blut (Light of Heart), Fast Polka, op. 319Johann Strauss, sen.
Marienwalzer (Maria Waltz), op. 212
William Tell Galop, op. 29b2부
Franz von Suppé
Overture to “Boccaccio”Johann Strauss, Jr.
Myrthenblüten (Myrtle Blossoms), Waltz, op. 395Alphons Czibulka
Stephanie Gavotte, op. 312Johann Strauss, Jr.
Freikugeln (Magic Bullets), Fast Polka, op. 326
Tales from the Vienna Woods, Waltz, op. 325
Fest-Marsch (Festival March), op. 452
Stadt und Land (Town and Country), Polka Mazurka, op. 322
Un ballo in maschera (Masked Ball), Quadrille, op. 272
Rosen aus dem Süden (Roses from the South), Waltz, op. 388Josef Strauss
Eingesendet (Letters to the Editor), Fast Polka, op. 240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특정 지휘자의 고유한 색깔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 매번 객원으로 지휘자를 모신다고 한다. 이번 신년음악회는 이탈리아 출신의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가 봉을 잡았는데, 그는 매우 절제된 동작을 보여준다. 간혹 대여섯 박자까지도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있고, 아주 정적인 상태에서 악센트로 튀어 오르는 선율만 간명하게 짚어준다. 가끔은 손으로 지휘를 한다기 보다는 그저 몸을 웅크렸다 펴는 수준으로 곡의 느낌만을 온 몸과 표정에 반영한다. 그러한 절제된 지휘는 각기 최고 수준인 마에스트로와 단원들 간의 두터운 신뢰감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지휘봉을 들어 왼쪽 어깨 위까지 빠르게 훑는 피니쉬 동작은 대체로 정적이었던 그의 평소 동작과 대비되어 더욱 강한 카리스마를 풍긴다.
이 영상물은 단순히 공연 실황을 현장에서 담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도시 및 교외 전경, 건축물의 자태, 도서관 및 공방 등의 인테리어를 가끔 비추기도 한다. 이때는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단순히 BGM 처럼 격하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외부 화면의 등장빈도가 다소 잦은 감이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음악, 그리고 오케스트라 및 지휘자의 형상과 사전 촬영한 영상 간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한 점은 보여서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2부에서는 두 곡이 발레 영상을 활용했다. 노래가 시작됨과 동시에 아름다운 건축물을 배경으로 발레리나/발레리노들이 등장하고 노래에 맞추어 동작을 선보였다. 발레를 무대가 아닌, 실제의 건축물과 정원의 풍경 속에서 보는 것은 이채로운 경험이다. 마치 뮤지컬영화의 발레 버전을 보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로 본격적인 ‘발레영화’라는 장르를 개척하면 영화사적인 의의가 있을 것도 같다. (이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누군가가 이것을 시도한다면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공연은 마지막 앵콜곡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An der schönen blauen Donau, Op. 314)’으로 마무리되었고, 그동안 화면에는 아름다운 도나우강 유역의 풍광이 여러 각도와 계절로 투사되었다. 고요한 전원 풍경 속에 유람선만이 수면을 가르고, 산 속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은 인적 조차 찾을 수 없이 적막한 가운데 고고한 기품과 정신성이 느껴졌다.
상영관의 불이 켜지고 급격히 현실로 돌아온 느낌은 못내 좌절스러웠다. 결국 고급 예술을 통해 문화적 소양을 한 뼘이라도 키우려던 순진한 시도는 치명적인 ‘유럽병’의 발병으로 마무리되고야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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