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Coco, 2017)

공교롭게도 사후세계를 다루고 있는 두 작품이 동시에 극장에 내걸려 서로 수위를 다투고 있다. 디즈니 픽사의 <코코>와 웹툰이 원작인 <신과 함께: 죄와 벌, 2017>가 동시에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현 상황은 그저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사후세계에 대한 대중의 보편적이면서도 지대한 관심이 빚어낸 순간일수도 있다.

죽음, 그 이후에 대해서 알고 싶은 욕구는 생(生)의 열망과도 맞닿아 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의 가치가 비로소 성립된다. 종교개혁 전후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바니타스(vanitas)가 끊임 없이 서양미술의 핵심주제로 등장한 것은 그러한 죽음의 가치를 잊지 말라는 경종이었다. 마치 나 자신의 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처럼, 죽음에 대한 관심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궁극적인 호기심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고 단언했지만, 우리는 늘 말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하여 입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

<코코> 속 사후세계는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과 제의에 상당 부분 의존하며 돌아간다. 산 자들이 기리지 않으면 닿을 수 없고, 산 자들이 잊으면 사라진다. 어쩌면 자기 생의 노력과 성과들 보다는 타자 의존적인 성향이 짙은, 다소 억울한 세계관이 아닐 수 없다. 사는 동안 아무리 적극적으로 사랑을 배풀고, 열심히 과업에 매진하고, 성과를 창출했어도, 타자가 그것을 기리고 기억하는 것은 별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기려줄 후손을 낳지 못한 사람들은 또 무슨 죄란 말인가. 해부학적 진실과는 별개로 생전의 얼굴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백골들이 주역을 차지하고 있는 <코코>의 사후세계는 이처럼 매정하고 부당한 면도 있지만, 교과서적인 짜임새의 이야기와 흥겨운 멕시칸 리듬이 버무러지면서 불만의 싹을 잘라 버린다.

<코코>는 뮤지션을 꿈꾸는 한 소년을 통해 멕시코의 사후세계에 관한 전설을 환상적으로 재현하면서, 디즈니 특유의 가족중심주의와 ‘꿈을 가져라’는 메시지를 정당화한다. 디즈니 픽사의 문화해석능력ㅡ미국적 시선을 애써 감추면서 아직은 신비로움을 간직한 타자의 정신세계를 말쑥한 내러티브로 포장하여 무대에 올리는 능력─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원숙해지고 있으며, 이제 거의 완성의 경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당분간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스튜디오는 없다. 이제 그들은 눈 감고 지구본을 돌린 후 아무 나라나 콕 찍어도 그 민족을 주제로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를 술술 풀어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모 북미 박스오피스 전문 블로거의 추측대로, 그들은 조만간 또 다시 중국으로 눈을 돌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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