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취약 계층의 삶은 그 민족이 시련을 겪을 때 더더욱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조선의 왜곡된 유교적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겨우 벗어나는가 싶었던 우리네 여성의 삶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대변되는 혹독한 근현대사의 비극을 겪으며 더더욱 참담한 낭떠러지로 내몰려야 했다. 자기 육신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역사의 풍파 속에서도 강인한 여성들은 부당한 가부장제에 순응하면서 아이를 양육하고, 억척 같이 살림을 꾸려 나가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안락한 삶의 터전을 일궜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여성의 삶에 주목한 <신여성 도착하다 展>은 참신한 기획과 충실한 콘텐츠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페미니즘이 가장 뜨거운 사회적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 요즘,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근대적 여성상이 등장한 시점에 주목했다는 점이 참신하다. 그리고 그 중요한 주제가 무색하지 않도록, 회화, 사진, 영상, 인쇄물, 도서, 음악 등 다양하고 희소한 매체들을 동원하여 입체적으로 시대상을 조명하였다는 점에서 충실한 구성을 보여준다.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1부는 당대의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과 사료들, 2부는 여성들이 창조한 예술 세계, 끝으로 3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그 시대 영웅적 신여성들에 대한 헌사이다. 1부 ‘신여성 언파레-드’로 들어가기 위하여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계단의 맨 아랫단에는 현재인 2017년이라는 숫자가 보이고, 계단을 오름에 따라 숫자가 줄어들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맨 윗단에는 비로소 1920년이라는 숫자와 함께 전시 제목인 ‘신여성 도착하다’가 쓰여 있는데, 계단을 통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록 하면서 전시에 대한 기대감과 몰입도를 높여 주었다. 악기를 들고 걷는 신여성을 바라보는 세간(남성)의 양가적인 태도를 다룬 나혜석의 스케치가 1부의 초입에 걸렸다. 한편으로는 신여성의 급진적인 태도와 외모를 비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들을 욕망하는 남성들의 시선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분수에 맞지 않게 흥청망청 쇼핑하며 사치하는 여성들을 비난하는 한 언론매체의 삽화는 2000년대 초중반, 스타벅스의 주 고객층이었던 여성들을 힐난하던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물들과 차이가 없었다.
당대의 여성잡지 속에 투영된 신여성의 이상적 기준이 점차 변화하고, 여성을 바라보는 시대의 감정도 점차 복잡해져가는 양상이 여러 사료들을 통해 드러났다. 고풍스러운 사실주의적 바로크 양식의 「봄의 가락(1942)」은 서구의 음악을 매개로 서로를 욕망하는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성적 긴장감을 담고 있다. 이유태와 김기창의 대형 그림들은 전통 기법의 채색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문물에 둘러싸인 변화된 여성상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였다. 특히 「인물일대: 탐구(1944)」는 당대에 매우 드물었을 여성과학자를 보여주어 이채로웠다. 이유태가 표현하는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라기 보다는 일체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화된 아이콘처럼 보이는데, 그로 인하여 시대상의 변화를 남기려는 화가의 의지가 담긴 사료처럼 느껴진다. 아마 그러한 심상이 이번 전시의 주제에 정확히 부합하여 몇 안되는 기념품(노트, 엽서, 인쇄물)으로 승화된 것인지 모른다.


2부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조명했다. 사군자와 서양화들도 훌륭했지만, 동시대미술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인정신의 결정체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정찬영의 「공작」그림들은 깃털 한 올 한 올을 아로새긴 정성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여자미술학교의 자수 전공자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단 한 가닥의 실도 허투로 쓰지 않으며, 어지간한 사실주의적 유화보다도 뛰어난 재현성을 보여주었다.

3부에서는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지녔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진 삶의 질곡을 감당해야 했던 5명의 신여성들에 대한 헌사가 제시되었다. 많이 힘들었겠지만, 이렇게라도 후대에 기억되는 그들은 축복받은 삶을 살았던 것이나 다름없다. 도대체 이 땅에, 나아가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XX염색체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을까. 이러한 비극이 없도록 구조와 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그것이 페미니즘 담론의 현시대를 그저 또 하나의 ‘말 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만드는 길일 것이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전시들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이곳은 다른 미술관들과 달리, 고즈넉하고 질박한 궁궐에 푹 안겨 있는 입지 자체가 특유의 아늑한 정취를 준다.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다소 간 거리를 둔 채, 유려한 코린트식 주두에 몸을 숨긴 미술관 내부는 단 하나의 특별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환경적/조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이 곳에서 보는 전시는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다른 곳에서 봤으면 별 인상이 없었을 작품들도 이곳에서는 마음 속 더 깊은 곳까지 각인되는 느낌이다.
덕수궁관의 다음 전시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