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두빈의 「미술비평이란 무엇인가(1996)」

나는 비평가를 동경한다. 타자가 창조한 미의 세계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함의를 붙잡아 언어로 표상하는 능력에 경탄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한다. 무엇보다도, 예술에 대하여 열렬히 이야기하는 사람은 얼마나 섹시한가.

비평사, 비평론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들었다. 오래된 책이지만 입문서로서 충실한 면모가 있어 보였다. 사실 초반부에서는 반드시 다 읽고 혹평을 남기겠노라고 다짐했었다. 마디마디마다 투영된 저자의 지나친 자의식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자의식이 강한 사람과의 공존을 힘들어 하기 마련이다.) 특히 미래의 방향 제시로서 비평의 기능을 설명하며 자신의 비평문(선언문)을 모범답안으로 전체 인용한 대목에서는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계속 읽다보니 그 자의식이 이 책의 미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평은 사르트르가 주장하듯, 객관적인 척, 전체를 아우르는 척을 배격하며 대상에 대한 사랑과 내면의 진정성, 그리고 예술혼을 아낌없이 표상할 때 그 생명력이 독자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것이다. 미술비평가가 비평에 대하여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예술혼과 자의식이 결여된다면 조간신문의 인사동정란 마냥 무미건조한 종이쪼가리가 될지도 모른다.

내용도 충실한 편이다. 비평에 대한 제 관점들을 명료하게 드러냈고, 비평사 개관도 훌륭하게 함축했다. 이 책을 통해서 비평 이론 및 역사를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이내 실망할태지만, 비평가로서의 태도, 그리고 비평 독자로서의 자세를 배양하겠다면 크게 실망은 않으리라본다. 특히 이 책의 미덕은 역사적 사실과 이론을 가르치려들때 보다도 비평가의 책무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거나, 비평가로서 삶의 질곡을 토로할때 더 빛난다. 생과 업의 진솔한 순간순간 속에서 절절한 고민의 흔적들이 팔팔한 생명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전체를 균형있게 아우르면서도 나만의 매력적인 관점을 갖는 것, 그리고 그 관점을 폭 넓은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능력. 그것이 비평가가 지녀야 할 덕목이라면 저자는 충분히 그런 덕목을 지닌 사람같다. 물론 글 속의 자아는 어느 정도 이상화되기 마련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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