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셰퍼드의 「미학개론: 예술 철학 입문(2001)」

미술사의 변두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이제는 더 깊은 본질로 들어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학개론」이라는 야심만만한 제목과는 달리 10,000원이라는 겸손한 가격표를 달고 있는 이 소책자는 외관상 지하철역 자판기에서 팔던 싸구려 유머집 또는 명언집 따위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내용은 충실한 편이다. 위대한 사상가들의 꽁무니만 쫒으면서 논문 제목과 듣도 보도 못한 학술적 개념들만 나열하기에 급급한 책이 아니다. 미학의 핵심 개념들로 구성된 아홉 개의 각 주제에 대한 폭넓은 관점들을 편견 없이 수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학술적 용어를 최대한 배격하고 일상적 언어로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모호한 관념의 세계를 설명한 글, 그리고 그것을 전혀 다른 언어로 번역한 글들이 가지고 있기 마련인 견고한 장벽은 이 책에서도 건재하다. 책에서 비교되는 여러 관점들을 나열하는 서술이 자주 보이는데, 그것들을 문단으로 나누어서 번호나 기호로 묶어주기만 했어도 가독성이 훨씬 좋아졌을 것이다. 아마 저자는 본인이 직접 강의하듯, 물 흐르는 듯 이어지는 문학적 서술을 추구한 것 같다.

< 목 차 >

1. 왜 예술을 추구하는가?
2. 모방
3. 표현
4. 형식
5. 예술, 미, 미적 감상
6. 비평, 해석, 평가
7. 의도와 기대
8. 의미와 진실
9. 예술과 도덕

저자가 고전 문학을 강의하는 사람인지라, 조형예술이 아닌 문학을 중심으로 미학 이론들을 설명해 나간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사례로 제시된 문학 작품들을 읽어 봤거나, 대략적인 내용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모두가 아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넘어가는 것을 나만 모르는 것 같을 때 슬픔이 찾아오는 법이다.

미학이나 미술사 방법론들에 대하여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고, 평가하고, 논하는 모든 과정에서 염두해야만 하는 지식과 태도가 이토록 풍부하다는 것이 실로 놀랍다. 편견 없이 감상하고, 명쾌하게 해석하고, 균형잡히면서도 설득력 있게 평가하고, 심지어 그 모든 과정을 유쾌하게 즐기기까지 하는 사람의 지적 역량과 상상력의 지평은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인 것일까?

앤 셰퍼드의 「미학개론: 예술 철학 입문(2001)」”에 대한 답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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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학대계도 발췌독하기에 좋아요~

    목차 내용보니 다른건 잘 모르겠으나 2.3.4는 미학대계 2권에 설명 잘 되어있어요 ㅎ 난해하지 않고요.

    블로그 애독자인데 ㅋㅋㅋ
    새글 기대할게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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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학 관련도서를 읽다가 비슷한 이유(실체없는 것을 늘려놓은 기분)로 작년 9월에 덮어버렸는데 ㅋㅋ 종종 뜬구름같은 소리로 들릴 때가 확실히 있을 것 같아요.
        어디까지 알아아하나 궁금해서 미술사를 석사에서 전공하신분께 질문하니 세잔과 관련되는 퐁티나 베이컨과 관련되는 들뢰즈 정도는 아는게 좋다고 말씀해주시더라구요.
        저는 미학관련 책을 작년에 덮어버렸는데 올해 또 만나게 되어서 ㅎㅎ….읽어야하나보다하고 순응하고 읽고 있네요.

        최근 글에 이어 다음글도 기대할게요(재촉하는 것은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혹시 오해하실까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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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ㅋ 책을 다 읽었으므로, 다음글은 오늘 밤에 올라갑니다.
          들뢰즈, 푸코, 보드리야르, 바르트, 퐁티, 베르그송 등등등 알면 알수록 근현대 미술을 이해하거나 말로 풀기에 좋겠죠. 그런데 그 태도가 현학적인 것, 즉 ‘있어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즐기고, 관점을 갖는 것이지, 어떻게든 저명한 이름을 엮어서 진실한 감정에서 멀어질 필요는 없는 것이거든요. 즐기는 것과 객관화하는 것 사이, 그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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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느 정도는 공감해요~
        퐁티나 들뢰즈를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 시험을 봐야하니 달달 외워야하긴 하는데 이런 철학적 내용과 개인적인 작품 감상과 항상 연관지어야하나 의문이 들었거든요.
        미학이 작품을 읽는 하나의 지식적인 도구인 것도 맞으나 그것을 떠나서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도 중요한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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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평론은 어려운 길이 맞는 것같아요.세계화나 미술시장의개방을 생각하면
    마냥 우리나라안에서 인상비평이나 주례사적 비평으로 작품성을 설득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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