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Black Panther, 2018)

※ 관점에 따라 스포일러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똥에 망토를 입혀놓아도 재미있는 히어로 영화가 나올 것 같았던 마블이 이번에는 아주 오랜만에 실패했다. 마블표 영화에 의례 기대하기 마련인 살아 숨쉬는 영웅들의 인간적인 매력과 견고한 캐릭터들의 협연에서 나오는 화학작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응원하고 싶지만, 아버지의 과오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수긍할지 의문이다.

신성한 피의 대물림, 왕권 계승의 실패와 좌절, 타락한 혈연에 의한 고난의 행군, 그리고 지지자를 힘입은 왕권 재탈환과 각성의 플롯은 <라이온 킹>의 그것에서 일보도 전진하지 못했다. 아프리카의 가상 국가를 상정하고 그들의 문화를 여기저기서 채집해다가 콜라쥬하는데, 이러한 시도는 문화제국주의자들이 거대 자본을 앞세워 빚어내는 ‘시뮬라크르’의 향연, 그 자체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그 시뮬라크르가 재미와 통쾌함을 선사했다면 더부룩함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넘어갔을 법 한데, 인물들이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아프리칸-잉글리시’ 발음만큼이나 조악했기에 보는 내내 몰입을 방해케 하는 요인이 되었다. 앵그르의 욕녀가 식민지배자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너무나 아름답기에 함부로 폄훼 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앵그르까지 갈 필요도 없이, 마블은 모기업 창고에서 한스 짐머와 엘튼 존의 <라이온 킹> OST 부터 꺼내서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 바로 거기, 키치와 예술의 경계가 있다.

블랙 팬서는 세계관 속 1세대 히어로들의 퇴진과 맞물려 앞으로 점차 더욱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지금의 평면성, 우유부단함, 따분함을 걷어내고 향후에 어떻게 입체적/실존적 영웅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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