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 2017)

마치 처음부터 35년 터울의 장기 프로젝트로 기획된 것 마냥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진다.

모든 데이터가 사라지게 된 계기,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는 리플리컨트의 중대한 가치, 더욱 암울해진 시대상에 나름의 방식대로 적응해 살아가는 군상의 모습 등 세계관의 모든 자질구레한 설정들이 더할 나위 없이 합리적인지라, 느슨한 전개임에도 아주 수월하게 몰입된다. 무엇보다도 모든 비밀들이 결국에는 진정한 주인공인 데커드에게로 귀결되면서, 1편에서 차마 듣지 못했던 뒷 이야기를 마저 듣는 것 같은 뿌듯함을 안겨준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저주받은 명작’으로 손꼽히는 1편과의 이러한 긴밀한 연계성은 35년만의 후속편에 충분한 의의를 부여하며, 속편, 리부트, 리메이크로 점철된 작금의 영화계에 훌륭한 본보기를 남긴다. 그럼에도 O.S.T.가 연계되지 않은 점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리플리컨트를 다루고 있는 디스토피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뻔한 질문과 답변은 이 영화에서도 상기된다. “누가 창조자이고 누가 피조물인가?”, “누가, 어떻게 가상과 실제를 판가름할 수 있겠는가?”, “인간미를 갖춘 복제와 인간미를 상실한 인간 중 누가 진정한 인간인가?” 같은 질문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과 답변이 식상하지 않은 까닭은 그것을 포장하고 있는 작가주의적 정성과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탁월하기 때문이다. 과밀한 회색 도시, 광활한 폐기물 처리장, 방사능에 오염된 폐허 등 주제가 되는 장소들이 보여주는 고유한 색조는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암울한 현실감으로 가득하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곳곳에서 툭툭 튀어 나와 제3세계 이방인에게 역으로 점령당한 제국주의자의 상실감을 상기시키고, 전자제품, 집기, 탈 것, 의상 등 눈에 보이는 그 무엇하나도 허투로 놓여진 것이 없다. 물론 2049년에 드론이 탑재된 비행-자동차가 상용화되고, 심지어 그때까지도 푸조가 존속하여 LAPD에 납품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워서 몰입을 방해하기는 했다.

무감각한 리플리컨트에서 서서히 ‘인간 보다 인간적인 존재’로 각성해가는 과정을 표현한 라이언 고슬링(Ryan Gosling)의 연기는 안정적이다. 아나 디 아르마스(Ana de Armas)가 맡은 AI 비서 조이는 가장 낮은 가치를 지닌 인격체가 가장 높은 수준의 인간미를 보여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효과적으로(혹은, 효과적인 외모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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