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르 몰레의 「조르조 바사리: 메디치가의 연출가(출1995, 역2006)」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E. H. 곰브리치의 말을 가장 명확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문헌이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일 것이다. 바사리 본인은 미술사라는 학문 영역에서 시조격의 위상을 바란적 없지만, 개별 미술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서 미술의 역사를 조망한다는 관점은 그를 통해 최초의 미술사 방법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550년 초판에서 정점, 쇠퇴, 부활이라는 미술 발전의 일관된 궤적을 전제했던 바사리의 미술사적 관점은 1568년 개정판을 통해 미묘하게 변화하였다. 경직된 역사적 발전 궤적 보다는 개별 미술가들의 특수성을 보다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미술가가 미술사의 중심에 있다는 본질적인 견해는 변화하지 않았다.

이처럼 미술의 역사를 만든 것이 미술가이듯, ‘미술사의 역사’를 만든 것은 미술사학자이다. 미술사학자로서 바사리의 저술을 통해 ‘유사 미술가 열전’의 범람과 그에 반하는 새로운 관점들─도상학, 미술감식, 절대이념, 고대모방론 등─이 연이어 제시되고 수많은 논쟁과 협력 속에서 미술사라는 학문이 성립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술가 바사리’는 ‘미술사학자 바사리’의 명성에 눌려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 이 책, 「조르조 바사리: 메디치가의 연출가」는 미술사학자이자 미술가로서 바사리에게 균형잡히고 합당한 평가를 돌려주기 위한 전기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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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바사리는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르네상스적 천재와는 거리가 멀다. 치마부에와 조토처럼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하지도 않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처럼 다방면에서 특출난 천재의 면모를 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그에게는 준수한 수준의 예술적 재능이 있었지만, 타고난 전채들의 그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오늘날 그의 찬란한 명성을 지탱하고 있는 배경은 지위와 성취에 대한 뜨거운 열망, 능수능란한 협상가적 면모와 정치력, 꼼꼼한 수집벽, 자기애적 과시욕망,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보낸 치열하고도 지난한 시간들이다.

롤랑 르 몰레(Roland Le Mollé)의 바사리 전기는 미술사 서술의 위대한 초석을 마련한 조르조 바사리의 다양한 업적과 인간적 면모를 입체적으로 포착하였다. 미술사가, 화가, 건축가, 그리고 메디치가의 가신으로서 바사리의 행적을 빠짐없이 꼼꼼하게 기록하였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생활과 성격까지 683쪽의 지면에 낱낱히 드러내면서 국내에 번역된 유일한 바사리 전기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저자는 바사리의 방대한 작업량과 우수한 예술적 성취, 무엇보다도 「미술가 열전」 집필이라는 위대한 업적에 존경심을 보내면서도 찬양 일변도의 저술에 그치지 않았다. 바사리가 여러 지인들과 주고 받은 서신들을 꼼꼼히 분석하여 그의 치졸하고, 소심하고, 탐욕스럽고, 조급하고, 이기적인 면모까지 낱낱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미술사 교과서에 스치고 지나가는 역사적 인물 중 하나로서가 아닌 살아 숨쉬고 있는 인격체로서의 바사리를 목격하게끔 한다. 또한 바사리가 속한 16세기의 토스카나와 로마 정세를 간결하면서도 흥미롭게 서술하여 시공간적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특히 바사리의 개인사를 메디치 가문의 흥망성쇠와 연계시켜 서술함으로써, 당대 최고 지배자의 권력 의지와 예술 취향이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예전에 G. F. 영의 「메디치」를 읽었던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굉장한 도움을 주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매우 우수한 전기이지만, 메디치가와 이탈리아 정세에 관한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로 많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바사리의 생애에 집중하는 전반부에 비하여 역사적 배경지식을 많이 담고 있는 후반부에서는 읽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 또한 바사리가「미술가 열전」의 저자라는 이유로 회화와 건축에서의 업적이 과소평가되었다는 점을 강변하듯, 이 책의 후반부는 작품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정작 도판은 없으므로 흥미가 반감되는 것이다. 작게라도 도판들이 제시되었다면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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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위대한 성취는 어떤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보다는 그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찾아오는 것 같다. 바사리는 인문학적 지식을 갖춘 뛰어난 화가이자 건축가였지만, 르네상스의 위대한 천재들에 비하면 그 어느 하나도 탁월한 예술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예술, 특히 당대 미술의 기초이자 본질로 여겨지던 소묘를 사랑했고, 열과 성을 다해 그것을 옹호했다. 그 뜨거운 애정이 같은 예술 세계 속에 속하는 위대한 선배들과 동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그 관심과 앎이 「미술가 열전」을 탄생시킨 토대가 된 것이다.

“나의 사랑스런 바사리여, 그대는 소묘와 색채와 글로써 우리 시대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노라!”

– 돈 가브리엘 피암마

한 시대를 아름답게 만들어 줄 정도로 자신의 예술을 사랑했던 위대한 저술가이자 예술가의 삶은 진정 부럽고 존경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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