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풍경 展 (문래동사진관 빌딩, Art studio + gallery)

오래된 철공소들이 즐비한 문래동에서 소규모 그룹 전시 「제3의 풍경 展(18.3.31.~4.15.)」이 열렸다.

녹슨 철 자재들과 빈티지한 그래피티들이 뒤섞인 을씨년스러운 뒷골목에 ‘Art Studio + Gallery’ 라는 너무나 직관적인 간판을 달고 있는 공간이 보인다. 6.5미터 너비의 이 작은 지하 공간은 이번 전시의 기획자이자 출품 작가이기도한 현소영 작가가 직접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그녀는 지역복원대책의 산물인 문래창작촌과 오래된 철공소들이 이질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문래동에서 자신의 술집을 운영하면서 지역 사회에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창작 활동도 병행해 나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동시대의 공간을 바라보는 네 작가의 개성적인 시선이 담겼다.

양은영은 ‘2017 아시아프(ASYAAF)’에 이어 도시화된 낯선 풍경들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담은 소묘 2점을 출품했다. 작가는 <가려진 공간(2018)>을 통해 그동안 주제 속에서 소품으로 다루어졌던 하수구를 주인공으로 끌어 올린다. 여기서 하수구는 도시의 안락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대다수가 굳이 들춰보려고 하지 않는, 그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오브제로서 기능한다. 하수구의 차가운 철망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오물의 3차원적 물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드로잉은 쓸모 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들에 대한 각성과 재인식을 촉구한다. 더러운 운동성에 대한 생생하고 집요한 묘사는 정갈한 사다리꼴의 원근법으로 포장된 구도와 맞물려 엄격히 통제된 작가의 자의식을 드러낸다. 주제의식면에서는 두터운 진흙과 분변에서 오물의 미학을 발견한 뒤 뷔페(Jean Philippe Arthur Dubuffet)를 연상케하지만, 접근 방식에서는 그와 정반대로, 즉물적인 감각 보다 사유에 소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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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영, <가려진 공간(2018)>

현소영은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손에 넣은 찢겨진 결혼사진을 발견된 오브제로 출품하였다. 신랑신부와 친인척들로 보이는 오래된 결혼사진 속 인물들은 얼굴이 찢겨져 나간 상태로 작가에게 발견되었다. 찢겨진 사진이 대게 그러하듯, 이 사진도 모종의 사연을 암시하며, 한 가정의 예기치 못한 파국을 짐작케한다.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의 얼굴 없는 군상은 관람자의 불안감과 부정적 상상력을 부추기며 공감 없는 대화의 막막함을 상기시킨다. 또한 뒤샹을 필두로 이미지의 신화화와 원본의 권력을 파괴하기 위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략이 100여년간 집요하게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사진의 얼굴들은 여전히 원본성의 신화에 천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정의 파괴, 관계의 단절, 정주환경으로부터의 이탈 등을 상징하는 찢겨진 결혼사진은 현대사회의 고통과 병폐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존재함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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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소영 작가. 뒤에 보이는 작품은 Antoine FELIX의 <공사장 팬스(일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 출신 작가 Antoine FELIX는 공사장 팬스에 그려진 키치적 자연에 동화된 듯한 퍼포먼스를 사진으로 찍어 대형 걸개로 제시했다. 현대적/상업적 트롱프뢰유(trompe-l’oeil)를 상징하는 공사장 팬스의 자연은 결코 실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상실감만을 배가시키는 시뮬라크르이며, 그 자연의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행위는 존재의 무기력함을 증폭시킨다.

제3의 풍경 展 (문래동사진관 빌딩, Art studio + gallery)”에 대한 답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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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하수구를 가리고 있는 잔디(식물)를 그려 도시의 이면을 표현한 것이지만. 제 작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셨네요. 뒤 뷔페는 리서치 해볼께요. 감상평 고마워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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