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의 「인류의 꽃이 된 도시, 피렌체(2016)」

제목이 예고하듯, 지적인 교양서적이라기보다는 편파적인 ‘피렌체 찬가’에 가깝다. 지식 수준은 아르노 강 수심에도 훨씬 못 미치고, 내러티브가 조각나 산만한 느낌이다. 르네상스와 피렌체 역사에 관심있는 중고등학생을 위한 교양서 정도로만 생각하면 무난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불필요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표현들과 탄식이 많이 등장하는 점이 특히 아쉽고, 신학을 전공한 저자의 가톨릭적 색채가 적나라하게 묻어나는 점 또한 아쉽다. 이 점을 앞에서의 지적과 연계하면, 가톨릭 계열 중고등학교의 권장 도서로서는 합격점을 줄 수 있겠다.

피렌체 역사를 다루고 있으므로 종교의 힘과 권위에 대한 논의는 큰 지분을 차지할 수 밖에 없겠지만, 미술사에서 보편적으로 합의된 용어들까지 가톨릭 용어로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특히 ‘수태고지’를 ‘주님탄생예고’로 대체한 대목이 책 전반에 걸쳐 종종 등장하는데, 보고 또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로마에서 신학을 전공한 저자는 단순히 문화예술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패러다임 전반에 걸쳐 르네상스의 찬란한 인문주의를 복기하고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현대사회의 온갖 병리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 본질을 사랑했던 르네상스의 정신 속에 담겨있다고 판단하며 그 실례를 르네상스의 성지인 피렌체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저자가 주목한 피렌체의 인류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한편으로는 왜곡된 사랑이라는 생각도 든다. 때로 어떠한 대상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그 대상의 본질을 꿰둟어 보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지 않던가. 저자의 피렌체에 대한 사랑도 그렇다. 이 책에서는 문화, 예술, 종교가 찬란히 빛났던 피렌체의 영광만이 등장할 뿐, 토스카나의 타 자치령을 압제했던 피렌체, 종교적 광신에 빠져 수 많은 예술작품을 불태우고 약탈했던 피렌체(시민들), 그리고 야비한 정치적 의사결정으로 숱한 전쟁과 혼란을 야기했던 메디치가 수장들과 교황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시대의 짙은 명암까지 담아낼 수 있을 정도의 깊고 넓은 그릇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피렌체 관광안내 책자에서 실용 지식을 걷어낸 다음 인문주의와 역사적 배경을 좀 더 첨가하고 마무리로 종교적 편향성을 솔솔 뿌리면 이런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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