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 사랑과 죽음 (Michelangelo : Love and Death, 2017)

메가박스에서 수입하고 있는 ‘스크린 뮤지엄’ 다큐멘터리의 다섯 번째 개봉작이다. 내가 본 회차는 ‘클래식 소사이어티 토크’라고 하는 고고한 수식어를 달고, 전문가에 의한 큐레이션이 덧붙여지는 기획이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완성하고, 메너리즘의 문을 열어 젖히기까지한 천재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망하였다. 내용 면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었고, 조르죠 바사리(Giorgio Vasari)와 아스카니오 콘디비(Ascanio Condivi)의 미켈란젤로 전기에서 인용한 나레이션과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천재성을 찬양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것 외에는 다른 논의의 선택지가 없기도 하다. 천재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천재는 그냥 천재이다. 미켈란젤로는 기를란다요의 공방에 수련생으로 들어간 13살 때부터 이미 천재였다. 거기에 메디치의 후원과 신플라톤주의 교육 등을 결부시켜보았자, 기실 본질에서 벗어난 ‘이유 찾기’, ‘역사학적 원류 찾기’ 강박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천재일 뿐이다.

사실 이런 컨텐츠의 미덕은 내용 보다는 시각성에 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모두 국보급을 넘어서 인류문화유산급의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 가더라도 굳건한 펜스와 인파에 막혀 멀찍이 떨어져서 볼 수 밖에 없다. 고화질의 대형 스크린으로 그의 작품들을 낱낱이 해체하듯 훑어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미덕이다. 화면이 <다비드(1501-1504)>의 손등에서 박동하는 정맥을 비출 때, <피에타(1489-1499)> 성모의 옷 주름에 다가갈 때, 500년도 더 흐른 지금도 저 경지에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기에, ‘역사는 진보’라는 명제마저 부정하게 된다.

상영을 마치고 ‘클래식 소사이어티 토크’의 호스트로 등장한 미술사학자 안현배는 미켈란젤로가 26살 때 제작한 <피에타(1489-1499)>와 죽기 직전까지도 붙들고 있던 미완의 <피에타(1552-1564)>를 비교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누가봐도 너무나 아름답고, 마치 천상계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성모자의 모습을 담은 청년기의 피에타와,
거칠고 투박하며 불편해보이기까지한 자세로 서있는 노년기의 피에타 ──

기고만장했던 한 천재 예술가가 50여년의 세월을 오직 예술만 바라보며 견디는 사이에, 어느덧 극명하게 변화해버린 시각성과 표현력이 두 작품에서 대조된다. 노년의 피에타는 보다 인간적이고 불완전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두 신성한 인격체의 황홀한 교감과 절절한 슬픔이 더욱 짙게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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