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데만트의 「시간의 탄생: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과 문명의 역사(2015/2018)」

712페이지로 시간에 대한 모든 관념과 문화를 아우르는 이 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간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모두에게 통일된 형태로 지배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권력의 영속성과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정치적 의도와 경제/산업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맞물린 결과이다.

실상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고대사에 정통한 대학자 알렉산더 데만트(Alexander Demandt)가 온갖 사료와 전승을 총 망라하여, 동서양과 고대-근현대를 넘나들며 설명해주니 훨씬 유익하고 신빙성 있게 들린다. 스스로 신나서 설명해주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지식의 파도타기는 유익함을 넘어 지적인 아름다움의 경지에까지 다다른다.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아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제도들의 기원과 거기에 얽혀 있는 이데올로기를 살펴보는 작업은 지적 관음증을 자아낸다. 하물며 ‘시간’은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이고, 매순간의 호흡처럼 우리와 긴밀하게 맞닿은 개념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고, 어쩌면 영원히 탐구해야 할 주제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시간과 관련되어 사용하는 단어들의 어원을 고대 그리스, 바빌로니아,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되짚어보고, 인류의 뿌리깊은 관념들의 흐름을 조망한다. “천둥 번개를 휘두르는 유피테르(Jupiter)의 날(dies Jovis)은 게르만족의 천둥신이었던 도나르(Donar)의 날(Donnerstag)이며, 앵글로 색슨족은 토르(Thor)의 날(Thursday)이라고” 부른 것이 지금의 목요일이라니 충격적이다. 마블이 내놓은 <토르>에 그렇게 열광하면서도 그의 이름이 목요일의 어원이라는 사실은 몰랐으니…. 또 8세기경 켈트족에게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이었던 ‘모든 성자의 날(all hollows day)’이 미국과 유럽을 거치면서 지금의 핼러윈데이로 변질되어갔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어떤 단어들은 고대로 갈수록 더 포괄적인 의미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산업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류가 분업화/전문화된 것처럼, 단어들도 그러한 길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역들이 발생했을까? 그러한 사소한 분열들이 뭉뚱그려진 결과가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역사서들이 아닐까? 그리스어들이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사물(존재)들의 의미에 수많은 손실이 가해졌고, 이 손실이 서구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하이데거의 지적에 공감을 표하게 되는 지점이다.

때로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노학자가 채득한 삶의 지혜들을 풀어 놓은 사상서로서의 미덕도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을 온 몸으로 마주한 저자는 나이듦과 죽음을 거스르려는 허망한 노력들에 대해서 지적하고, 젊은이와 노인에게 서로가 배워야 할 것이 있음을 ‘꼰대’스럽지 않게 조언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숨가쁜 지식의 향연 속에서도 반감이 들지 않는 지혜들이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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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시간의 개념에 대한 인식은 순환적인 것에서 선형적인 것으로 바뀌어 왔다. 하지만 시대와 민족의 맥락에 따라 두 개념은 여전히 혼재되며 모습을 드러낸다. 시간을 어떤 형태로 믿던지 간에 그것은 ‘사실’의 문제라기보다는 ‘신념’의 문제에 가깝다. 무구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선형적이고, 규칙적이며,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에 대한 믿음이 아인슈타인에 의하여 깨진 것도 불과 100년 전의 일이다. 기술과 사상의 변화 속도를 감안하면,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부지부식간에 언제든 우리를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시간의 변혁, 그리고 새로운 시간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역사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그 변혁을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후대에는 분명히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바로 헤겔이 지적했던,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개를 펴는 황혼녘이다. 이것이 알렉산더 데만트가 시간에 대한 관념의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가장 중요한 교훈인지도 모른다.

‘최종적’이라는 단어는 역사학자들의 사전에서는 지워야 할 단어이다.

알렉산더 데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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