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 한국어버전 10주년 (세종문화회관)

노래와 춤의 분업, 송스루(Song-through) 형식, 대극장용 연출 등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 뮤지컬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는 대작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어 버전이 처음으로 소개된지 10년만에 초연과 같은 장소에서 다시 열린다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2008년 당시,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에스메랄다 役의 바다는 완전히 제 옷을 입은 것처럼 날렵하게 무대 위를 누볐고, 아이돌 출신 가수가 아닌 뮤지컬 배우로서 당당하게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윤형렬은 ‘과연 한국에서 콰지모도를 맡을 사람이 있겠는가’라는 우려를 완전히 종식시킬 정도의 압도적인 성량과 감성을 보여주었고, 엔딩곡인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에서 기어이 참아왔던 눈물을 쏟게 했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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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을 사랑하고,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너무나 자주 즐겼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작품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하는 비극적인 요인이 되기도 한다. 나는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공연, DVD, OST를 너무 자주 즐긴 것 같다.

케이윌의 콰지모도는 성량이 부족하고 저음에서 발음이 뭉개지는 까닭에 노래와 연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그래서 그가 어떤 이야기 속의 실존적인 인물로 보이기보다는 ‘아, 지금 노래하고 있구나’라는 인상을 준다. 내가 ‘성공적인 「노트르담 드 파리 」 공연’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에서 눈물이 흐르는지의 여부인데, 그 점에서 이번 공연은 실패작이었다.

윤공주의 에스메랄다는 역시 베테랑 답게 안정된 노래와 연기를 선보였으나, 집시 여인 특유의 신비스럽고 치명적인 관능미를 표현하는데는 서툴렀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조련되지 않은 야생마 같은 매력을 좀 더 끄집어 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본인이 치명적인 연기를 하는 것 자체를 민망하게 느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오리지널 DVD의 에스메랄다인 엘렌 세가라(Helene Segara) 보다야 훨씬 잘했다.

함연지는 페뷔스의 약혼녀인 플뢰르 드 리스를 맡아 미미한 역할만을 수행하면 그만이었지만, 그마저도 형편없는 실력으로 망쳐 버렸다. 캐릭터 자체가 평면적인 것이야 본인이 어쩔 수 없는 문제이지만, 오리지널 캐스트도 아니면서 해석이 곤란한 수준의 발음을 선보여 배우로서의 자질 자체를 의심케 했다.

페뷔스 役의 최수형은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었지만, 배역의 음역대를 소화하는 것이 다소 버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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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문제적 인물들에 대한 비판을 모두 긁어 모아도 이제부터 마이클 리에게 헌정할 비판에 비하면 아주 소소한 티끌처럼 느껴진다.

그가 <대성당들의 시대> 첫 소절을 띄우는 순간에 이미 이 공연에서 감동을 받기란 쉽지 않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발음은 매우 절망적인 수준이어서 이 공연을 자주 접한 나에게 조차 해석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발성은 너무나 평이하여 깊은 울림과 흡입력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혼란스러운 파리(Paris), 그 전체적인 난맥상을 고고한 지성과 기민한 감성으로 관조해야 하는 그랭구와르를 해석함에 있어서 너무 가볍게만 접근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의 통통 튀는 듯한 동선과 잔망스러운 몸동작들에서 음유시인 특유의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은 이내 휘발되어 버렸다. 여기에 그의 작은 체구와 유난히 현란한 바지 무늬까지 결부되어 그랭구와르의 이야기에 주목할만한 어떠한 이유도, 어떠한 카리스마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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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 役의 최민철과 클로팽 役의 장지후는 연기, 노래, 캐릭터 등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마이클 리를 향한 분노의 절규는 더 높은 하늘까지 치솟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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