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사물들의 미술사 1: 액자(2018)」

작품을 둘러싼 사물로 쓰는 미술사라니, 참으로 야심찬 기획이 아닐 수 없다. 2018년 5월에 첫 선을 보인 「사물들의 미술사」 기획은 앞으로 5권까지 이어질 전망이며, 본 편의 액자 이후로 의자, 조명, 화장실이 순차적으로 다루어질 예정이다. 물론, 출판사 경영상의 사정으로 중도에 엎어지지 않는다면.

파리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이지은은 302페이지의 앙증맞은 핸드북으로 그간 외면되어 왔던 ‘액자’에 온전히 집중한다. 액자는 무엇인가? 그림을 감싸고 보호하는 기능적인 도구이다. 연약한 캔버스 상태로 놓여져 있는 작품을 본다는 것은 화가의 아뜰리에에서가 아니면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액자가 기능적인 역할만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금박이 덧씌워진 바로크풍의 액자는 그것이 대단히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임을 암시하며 고압적으로 우리를 내려다 본다. 희거나 검은 금속 소재의 액자는 작품에만 온전히 집중해 줄 것을 요청하며 작가와 소장자의 실용주의적 면모를 암시한다. 반면, 액자가 거세된 채 전시장에서 홀로 나부끼는 낱장의 작품들을 동시대 전시에서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아카데미즘의 허례를 벗어버리고 즉물적인 촉감으로 관람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싶은 작가의 전략이다. 이처럼 액자는 작품을 둘러싼 다층적인 맥락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미술사적/비평적 서술이 될 수 있다.

책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겐트 재단화(1432)>,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 연작(1522-1525)>, 루이 14세를 그린 브와트 아 포트레(boite à portrait) 등 구체적인 작품의 사례 속에서 액자에 얽힌 사연들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를 통해 액자의 역사가 곧 미술을 둘러싼 권력과 탐욕의 반영임을 보여준다. 특히 브와트 아 포트레에 대한 조명은 이 책의 독특한 성과인데, 악세서리와 액자의 중간적인 성격을 지닌 오브제가 절대권력을 둘러싼 시대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현재 공인된 명화들의 액자가 대체로 19세기 근대 박물관의 성립과 함께 대두되었다는 것도 신선한 발견이었다. 예배당을 방불케하는 근대 미술관의 성역을 구성하는데 일조한 액자는 사실상 고도의 미적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조급함과 효율성의 절충적 산물이었다.

끝으로, 대부분 스쳐지나쳐버릴 액자에 유난히 섬세한 감각을 발휘한 고흐(Vincent van Gogh)와 드가(Edgar Degas)의 사례는 단순한 그림 한 장을 총체적 예술로 끌어올리려는 대가의 집념을 보여주기에 깊은 감동을 안긴다.

간과되었던 액자의 가치를 미술사 서술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저자의 노력은 존중받아 마땅하며, 이 학문에 갓 발을 들인 자들에게 아직도 할 일은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서술이 다소 가볍기 때문에 보다 깊은 학술적 가치와 편집증적인 재미를 누리려는 독자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힌다는 것은 분명하며, 이러한 서술이 작고 예쁜 판형과 맞물려 대중교양서로 저변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지막 장인 ‘모더니즘을 향한 한 걸음, 드가’에서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식 구성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면서 문학적인 가치까지 획득하려고 시도하는데, 정보와 감성의 균형이 적절하게 버무려졌다.

결국 이 책의 주제는 182페이지에 대부분 녹아들어 있다.

그림이 어떤 굴곡진 여정을 걸어왔는지를 액자만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물은 없다. 주인이 바뀌고, 그림을 보는 세상의 눈이 달라지고, 전시되는 장소가 바뀔 때마다 액자는 달라진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액자에 대한 사소한 의문은 결국 그 그림이 당시에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큰 질문과 다를 바 없다.

명작은 명작다운 액자에 끼워져 고고한 미술관의 한 벽면을 차지한다. 하지만 역사의 어느 순간에 루이 14세 시대에 홀대 받던 반 다이크의 작품처럼 명작이 명작이 아니던 시절도 있었다. 그림은 그 자체가 명작이라서 명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명작으로 바라보는 우리가 있기에 명작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2p

이처럼 액자는 작품의 역사성을 드러내며, 그 자체가 작품을 둘러싼 권력관계의 담론이다. 또한 작품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회의 맥락, 즉 관객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사물들의 미술사’라는, 어찌보면 약간은 도착적인 이 시도가 단순한 참신성에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정 사소한 단서로부터 명작의 조건들을 새롭게 구해내는 프로젝트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우리가 작품에 대해서 더 집요하게 공부해야 하는 수 많은 이유들을 계속 상기시켜준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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