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우양 소장품: 예술가의 증언 展 (우양미술관)

우양미술관 1층에서는 낙서展이, 2층에서는 소장품展이 열리고 있다. 이 작은 미술관에서 왜 굳이 공간을 쪼개어 두 개의 전시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관람객 입장에서는 한 번에 두 가지 사유를 끄집어 낼 수 있으니 좋은 점이 있다. 아무리 작은 전시라고 하더라도 기획할 때 드는 육체적/정신적 소요는 대규모 전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문을 쓰고, 브로셔를 만들고, 동선을 구성하고, 작품 선정의 고뇌를 느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런데 이 작은 미술관은 동시에 두 가지 고뇌를 감수하였으니 칭찬할만 하다. 그래도 이 소장품展 준비가 낙서展 보다는 더 수월했으리라. 소장품은 그야말로 미술관의 자산이고 한 식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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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증언 展>은 예술가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들에 주목하고 있다. 경주/포항 지진에서 비롯된 사회적 혼란에서 착안하였다고 하는데, 사실 작품 구성을 놓고 보면 대형 자연재해에 마주한 인간의 무기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다 광의의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포괄하고 있다. 사실상 현대미술에서 사회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나 메시지가 누락된 경우를 오히려 찾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한데 엮는 거대 담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쉽게 말하면, 소장품들을 적절히 걸러서 보여주기 위한 구실 찾기의 일환으로 ‘예술가의 증언’이라는 묵직한 제목을 앞세운 느낌이다.

소규모 전시였음에도 그 안에서 다시 네 개의 구획으로 나뉘었는데, 어떤 구획에는 단 한 작품만 놓여 있기도 했다. 마치 전시 기획의 예시를 보여주고자 안간힘을 쓰는 교보재처럼 일단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그래도 이 전시가 싫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역시 작품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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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름 키이퍼(1988), 제이슨과 미디아

조덕현의 <한국여성사(1991)>은 콩테로 세밀하게 재현한 옛날 사진이다. 구한말에 찍었을 법한 가족사진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크기만 확대해 놓은 모양새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남성들의 얼굴은 모두 짖이겨져서 형상을 알아 볼 수가 없다. 오직 칡뿌리처럼 강인한 여인들만이 입을 앙 다물고 경계심 섞인 눈으로 우리를 마주한다. 이 민족의 역사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것, 그리고 이토록 안락하게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온 것은 결국 우리네 여인들의 희생 덕이 아니었느냐고 묻는다. 작가는 부질없어 보이는 지고한 작업 시간을 애써 상기시키며 우리가 이 여인들을 어떤 자세로 기억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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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Magdalena Abakanowicz)였다. 그녀의 속이 비어 껍데기만 남은 허무한 군상을 창조했다. 린넨 마대를 송진으로 굳혀서 만든 인물은 얼이 빠져 나가 몸뚱이만 겨우 가누는 척박한 존재들이다. 그 육체는 분명 얼굴이 없기에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마치 오늘 아침에 지하철역에서 보았을 법한, 심드렁한 직장인들의 얼굴을 상기시킨다. 80명의 마대인간들이 플랫폼을 향해 나아가듯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모습은 자못 비장하며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 무심한 등판을 계속 바라보면 일순간 군중 전체가 등을 돌려 내 얼굴을 똑똑히 꿰뚫어 볼 것만 같아 발걸음 조차 움츠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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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의 참화와 바르샤바 봉기를 온몸으로 경험한 아바카노비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간의 군집적 생존방식 자체에 매료되었다.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와 같은 실존적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이 분명한 그녀의 ‘아바칸(작가의 이름을 딴 인체상의 이름)’들은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에 매몰되어 철학을 상실해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각자의 내면에 배태된 진정한 해답을 일깨우라고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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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1976-1982), 등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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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1991), 고대 기마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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