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성에 대한 근원을 추적하는 책이다. 언제부터 속도에 대한 묘사가 생겨났을까? 직선, 나선, 쌍, 연속과 같은 개념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서 의구심을 갖기 힘든 이러한 개념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은 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고책방에서 만난 이 책이 그러한 호기심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소재도 좋고, 포괄하는 범위도 넓고, 자료도 빵빵한 책인데 더럽게 재미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 중고책방에 나왔지.
저자는 후기를 통해 교고쿠 나쓰히코나 시노다 마유키의 소설처럼 매 페이지마다 마침표로 끝나도록 구성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즉, 페이지와 페이지에 한 문장이 걸쳐지지 않도록 구성했다는 말이다.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했을까. 아마 책에서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는 ‘책의 오브제化’를 이 책 안에서 직접 구현하기 위하여 그러한 기획을 시도한 모양인데, 결과적으로 책을 완전 버려버렸다. 문장과 사고의 흐름이 뚝뚝 끊어지는 느낌의 원인을 찾고 싶었는데 이 후기가 그 이유 하나를 알려준 것이다.
이 책처럼 ‘잡학박사’를 꿈꾸는 자들을 위한 책은 여러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를 얼마나 흥미있게 꿰뚫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여러 지식과 정보를 그저 장별로 구분해서 나열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고, 서로 연관되는 지점들을 노출하고, 예고하고, 갈무리하면서 적절한 내러티브로 엮어가야 한다. 우리가 백과사전을 읽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가볍게 여러 정보들을 훑고 가더라도 스쳐지나간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책은 ‘오, 이런 원리가 숨어 있었네’ 하다가도 ‘어라, 벌써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나?’라며 맥락이 끊겨버리는 지점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흥미있는 정보들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눈이 감기는 까닭은 내가 지적 호기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정보들을 진열하는 방식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아마 저자는 기획단계에서 이 책을 국제적으로 융통하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일본의 사례와 참고문헌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주제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고, 그 중 일부는 자문화 중심주의로 연결되기도 해서 거부감 마저 든다. 고로 여기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국제적인 관점에서 보편적인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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