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미술여행] 1일차(1/2) – 카 도르(Ca’ d’Oro), 카 페사로(Ca’ Pesaro)

2018. 9. 25.

베네치아와 피렌체를 아우르는 2주간의 여행길에 올랐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 입국일과 출국일을 제외하고 총 10일 동안 단 두 도시만을 머무르는 여행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 특히 르네상스 전후(前後) 회화에 집중하려는 의도에 따라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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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은 대한항공이 운항하는 KLM 항공기를 탑승하고,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베네치아 공항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유럽 최고의 허브인 스키폴 국제공항은 이번이 두번째여서 친숙했고 여전히 쾌적했다. 명시성에만 집중한 노란색 표지판을 따라 바쁘게 오가는 환승객들을 지나치다 보면 드디어 타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최고의 관광지인 두 도시이니만큼 쾌적한 호텔에서 편히 묵을 생각은 버렸다. 국적불명의 다양한 여행자들과 숨을 섞어야 하는 호스텔은 물론 애초부터 배제한 선택지였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역시 에어비앤비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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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바깥에서 좀 더 저렴한 조건으로 묵는 것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미술 기행을 위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절약하고 싶었고, 섬 본연의 맛을 오롯이 즐기고 싶었기에 조금 더 값을 지불하고라도 섬에 숙소를 잡았다. 선택은 탁월했다. 기차역에서 걸어서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었으며, 수상버스 정류장도 코 앞이라 접근성이 용이했다. 방은 넓고 쾌적했으며, 실내 장식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주 오래된 베네치아 전통 아파트 형태 그대로 였기 때문에 현지 문화를 체험한다는 측면이 컸다. 약간은 불편한 듯, 약간은 고지식한 듯, 현지 주택가에 뒤섞여 지낼 수 있었다. 모기장만 있었어도 마음껏 환기하며 더 쾌적하게 지냈을 것을! 피렌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탈리아의 어느 가정집에서도 모기장은 보이지 않았다. 이 민족은 로마 전사들의 후예 답게 강인한 피부를 지닌 것이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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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 맞이한 첫 아침의 일정은 미술관 순례가 아닌 유심칩 구매였다. 안정적인 여행을 위해서는 지도와 검색이 필수이고, 현지 유심칩 구매는 합리적인 여행자들에게 대세가 되고 있다. 나도 도착 당일만 데이터 로밍을 이용했고, 나머지 일정은 선불 유심칩으로 소화했다. 내가 선택한 통신사는 TIM이었다. 이탈리아 유심칩으로 검색해보니 이 업체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탈리아 시장점유율 30%를 상회하는 주류 통신사이기 때문에 대세가 되었을 것이다. 맛집도 그렇겠지만, 인프라 장사인 통신업계에서는 더더욱이 1등 업체가 가장 안정적인 선택지이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TIM 대리점은 대운하를 건너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Negozio TIM / Cannaregio, 1412, 30121 Venezia VE, Italy). 대리점 위치를 찾은 후, 오픈(09:30)까지 시간이 남아서 첫 아침식사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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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의 한국에서라면, 저 두덩어리를 다 먹을 경우 점심을 먹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어질 기행을 감안하여 든든히 먹어 두었다. 현지에서의 첫 카푸치노는 대단히 감동적이었는데, 이 카페의 커피가 맛있었다기 보다는 처음의 감성에 취했던 것 같다.

베네치아의 지리와 관련하여, “미궁이다, 구글맵을 믿지 마라, 뱅글뱅글 돈다” 등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들을 듣고 갔지만 정작 해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구글맵 & 갤럭시S9′ 조합은 뒷 골목과 하수구 하나까지 정확하게 특정한다. 군대에서 공격 작전 중에 길을 잃어 버려서 낙오되어 본 적이 있는 평범한(?) 지리 감각의 소유자가 단 한 번도 해매지 않았으니,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은 안심해도 좋을 것 같다.

다시 유심칩으로 돌아와서, 칩은 우리 돈 4만원 정도면 데이터 10GB를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속도는 유럽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전혀 불만 없고 끊김 없는 수준이었다. 통화는 지원하지 않으니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소통하면 된다. 국내 유심을 제거하고 갈아끼우면 30분 내에 TIM 현지 네트워크로 접속한다. 개통시에는 여권이 필요하다. 여행 중에 여권이 필요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직원이 직접 친절하게 갈아끼워 주었고, 국내 유심칩도 안전하게 밀봉하여 건내주었다.

통신망이 안정적으로 개설된 것을 확인하고, 그 유명한 리알토 다리를 건너 첫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왕 TIM 대리점을 찾았던 김에 거기서 가까운 곳부터 여정을 시작했다. 베네치아 첫 미술관은 카 도르(Ca’ d’Or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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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래된 건물의 정식 명칭은 팔라쪼 산타 소피아(The Palazzo Santa Sofia), 즉 산타 소피아 저택이다. 카 도르는 금빛 저택이라는 뜻인데, 외관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금박과 다색 장식 때문에 붙여진 애칭이다. 지금은 그런 화려한 색채를 찾기 힘들지만 정교한 파사드는 여전히 베네치아 고딕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저명한 콘타리니 가문에 의해 1428~1430년에 지어졌고, 이후 역사의 변혁 속에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가 1894년에 이 저택을 소유했던 죠르지오 프란체티(Giorgio Franchetti) 남작에 의하여 미술 컬랙션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는 대농장 지주인 아버지와 로스차일드 가문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가업을 잇지 않고 온전히 미술 수집에 열정을 다 바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정적인 이유로 1916년에 이 저택과 컬랙션이 이탈리아 정부에 넘어갔으며, 1927년부터는 공식적으로 공공 미술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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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 들어서서 처음 발견하는 작품은 프리미티브 양식의 종교화이지만, 그 오른쪽 끝에서 더 강렬한 인사를 건내는 작품은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의 <성 세바스챤>이다. 화살을 맞고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성 세바스챤은 질병, 특히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의 공포로부터 구원의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며 각광 받았던 소재이다.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자신이 이 갤러리의 핵심임을 역설하고 있는 이 작품은 회색조의 음영과 조각적인 소묘가 두드러지며 대번에 만테냐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별도의 홀이 강조하고 있는 대리석의 추상적인 물성마저도 조각적 양식의 진정한 대가가 누구인지를 상기시키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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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내가 베네치아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으려 해도, 역시나 티치아노(Tiziano)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는 시선을 사로 잡는다. 짙은 어둠을 뚫고 수줍게 드러난 육체는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가 빛이라는 듯 온건한 경계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동체와 얼굴이 서로 반대를 향하며 움직이고 있는 한 여인의 현존성을 강조하고 있는 이 작품은 고대의 규범을 바탕에 두고 새롭게 발견한 빛과 색채의 효과를 실험하는 대가의 역량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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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많은 조각, 소품, 테피스트리가 전시되어 있다. 틴토레토, 한스 멤링(복제), 얀 스탠의 작품은 꼭 보아야 한다. 리알토 다리를 매운 수 많은 관광객들의 인파와 대조적으로 이 곳에서는 조용하고 차분한 관람이 가능했다. 사실 작품들보다는 이 미술관의 구조와 미술관을 통해 바라보는 운하의 정경들이 더 마음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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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는 대운하와의 경계에서 물결이 찰랑찰랑 맞닿으며 수면에 비친 기둥의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할 수 있다. 북샵(book shop)과 연결된 3층 테라스에서는 대운하를 오가는 수많은 택시, 수상버스, 곤돌라의 역동적인 풍경이 보인다.

발걸음을 옮겨 대운하 맞은편의 카 페사로(Ca’ Pesaro)로 향했다. 이곳은 카 도르의 개인 컬랙션 수준이 아닌, 근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춘 제법 큰 규모의 공공 미술관이다. 로댕, 샤갈, 클림트부터 안젤름 키퍼, 제프 쿤스까지를 아우른다. 2층은 특별전을 위한 공간이며, 3층에는 동양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규모에 걸맞게 베네치아 박물관 재단(Fondazione Musei Civici di Venezia)의 소속 기관이며, 그에 따라 베네치아 유니카(Venezia Unica)로 무료 입장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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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페사로는 1659년에 착공되어 1710년에 완공되었다. 주문자는 페사로 가문이었고, 설계는 발데사레 롱기나(Baldassarre Longhena)가 맡았는데, 그는 내가 다음날 방문하는 카 레초니코(Ca’ Rezzonico)도 담당한 바 있다. 그래서 두 건물은 파사드의 우아한 쌍 아치를 공유한다. 페사로 가문이 이 저택에 거주하던 당시에도 비바리니, 카르파치오, 벨리니, 조르죠네, 티치아노를 아우르는 어마어마한 미술 컬랙션이 있었다. 하지만 이 컬랙션은 가문이 파산한 후 런던의 한 옥션에서 정리되었다. 이후 저택의 주인이 몇 차례 바뀐 후 베빌라쿠아 가문에게 최종적으로 넘어갔는데, 이 가문의 라 마사(Bevilacqua La Masa) 공작부인은 1898년에 공공 현대미술관으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이후 베네치아 시 위원회는 당시 초기였던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수집하는 작품들을 이 미술관을 중심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혁 때문에 여기 있는 명작들의 소장경로를 유심히 살펴보면, 비엔날레를 계기로 획득되었다는 언급이 자주 보인다. 참고로, 베네치아가 비엔날레를 통해 미래가 촉망되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얼마나 쉽게 확보할 수 있는지는 세라 손튼의 <걸작의 뒷모습>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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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의 현판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그 유명한 <유디트>로 장식되었다. 실제로 이 미술관에서 클림트의 작품은 이것 하나 뿐이지만, 특유의 신비로운 색감과 오묘한 상징주의적 모티브들, 그리고 그림 자체와 완전히 일체감을 이루는 액자에 의하여 갤러리의 전체적인 분위기 마저 좌우한다. 이 공간에는 클림트의 선배인 프란츠 폰 슈트크와 후배인 에곤 쉴레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어 ‘빈 1900’의 시각적 혁명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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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폰 슈투크, <메두사(1908)>

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 궁에서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특별전을 본 후로, 그의 이름은 나에게 깊이 각인 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볼 때 마다 그 추억이 소환되며 마치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움을 느낀다. 카 페사로에 걸린 메두사는 그때 보았던 <루시퍼>의 강렬한 이미지를 다시 상기시켰다. 한 예술가와의 우연한 만남과 인연은, 비록 그것이 일방통행의 짝사랑일지라도 평생의 예술 경험에 걸쳐 아름다운 순간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선물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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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폰 슈투크, <루시퍼(1890)>

미술관에 들어서자 마자 처음으로 마주하는 작품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칼레의 시민>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칼레시를 구한 여섯 명의 영웅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는 모습을 표현한 청동상이 원작이며, 카 페사로에 있는 작품은 12개의 오리지널 조각 에디션 중 하나이다. 흘러내리는 옷주름과 깊게 패인 얼굴의 명암에서 비장함과 처연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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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얼굴을 더욱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 마감이 고전주의적 조각처럼 말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거친 질감으로 인해서 더욱 강한 실존적 휴머니티를 획득하게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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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포 윌트(Adolfo Wildt)의 <Larass>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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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은 대작 <지옥의 문(1880-1917)> 상단에 포함된 작은 인물상이었으나, 이것이 인기를 끌면서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만을 별도로 크게 확대한 버전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 조각의 오리지날 주물로 제작한 청동상은 총 25개의 에디션이다. 일반적으로 에디션 넘버가 상위일수록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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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총 세 개의 오리지널 에디션을 보았는데, 첫째는 일본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에서, 둘째는 우리나라 세종시에 있는 베어트리파크에서, 그리고 이번 카 페사로에서의 만남은 세번째였다. 세번째로 만난 기념으로 신체의 세세한 부위들을 눈여겨 보았다. 이번에는 The Thinker의 발이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이 발가락은 마치 허망한 공기를 움켜쥐려는 듯 관절 마디마디가 긴장된 상태로 일그러져 있는데, 온 몸으로 고뇌하는, 모든 근육과 체세포까지 동원해서 생각의 심연으로 침전하는 한 영혼을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근현대의 모든 사조를 아우르며 유사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놓은 미술관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천장화와 장식들이 계속 변주됨에 따라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공간에 다다르더라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관람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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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긴 복도를 통해 여러 방을 건너가다 보면 기대하지 못했던 여러 근현대의 대가들을 만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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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름 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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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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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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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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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칸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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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데 키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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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모란디 등이 있다.

이중에서도 내가 카 페사로에서 새롭게 발견한 멋진 화가는 안토니오 동기(Antonio Donghi)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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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3월 16일에 로마에서 태어난 안토니오 동기는 1908년부터 1916년까지 미술학교를 다녔으며,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에는 주로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1920년대 이후 이탈리아의 신고전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비평가들로부터는 앙리 루소(Henri Rousseau)와 조르쥬 쇠라(Georges Seurat)의 연장선상에서 종종 논의되었다.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대중으로부터도 큰 사랑을 받은 그는 1927년에 피츠버그 카네기 재단에서 주관한 국제전람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1940년대 이후로 그는 당대의 주요한 흐름인 모더니즘 회화와 거리를 두면서 다소 간과된 측면이 있지만 스스로의 예술적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작업과 전시를 계속 이어갔다. 말년의 안토니오 동기는 주로 풍경화에 천착하였고, 선적인 양식을 꾸준히 추구했다. 1963년 로마에서 생을 마친 동기의 주요 작품들은 주로 이탈리아 컬랙터들에 의하여 수집되었으며, 로마 박물관(Museo di Roma)의 컬랙션이 가장 유명하다.

카 페사로에서는 한 개인 컬랙터가 기증한 여러 소장품들 중에서 안토니오 동기의 대형 회화 석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의 견고하면서도 풍성한 양감의 인물들은 평면성이 강조된 배경과 대조를 이루며 화면을 박차고 튀어 나오는 것 같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영원성의 순간에 파스텔톤의 옷을 입고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인물들은 마치 우리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무심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소통의 회한을 남기며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에 주목하게 만드는 동기의 숙련된 연출기법이 단 석 점의 작품을 통해서도 충분히 전해진다. 이렇듯 단정하고 풍성한 양감과 고요한 순간들은 늘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곤 한다. 새로운 미술관에서, 그동안 간과되었던 새로운 대가를 만나는 일은 늘 짜릿한 보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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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는 이탈리아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리테일러인 에포카 피오루치(Epoca Fiorucci)의 개인전이 열렸다. 팝아트와 패션이 결합된 이 전시는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기에 훑어만 보고 나왔다. 3층의 동양박물관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일본 예술품과 무기,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서구의 관광객들에게는 베네치아에서 오리엔탈리즘을 만나는 시간이 흥미로울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전혀 신선함도 재미도 감동도 없었기에 마찬가지로 훑어만 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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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페사로 관람을 마치고 1층 카페테리아에서 베네치안 비어와 라이스 샐러드를 먹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쌀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을 권한다. 사진을 보고만 있어도 아직까지 턱관절이 얼얼해지는 느낌이다. 이런 생쌀 같은 음식을 먹으며 쌀의 모든 가능성을 맛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가련한 이탈리아 주민들을 생각하니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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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카페테리아에서 운하를 바라보며 우아하게 식사를 하다보면 갈매기 한 마리가 어느새 곁에 다가와 요기꺼리 하나라도 던져주기를 바라며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베네치아에서는 비둘기나 갈매기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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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부 도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진은 저자가 직접 촬영한 것이며, 장비는 Sony RX10 MK3이다.
  2. 작가 및 장소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은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였다.
  3. 딱히 대단한 컨텐츠는 없지만, 그럼에도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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