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미술여행] 2일차(2/2) – 카 레쪼니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산타 마리아 델 로사리오 성당

2018. 9. 26.

산토 스테파노 성당을 빠져나와 서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서 운하를 건너면 바로 카 레쪼니코(Ca’ Rezzonico)가 나온다. 수상버스 역명이 카 레초니코이기 때문에 찾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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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끔한 흰 대리석의 파사드가 대운하를 바라보고 있는 이 아름다운 건물은 18세기에 완공되었다. 하지만 건설 이력은 17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초 본(Bon)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이 부지에는 두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시 지사를 역임한 필리포 본(Filippo Bon)은 1649년에 두 건물 부지를 합쳐 큰 궁을 짓겠다는 계획을 수립한다. 베네치아 바로크 건축의 선두주자였던 발데사레 롱게나(Baldassarre Longhena)가 이 작업을 위하여 고용되었는데, 그는 카 페사로의 건축도 담당한 바 있다. 1661년 경에는 대운하 파사드와 저층부가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건축가와 주문자 모두 본 궁(Palazzo Bon)의 완공을 보지 못했다. 롱게나는 1682년에 세상을 떠났고, 주문자 필리포 본은 무리한 건설 계획 때문에 파산 지경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결국 본 가문에서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쟘바티스타 레쪼니코(Giambattista Rezzonico)에게 넘어갔다. 그는 롬바르디아 출신의 은행가이자 섬유 업자 였는데, 베네치아에서 정착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베네치아의 작위를 샀고, 본 궁을 매입했으며, 그것의 완공을 위해 새로운 건축가를 고용했다. 결국 레쪼니코 덕분에 건설은 여러 가지 난관을 뚫고 차츰차츰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파사드는 1750-1752년에 완료되었고, 인테리어는 1756년에, 최종 장식은 1759년 경에 완성되었다. 이때쯤 레쪼니코 가문은 교황(클레멘트 13세, 쟘바티스타의 동생 까를로Carlo)을 배출하는 명실상부 최고 명문가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이 화려한 시대의 지리적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카 레쪼니코이다.

하지만 역시나 영원한 것은 없는지 1810년에 이 가문의 대가 끊기면서 건물의 운명도 휘청거리게 된다. 처음에는 예수회의 학교 건물로 잠시 운영되다가 다시 여러 유력 가문, 정치가, 예술가들에게 팔리는 신세로 전락한다. 결과적으로 1930년대 대공황기에 매물로 나온 이 건물을 1935년에 베네치아 시에서 구입하고, 18세기 베네치아 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술관으로 변모시켰다. 시에서는 레쪼니코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원작 프레스코들을 복원하면서 티에폴로, 구와르디, 카노바 등의 컬랙션을 추가하였다. 1970년대부터 대대적인 복원공사가 이어져 왔으며, 2001년에 복원이 모두 완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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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레쪼니코에 들어서면 중정이 뚫려 있는 독특한 구조를 만나게 된다. 밖에서 보면 그냥 막혀 있는 사각형의 건물 같지만 이 안에는 하늘을 담는 커다란 창이 있는 것이다. 이 창을 감싸고 있는 육중한 기둥에서 안정감과 개방감을 느끼며, 저 발코니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가족들 또는 하인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을 18세기의 거주민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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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려는 듯, 저층부에는 많은 소품, 가구, 오브제들이 회화와 어우러지면서 귀족의 집을 몰래 염탐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좀처럼 보기 드문 악기와 장식들은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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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창밖으로 보이는 베네치아의 풍경들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이런 광경을 베네치아의 여러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만나다 보면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창 너머로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인데 다른 무슨 회화가 필요하겠냐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역시나 회화는 필요하다. 3층에 올라가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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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은 베네치아 출신의 여러 화가들의 회화를 잔뜩 모아 놓은 곳이다. 베네치아 유니카로 패스하는데 의의를 두는 관광객들은 여기까지 잘 올라오지 않고, 올라오더라도 금새 휙 돌아 나가기 때문에 매우 조용하게 작품과 오롯이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름값이 높은 화가들은 주로 1, 2층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발견하는 화가들의 이름은 다소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소위 ‘대가’들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신선한 발상과 실험적인 구성이 엿보이는 이채로운 작품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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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사소페라토(Sassoferrato)라고도 불리는 조반니 바티스타 살비(Giovanni Battista Salvi)의 <가시관을 받는 시에나의 성 카타리나>를 보면, 아기 예수로 부터 환상을 체험하는 성인의 모습이 매우 독특한 시선으로 표현되었다. 통상 아기 예수가 성모의 품에 안겨 오른손을 들어 축복하는 모습은 많은 도상에서 일반적으로 등장하지만, 벌거벗은 아기 예수가 단독으로 등장하여, 두 발로 서서, 가시관과 묵주를 동시에 건내는 형태는 드물다. 성인은 매우 아름답고 평온한 표정으로 전혀 놀랍지 않다는 듯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데, 라파엘 전통의 이성적 세계관을 따르고 있다. 결국 이 작품에서는 전통의 파괴와 순응이 묘하게 절충되면서 이질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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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라지오 팔라기(Pelagio Palagi)의 <바다에서 떠오르는 비너스(c.1830)>는 신비로운 푸른 색조와 인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아름다운 작품인데, 기존 비너스 도상에서의 수동적인 모습을 버리고 두 팔을 벌린 채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려는 당당한 흑발의 주인공이 우리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 당긴다.

이처럼 카 레쪼니코에서 그동안 간과된 나만의 ‘취향저격’ 화가들을 찾아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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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카 레쪼니코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공간은 피에트로 롱기(Pietro Longhi)의 방이었다. 롱기는 제국주의가 기세를 떨치기 시작하고, 국제적으로 문물이 교류되며, 부르주아에게 부가 집중되어 가던 당대의 생활상을 묘사하는 작품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카 레쪼니코에서 소장한 <코뿔소 클라라(1751)>은 새로운 문물을 보며 즐기는 당대 귀족의 유희를 다룬 작품으로 롱기의 작품 중에서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다(나도 이 작품을 보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마침 타 미술관에 대여된 상태라 보지 못했다). 롱기의 방에는 18세기 베네치아 귀족의 생활상을 다룬 연작 20여점이 걸려 있다. 이 작품들은 매우 명료하게 구조화된 일상의 한 풍경을 담고 있으며, 미적으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패션, 관습, 사물, 건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사료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국 이 작품들은 18세기 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카 레쪼니코의 정체성에도 가장 부합하는 컬랙션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베네치아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어쩌면 더 큰 화려함을 만날 수 있을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힐만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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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가 주데카(Giudecca) 운하를 만나는 지점에서, 마치 동쪽으로 내달리려는 땅의 끝자락에 위태롭게 우뚝 선 아름다운 돔을 만날 수 있다. 흰 대리석과 빛바랜 청록색 돔은 절제된 기품을 보여주며, 가까이 다가가야만 하나하나 식별할 수 있는 조각과 장식들은 과하지 않은 바로크적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성당도 카 페사로와 카 레쪼니코를 건축한 발데사레 롱게나의 작품이다.

베네치아가 1630년에 흑사병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감사하는 성당인데, 이러한 동기는 유럽 전역의 여러 성당에서 발견된다. ‘살루테(Salute)’ 단어 자체가 건강과 안위를 상징하며, 성당 곳곳의 작품들도 흑사병으로부터의 탈출을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의 베네치아에서 흑사병이 떠나간 것이 감사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1630년 여름부터 1631년까지 베네치아 인구의 1/3이 이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최소 46,000명에서 94,000명까지 사망했다는 통계가 있다. 사실상 죽을 사람이 다 죽었기 때문에 전염병이 잠잠해진 것이다. 물 반 컵을 가지고도 많은지 적은지 해석이 엇갈리듯이, 종교가 여전히 삶의 모든 순간들을 지배했던 당시에는 그 정도면 감사할 일이었나보다. 이토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지어야 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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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 들어가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중앙에 텅 비어 있는 팔각형의 구조와 그 위에 올라가 있는 돔이다. 돔 아래의 아치형 창에서 온건한 빛이 쏟아지면서 경건함을 자아낸다. 돔 중앙에서부터 외가닥 줄에 메달려 내려온 랜턴은 마치 공중을 부유하는 듯 하다.

티치아노와 틴토레토를 비롯한 주요 회화 작품들은 별도의 뮤지엄에서 전시하고 있고, 4유로를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은 베네치아 유니카가 적용되지 않는 성당이기 때문에 나도 별도의 티켓을 끊어야 했으나, 여기 도착한 시간 자체가 많이 늦었기 때문에 그냥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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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들은 못봤지만, 실시간으로 미사를 집전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어 좋은 경험이었다고 위안을 삼았다.

밖으로 나와서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가 있는 섬의 서쪽 끝자락으로 가서 섬의 경관을 즐겼다. 푼타 델라 도가나와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을 멀찍이서 바라보면 꼭 한 척의 배처럼 보인다. 금방이라도 저 넓은 대양으로 풍덩 하고 빠져들어갈 것만 같다. 촘촘히 박은 나무 기둥들에만 의지하여 이같은 거대한 건축물들이 올라가고, 천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텨오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얼마나 더 살아갈지, 나아가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쨋든 이 문명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는 이 위태로운 지반 위의 아름다운 대륙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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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걸으며 거리, 물, 사람들의 풍경을 담았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눈을 뜨고 걸어 가는 것조차 힘겨운 엄청난 직사광선을 경험하며 생경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베네치아 미술의 특수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빛과 색채의 혁명으로 일컫는 베네치아 미술의 특성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십자군 전쟁과 해상무역을 통해 전해진 동방의 화려한 신비로운 문물들, 그리고 상업이 중요시되며 사치스러운 풍토가 확산된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배경들은 머리로 인지할 뿐 가슴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베네치아에서 뜨거운 직사광선을 받으며 무작정 걷다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야말로 ‘빛’, 그 자체이다. 베네치아는 빛이 넘쳐난다. 지리학적인 측면에서 베네치아의 일조량은 인접 이탈리아 도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베네치아의 빛은 사방에서 온 몸으로 체감되는 빛이다. 태양의 여과없이 강렬한 빛이 수면에 내려앉고 수면은 그것을 온 몸으로 비산한다. 곤돌라가 지나가면 그 빛은 더 잘게, 더 빠르게, 더 멀리 비산한다. 그리고 그 빛은 건물의 하얀색 외벽을 때리고, 다시 창가에 가서 앉는다. 골목골목까지 물이 들어차 있는 베네치아의 시민들은 결국 평생 두 개의 하늘 아래서 살아간다. 머리 위에 있는 하늘과 그것을 반사한 거울과도 같은 수면 위의 하늘. 두 개의 하늘을 이고 살았던 베네치아의 화가들이 보는 세상은 피렌체, 볼로냐, 롬바르디아, 로마의 화가들이 보는 세상과 같을 수 없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그야말로 빛과 색채의 파편인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벨리니, 조르조네, 티치아노, 틴토레토의 위대한 황금빛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산타 마리아 델 로사리오 성당(Chiesa di Santa Maria del Rosario: Gesuati)가 보여서 무작정 불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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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성모와 3인의 도미니코 수도회 여성 성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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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틴토레토, 십자가 책형(c.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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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적 파사드와 로코코 양식의 내부 장식이 혼재된 18세기의 도미니코 수도회 성당이다. 완공은 1743년에, 내부 장식은 1725-1755년에 진행되었다. 천장화는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가 맡았고, 제단화들은 티에폴로와 쟘바티스타 비아제타(Giambattista Piazzetta), 세바스티아노 리찌(Sebastiano Ricci), 틴토레토 등이 맡았다. 건물의 고전주의적 외관과 어우러지는 대리석 제단에 하나씩 자리를 잡은 작품들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잘 어우러졌다.

이제 겨우 이튿날, 하루에 다섯 곳을 돌았으니 완전히 녹초가 된 것은 당연하며, 이제는 그림이 더 이상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베네치아에서 온전히 머무는 날은 겨우 3일 뿐인데 본 섬에만 계속 머무를 수는 없었다.

5.1번 수상버스를 타고 종점인 리도(Lido)로 향했다. 딱히 리도여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미술 작품을 보러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본 섬을 떠나 약간의 일탈 정도는 한 번 해봐야 한다는 엉성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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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떡 벌어지는 야경의 그라데이션에 넋을 잃고 있다보니 금새 리도(Lido)에 도착했다. 일교차 때문에 저녁이 되니 꽤 추웠다. 반팔 티셔츠에 여름 자켓으로 10도 이상의 일교차와 바닷바람을 견뎌야 했는데, 목도리 하나 가져 오지 않은 오만함을 후회했다.

리도에 너무 늦게 도착했고 애시당초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이미 해는 완전히 사라졌고, 무엇을 구경해야 하는지 도통 감도 오지 않았다. 본 섬과 달리 신도시 내지는 비버리 힐즈를 연상케하는 분위기가 낯설었다. 리도에 대한 사전조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여기서 차가 돌아다닌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다. 아니 이 차들은 다 어디서 정비하고, 어디서 기름을 넣는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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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며 금새 다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나는 이 사진이 리도에서 건진 유일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엄청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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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저녁 식사다. 리도를 빠져 나오면서 ‘아무거나 대충 먹고 빨리 돌아가자’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이 베네치안 피자가 정말 너무나 맛있었다. 내 인생 최고의 피자였다. 나 혼자 설마 이 한 판을 다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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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 인간의 능력이란 놀라워서, 정말 좋은 기회를 발견하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신체적 가능성을 무한대로 확장시킬 수 있는 것 같다. 정말 마지막 한 조각까지 맛있게 먹었다. 가게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이 건물이었다(Granviale Santa Maria Elisabetta, 25, 30126 Lido VE, Italy).

다시 5.1번 수상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바닷바람은 매서웠지만 베네치안 피자의 열량은 나를 내면에서부터 포근히 감싸주었고, 그 힘에 의지해 편안히 돌아갈 수 있었다.


  1. 일부 도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진은 저자가 직접 촬영한 것이며, 장비는 Sony RX10 MK3이다.
  2. 작가 및 장소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은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였다.
  3. 딱히 대단한 컨텐츠는 없지만, 그럼에도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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