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미술여행] 3일차(1/2) –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상설전, 틴토레토 500주년 특별전)

2018. 9. 27.

하루를 온전히 베네치아에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날이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되어 버렸다.

맙.소.사.

여기서 아직 보지 못한, 더 주옥같은 ‘인생작품’을 발견하기 위해 조금 더 서둘러야 한다는 조바심이 또 다시 새벽부터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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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날이라면 당연히 그곳에 가야 한다. 베네치아 회화의 전당ㅡ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e dell’Accademia)이다. 사실상 여기가 베네치아 여행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확실한 예습을 위해 여행 전에 미리 책도 사서 읽었다. 루치아 임펠루소의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이라는 책이다. 마로니에북스에서 ‘세계 미술관 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내놓는 시리즈인데, 세계적인 미술관들의 역사적 배경과 주요 소장품들에 대한 설명이 주요 내용이다. 개별 작품들에 대해서는 주로 도상학적으로 접근한다. 나는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사박물관을 갈 때도 이 시리즈로 공부했었는데, 그 내용의 충실성과 관계 없이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라도 알고 가는 것은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것에 비하여 큰 도움이 된다.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 혹은 관심을 끌었던 작품을 그 미술관에서 직접 보았을 때,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친숙함과 반가움을 느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진짜 공부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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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수상버스를 타고 대운하를 따라 아카데미아 미술관 역으로 향한다. 수상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제 이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베네치아 시민들 사이에 끼어서 떠오르는 햇살을 바라보는 일은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하게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 전혀 다른 입장이다. 누군가에게는 설렘의 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권태의 순간이다. 그 입장의 대비가 흥미로워서 기억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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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아 미술관은 역에서 바로 보일 정도로 가깝다. 이탈리아에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미술관들이 아침 여덟시 15분이라는 이른 시각부터 개장한다는 것이다. 개장하기까지 어디가서 죽치고 대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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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위치를 확인해 두었으니 아침을 먹을 차례이다. 어김없이 초코크로와상에 카푸치노로 첫 끼니를 때웠다. 이 조합은 당최 질리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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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를 위한 좌석은 없지만 들어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베네치아와 피렌체를 돌아다니며 왜 이렇게도 많은 비둘기가, 왜 이렇게도 겁대가리 없이 활보하는 것일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가장 큰 원인은 ‘피크닉 문화’에 있다. 여기서는 계단이든지 벤치든지 길거리든지 나무그늘 아래든지 일단 빵쪼가리(샌드위치, 포카치아 등)와 음료를 들고 우적우적 먹는 것이 일상이다. 남들이 외부에서 무엇을 먹든지 신경쓰지 않고 어디서든 햇살과 맛을 동시에 즐긴다. 이런 문화는 서구권 어디에서나 공통적이겠지만, 여기는 특별히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관광지이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배낭여행객들은 레스토랑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더더욱 ‘피크닉’을 즐긴다. 그래서 여기서는 ‘피크닉 금지’라는 팻말을 자주 볼 수 있다. ‘여기는 사람사는 집이니 계단에 앉지 마시오’도 그 옆에 세트로 같이 붙어 있게 마련이다. 그만큼 흔하다는 이야기이다.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음식을 그만큼 자주 밖에서 먹으니 비둘기가 많이 꼬일 수 밖에 없고, 그들간의 먹이 경쟁이 치열해지니 더 대담해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극악스럽게 느껴졌던 서울의 비둘기들이 갑자기 가엽게 느껴진다. 이 나라 사람들은 빵쪼가리를 애초에 자주 먹지도 않는데다가 들고다니면서 먹는 것은 더더욱 사양하지 않는가. 심지어 가끔 기꺼이 식사랍시고 주는 것은 뱃속에서 지극정성으로 게워내는 것 뿐이니……

부질없는 비둘기에 대한 생각은 이쯤에서 접고 본격적으로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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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외벽에서는 두칼레 궁에서와 마찬가지로 ‘틴토레토 탄생 500주년 기념 특별전’의 홍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는 틴토레토의 또 어떤 숨겨진 면을 발견하게 될까!

1층 로비에서 발권을 하고 가방을 라커에 맡긴 후, 생각보다 미술관이 작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갔다. 발권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이곳이 나의 베네치아 유니카(Venezia Unica)로 패스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인데, 사실 이렇게 중요한 공공 미술관이 무료입장 적용 대상 미술관이 아니라는 점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베네치아 유니카는 사실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웠다. 피렌체 카드(Firenze Card)와 비교하면, 똑같은 3일치 기본 카드였는데 조금 더 비쌌고, 중요한 관광지들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적용 대상 관광지에서도 중요한 특별전은 미미하게나마 추가금을 내야 했다. 유명 성당들은 대부분 커버할 수 있었으나 박물관은 그렇지 못했다. 수상버스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었던 편리함이 아니었다면 효용 가치가 별로 없었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경우, 베네치아 시립 미술관 재단(Fondazione Musei Civici di Venezia) 소속이 아니어서 배제된 것 같은데, 그렇더라도 그 중요성을 감안할 때 기타 미술관으로라도 포함을 해 줬어야 한다.

베네치아 유니카로 패스할 수 있는 37개의 관광지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공식 브로셔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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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이제 진짜 전시장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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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다운 화려한 금세공의 천장 장식이 먼저 나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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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관문은 14~15세기 프리미티브 종교화이다. 베네치아의 화려한 황금빛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리는 공간이다. 파올로 베네치아노(Paolo Veneziano), 로렌초 베네치아노(Lorenzo Veneziano), 야코벨로 델 피오레(Jacobello del Fiore) 등의 화려한 ‘비잔틴 골드’가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성령, 일자의 빛을 강조하는 금박이야 이 시대의 모든 종교화에서 발견되지만, 내가 지금 베네치아에 있다는 존재감이 이 색을 조금 더 특별하게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성자/성모/성인들의 모습은 다른 동시대 회화들에 비하여 경직되지 않고 훨씬 유연해 보였다.

피렌체의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는 「회화론(1436)」을 통해 가상의 황금색에서 벗어나서 진짜 눈에 보이는 자연의 색깔들로 돌아갈 것을 권고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온전히 닿지 않았던 이 곳 베네치아에서는 이 황금색이 조르조네, 티치아노, 틴토레토에 의해 끊임 없이 재해석되었다. 그리고 그 황금색과 빛의 진화는 마침내 엘 그레코, 루벤스, 렘브란트를 만나 바로크라는 새로운 시대의 여정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 전시장은 베네치아 미술의 황금빛 혁명을 이끈 선구자들에 대한 영원한 헌사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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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장 한 켠에는 작은 모니터와 마우스가 비치되어 있었는데, 이 화면을 통해서 1817년 당시에 이 장소에서 어떤 전시가 이루어졌었는지를 볼 수 있는 가상의 3차원 공간이 나타났다. 마우스로 사방을 둘러볼 수 있었고, 작품별 설명을 확인할 수도 있어서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왜 1817년인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잠시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성립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당초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1797년 부로 나폴레옹의 프랑스혁명군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혁명군은 베네치아의 교회를 접수했고, 그 과정에서 교회 소유의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시장에 풀리게 되었다. 이때 베네치아 아카데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교육 목적으로 많은 작품들을 수집하였다. 이 작품들이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초석이 된 것이다.

지금의 미술관 건물은 종교 및 자선 단체였던 스쿠올라 델라 카리타(The Scuola della Carità)가 사용하던 건물이었는데, 1260년에 설립된 이 조직은 1343년부터 여기에 입주했다. 건물은 용도에 따라 증축과 개축을 거듭했으며, 파사드는 1441년에 완성되었다. 나폴레옹 행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여러 종교 단체와 스쿠올라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베네치아 아카데미를 이 곳으로 이주시켰는데, 새로운 목적에 따라 건물을 다시 리모델링해야 했다. 리모델링은 1811년에 완료되었고, 이후 몇 개의 장식을 추가하여 1817년 8월 10일에 일반 대중에게 갤러리가 공개되었다. 여기 있는 1817년의 전시공간 체험은 대중의 손에 돌아간 근대적 미술관으로서의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기획인 것이다. 참고로 대표적인 근대 미술관인 루브르 박물관이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프랑스혁명이 4년 지난 1793년의 일이니 그리 늦었던 것은 아니다.

곧이어 대형 제단화들이 이어진다. 아마 나폴레옹 시대에 교회들이 내놓아야 했던 작품들일 것이다. 죠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의 제단화는 기대했던만큼 선명하고 온화했다. 견고한 조형성과 아름다운 장식의 효과, 인물들을 배치하는 균형미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미술관 성립에 대한 사연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보면, 본연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이 작품의 ‘진짜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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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의 그 유명한 <성전을 오르는 성모마리아(1534–1538)>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는가도 알게 되었다. 이 그림은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타 마리아 델라 카리타(Scuola Grande di Santa Maria della Carita)를 위해 그려졌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건물의 주인과 역할이 바뀌는 모든 과정을 이 자리에서 묵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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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화려한 천장 장식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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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좁은 통로를 여럿 지나야 하고 작게 세분화된 공간들도 거쳐야 한다. 많은 리모델링을 거치기는 했지만 애초에 미술관을 위해서 설계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마치 미로처럼 다소 불친절한 도면이다. 하지만 계속 새로운 장소들이 등장하는 재미도 나름대로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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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 보르돈(Paris Bordone)의 <도제에게 배달하는 양(1545)>이다. 이 작품은 파리스 보르돈의 최고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용상으로는 한 곤돌라 선원에게 성 마르코가 나타나서 폭풍우로부터 베네치아를 구원하고 그 증표로 반지를 남겼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그림에는 성 마르코 축일의 전날밤에 그 선원이 반지를 도제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극적인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이 그림에는 틴토레토 500주년 기념 전시를 위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틴토레토의 작품이 아님에도 이 안내판이 붙은 까닭은 틴토레토가 이 그림을 통해서 극적인 사선의 구도를 학습했기 때문이다. 틴토레토가 이 사선의 구도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그의 <최후의 만찬>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사선 구도는 중심이 없는, 그야말로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미결 상태의 사선이다. 그야말로 우연히 포착한 한 순간이며, 끝없이 진행되는 연속적인 과정의 표현이다. 틴토레토의 이러한 혁신적 구도는 르네상스의 이성적 균형미에 반하는 것으로 바로크적 운동감의 혁명을 예견하는 것이다.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는 별도의 틴토레토 500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지만, 이처럼 상설전을 통해서도 다른 화가와의 영향관계 속에서 대가를 집중 조명하려는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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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레토, 최후의 만찬(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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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레토, 최후의 만찬(1592-1594)

그리고 드디어, 조르조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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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네(Giorgione; Giorgio Barbarelli da Castelfranco)는 벨리니, 티치아노, 틴토레토와 더불어 베네치아 회화의 색채 혁명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화가이며, 소위 베네치아 화파의 선배격인 선구자이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베네치아에서 조르조네의 작품을 보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작품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그의 몇 안되는 작품들은 어느 한 곳에 쏠림 없이 우피치미술관, 에르미타쉬 미술관, 빈 미술사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등에 고루 분포되고 있다.

이 작품 <폭풍우(c.1508)>는 미술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작품 중 하나이다. 기본적으로 도대체 무엇을 그려 놓은 것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종교적인 이유 없이 흐린 하늘을 묘사한 첫번째 풍경화라는 점 자체가 의아스럽다. 남자는 출정을 앞둔 기사인가, 아니면 양치기인가? 여자는 성모인가, 아니면 그냥 아낙인가? 성모라면 전라를 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더러는 남녀를 아담과 이브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고전적인 배경과 남자의 현대식 복장을 감안하면 다소 억지로 보인다. 또한 이 작품의 엑스레이 검사 결과, 남자가 있던 위치에는 원래 다른 여인의 누드가 있었는데 이것이 지워진 까닭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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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emrise.com/course/238816/fordham-intro-to-art-history-europe/46/

이러한 여러 미스터리는 나의 호기심 또한 자극했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속해 있는 아마추어 미술사 연구회인 <모두의 미술사> 스터디에서 여러 차례 이 작품을 거론했었다. 이렇듯 어떤 작품을 직접 보지 못한채로 여러 자리에서 거론하다보면,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지만) 스스로 약간의 민망함이 느껴지곤 한다. ‘실제로 봤는데 안 그러면 어쩌려고?’ 라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때문이다.

나는 조르조네의 <폭풍우>를 드디어 실제로 봤다. 사실 실제로 보니 별 것 없었다. 생각보다 작았고, 표면은 내가 생각한 그대로였다. 예상했던 것과 같이 흐릿한 윤곽선 속에 모든 인물과 사물이 대기 속으로 침전하는 것 같은 조르조네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 소재로서 이 작품은 더 당당하게 고개를 내밀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이곳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조르조네의 <폭풍우>를 직접 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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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과했던 사실인데,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네덜란드 출신의 위대한 초현실주의의 선구자,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가 있다. 그것도 그의 것으로 알려진 전체 작품 수를 감안하면 꽤나 많이 있다.

2016년은 히에로니무스 보쉬 사망 500주년이었다. 그것을 기리기 위하여 당시에 그의 고향 덴 보쉬(Den Bosch)에서는 <히에로니무스 보쉬: 천재의 비전(Jheronimus Bosch – Vision of Genius)> 이라는 특별전을 개최했었고, 각고의 노력 끝에 보쉬의 유화 작품 24점 중 17점을, 소묘 작품 20점 중 19점을 전시했었다. 이 기념비적인 전시에 대해서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기이한 세계(The Curious World of Hieronymus Bosch, 2016)」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국내에서 상영했었고, 나는 그 내용을 여기에 포스팅한 바 있다. 어쨋든 당시에 그 전시에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도 작품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 전시를 통해 이루어진 복원과 연구의 성과가 이곳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소장품들에 대에서도 공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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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작품들 앞에 안내판을 큼직하게 세워서 어떠한 과학적 기법을 통해서 새로운 발견이 가능했는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작품의 정확한 연대 측정, 작품의 복원 과정, 보쉬가 새로운 패턴을 연구한 방법 등을 알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오래된 작품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꾸준히 발견하는 것이 미술사의 매력이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미술사가와 미술관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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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기로 소문한 보쉬의 작품을 눈 앞에서 즐기는 시간은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기쁨이었다.

그밖에도 아카데미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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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빨간 옷이 아닌 파란 옷으로 갈아 입은 성 히에로니무스의 신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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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몸짓의 수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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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베네치아 역사화가 주는 압도적인 크기와 정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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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끝에서 예상하지 못한 틴토레토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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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네세의 한결같은 아름다움과 긍정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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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티치아노의 말년에 자신의 모든 혼을 갈아 넣은 역작이 빛나고 있다. 바로 <피에타(1575-1576)>이다. 그는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에 묻히기를 원했고, 그곳을 미리 장식하기 위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들을 흑사병으로 잃었던 티치아노는 1576년에 마찬가지로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 작품은 완성되지 못한 채 야코포 팔마 일 조바네(Jacopo Palma il Giovane)의 손에 들어갔다. 조바네는 이 그림의 일부를 완성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넣었다.

“티치아노가 완성하지 못했던 작품을 팔마가 존경심을 가지고 완성한 후 이 작품을 하느님에게 바치노라”

이 그림은 이후에 산탄젤로 교회에 전시되었고, 이후 교회들이 소장했던 다른 작품들처럼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들어왔다. 이 작품에는 죽음을 예견한 한 노장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격정의 순간을 단순히 붓으로만 표현하지 않았다. 손가락 끝을 이용해 칠한 거친 색조에서 온 몸으로 녹여낸 거장의 마지막 숨결이 느껴진다.

예수의 오른쪽에서 주검에 경의를 바치고 있는 이는 니고데모도, 아리마데 사람 요셉도, 히에로니무스도 아니다. 바로 죽음을 앞둔 티치아노 자신이다. 그는 인류의 죄를 위하여 대신하여 죽은 독생자에게 자신의 노구를 의탁하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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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회원들의 조각 컬렉션도 상당한 수준을 자랑한다. 이 저부조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원경은 최대한 단순하게, 전경은 디테일하게 묘사하면서 원근법적 공간의 환영을 강조하였지만, 양감을 모두 살리지는 않고 마치 종이인형처럼 납작하게 처리했다. 그러면서도 옷 주름과 인물의 윤곽선은 선명하게 살아 있다. 여기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조명이 주는 그림자의 효과가 어우러지면서 마치 드로잉을 입체로 겹쳐 놓은 것 같은 신비로운 시각성을 창출하였다. 얇은 공간 속에 여러 인물이 겹쳐지면서 공간의 활용도가 극대화되는 보기 드문 효과를 구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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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대했던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틴토레토 탄생 50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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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레토의 탄생년, 이름, 그리고 500주년이 되는 2019년의 숫자가 나란히 ‘500’을 강조하는 기발한 기념 로고를 따라서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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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아 미술관의 틴토레토 500주년 특별전은 두칼레 궁의 특별전과 역할을 나누어서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는 틴토레토의 젊은 시절, 즉 학습해 나가는 단계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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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틴토레토에게 영향을 주었을 당대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었고, 틴토레토의 작품은 초기작 위주로 전시되었다. 특히 투스카니 화가들의 베네치아 유입과 세바스티아노 세릴로(Sebastiano Serlio)를 중심으로 하는 인쇄기술의 발달이 틴토레토의 학습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조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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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노예를 해방하는 성 마르코(1547-154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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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코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노예를 풀어주었다는 전승에서 비롯된 이 작품은 넓이가 5.4 미터에 달하는 대작으로서 공간 전체를 압도하는 힘을 보여준다. 고전적인 건물을 배경으로 교묘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은 틴토레토의 작품이 늘 그렇듯 전혀 단조롭지 않게 각자의 역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성 마르코가 굳이 이렇게 역동적으로 무대에 난입할 필요가 있겠는가는 의문으로 남지만, 마치 캔버스 위에서 하늘을 가르고 솓구치는 것 같은 강력한 단축법의 효과는 연극적인 화법으로 당대 베네치아인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틴토레토의 역량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에 대한 베네치아 시민들의 애정에 부합하는 걸작이며 빛과 역동적 구도를 통해 바로크 미술을 예견한 거장의 전성기를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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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나오면 이른바 ‘틴토레토 지도’를 볼 수 있다. 거장의 작품이 있는 성당, 미술관, 회당 등을 번호로 친절하게 표시하고 있다. 심지어 커다란 인쇄물로 이 지도를 수 천 부 제작해서 가져가라고 독려하고 있다. 그러면서 단지 두칼레 궁과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만 500주년 기념 특별전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베네치아 시 전체에서 틴토레토 기념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단지 ‘틴토레토가 여기 있으니 오시오’ 라는 안일함이 아닌, 여러 기관에 걸친 철저한 기획과 협력으로 이루어진 행사라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이런 거장의 작품을 이렇게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부러움을 느꼈다.

이제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미술관을 향해 가야할 때이다.


  1. 일부 도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진은 저자가 직접 촬영한 것이며, 장비는 Sony RX10 MK3이다.
  2. 작가, 장소, 작품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은 위키피디아와 루치아 임펠루소의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였다.
  3. 딱히 대단한 컨텐츠는 없지만, 그럼에도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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