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미술여행] 3일차(2/2) –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상설전, 오스발도 리치니 展)

2018. 9. 27.

온갖 기념품을 다 살 마음 & 지갑의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아카데미아 미술관 북샵의 초라함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엽서 몇 장만을 건진 채,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미술관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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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지막 미술관은 끝까지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동쪽으로는 팔라쪼 치니(Palazzo Cini)와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Collezione Peggy Guggenheim)이 있다. 이 두 갤러리의 문 앞을 서성거리면서 내 마음이 어디로 이끄는지를 가늠했다. 팔라쪼 치니는 1564~1567년에 지어진 베네치안 고딕 양식의 저택으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1984년에 미술관으로 개방되었다. 컬렉션은 도소 도시(Dosso Dossi), 필리포 리피(Filippo Lippi),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폰토르모(Pontormo), 조토(Giotto) 등 쟁쟁한 이름 값을 자랑한다.

하지만 서성거리던 내 발걸음은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 멈춰섰다. 고전 대가들이야 여기서도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보았고, 또 다음 여정인 피렌체에 가서도 줄창 볼 예정이지 않은가? 이왕 베네치아에 왔으면, 여기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현대 미술작품들과의 조우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전 미술의 폭풍에 시각적으로 다소 지쳐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곳의 설립자를 소재로 한 <페기 구겐하임: 아트 에딕트>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보았던 인연도 무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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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라자냐 한 접시로 피로를 물리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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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돈 19,817원 가량인 티켓을 구매하면 소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이라고 하는 상설전과 별관에서 펼쳐지는 특별전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정원은 으레 그렇듯, 조각정원 형태로 꾸며졌고, 작품과 나무, 의자, 사람, 비둘기가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었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미술관 자체가 ‘컬렉션’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 우리가 통상 떠올리는 미술관은 견고한 건물의 형태를 띄고 그 안에 작품을 부차적으로 품고 있는 형태이다. 미술’관’의 ‘집 관館’자는 이 곳이 물리적 건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은 ‘뮤지엄’도 아니고 ‘갤러리’도 아닌 그저 ‘컬렉션’이다. 어쩌면 현대 미술의 지형도를 움직이는데 깊숙히 관여했던 위대한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이 자신의 걸출한 안목으로 수집한 작품들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지, 그 외의 물리적인 시설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조하는 듯 하다.

베네치아의 컬렉션은 1938년 런던(Guggenheim Jeune), 1942년 뉴욕(Gallery of This Century)에 이은 페기 구겐하임의 세번째 미술관이다. 2차 세계대전 즈음에 뉴욕에서 잭슨 폴락을 발견하여 추상미술을 주류로 부각시키고, 전쟁 통에 뉴욕으로 건너온 피카소, 막스 에른스트, 만 레이, 파울 클레 등 수많은 유럽 아방가르드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한 후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선택한 보금자리였다. 1948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자신의 컬렉션을 공개했던 인연이 1949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의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곳에서 페기는 잭슨 폴락의 첫번째 유럽 전시를 개최하기도 하였고(1950), 피렌체, 밀라노, 암스테르담 등 다른 유럽 도시로 순회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30년 동안 베네치아 시민으로서 살아갔고, 실제로 1962년에 명예 시민 자격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페기의 수많은 컬렉션이 그녀의 삼촌이 설립했던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에게 기증되었지만, 여전히 핵심적인 컬렉션은 이곳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 남아 있으며, 그녀의 유해도 이 곳에 묻혀 있다. 다시 말해 이 곳은 그녀의 위대한 ‘미술 중독’이 종지부를 찍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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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 베네치아의 모든 집들이 그렇겠지만, 좁은 복도로 여러 공간이 잘게 구획되어 있다. 사치스러운 귀족들의 빌라와 저택들을 관람했던 잔상 탓에, 현대 미술에 부합하는 모던한 화이트큐브를 선보이는 이 미술관의 내부는 상당히 검소해 보이며, 그저 그림이 다소 많을뿐인 가정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관광객들만 무시한다면, 다소 사적인 컬렉션을 기웃거리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작품들은 다분히 사적인 취향의 집합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러한 감상은 매우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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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 말레비치, 피카소, 브라크, 샤갈, 몬드리안, 콜더, 달리, 폴락 등 우리가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아방가르드가 하나 이상의 작품을 걸어 놓았다. 특정한 맥락으로 작품들을 묶어 놓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라, 이런 유명하신 분이 여기서 갑자기 튀어 나오네’라는 의외성의 매력으로 좁은 방 하나하나를 건너 다니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인상깊은 작품들은 아주 이름값이 높은 것들이 아니라 컬렉터와 내밀한 인연을 맺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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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rings for Peggy Guggenheim, ca. 1938 Brass and silver wire, 7.6 x 15.9 cm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Venice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Venice Acquired with funds provided by The Hazen Polsky Foundation, Mimi L-J. Howe, Benjamin B. Rauch, and other anonymous donors, 2011 2011.30 © 2014 Calder Foundation, New York / SIAE, Rome, all rights reserved. CALDER ® is a registered trademark of Calder Foundation,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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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움직이는 조각의 선구자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가 구겐하임을 위해 제작한 귀걸이를 보라. 모빌의 균형감과 조형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아티스틱한 악세서리로서도 기능할 수 있는 이 작품은 화가와 컬렉터 사이의 내밀한 인연과 상호작용 속에서 어떤 새로운 아름다움이 창조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심지어 작품명 자체가 <Earrings for Peggy Guggenheim>이지 않은가? 누군가에게는 우스꽝스럽고 거추장스러운 금속 쪼가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예술과 상품, 아방가르드와 키치, 후원자와 창작자의 경계에 대한 무궁무진한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귀중한 오브제가 될 수 있다. 이것이 현대 미술의 매력이자 본질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페긴 베일 구겐하임(Pegeen Vail Guggenheim)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보자. 그녀는 페기가 첫번째 남편인 로렌스 베일(Laurence Vail)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페긴은 어머니 페기를 따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을 넘나들며 성장했고 미국의 핀치 칼리지(Finch College)에서 수학했다. 1943년에 피에트 몬드리안의 친구이기도 했던 장 엘리옹(Jean Hélion)을 만나 미국에서 급부상하던 추상미술을 접하게 되었고 결국 그와 결혼도 했다. 하지만 세 아이를 낳은 후인 1956년에 엘리옹과 이혼하고 나서는 아들 니콜라스와 함께 어머니가 있던 베네치아에 머문다. 이후 영국에서 국제상황주의(SI) 운동에 투신했던 랄프 럼니(Ralph Rumney)를 만나 결혼하고 파리로 이주했지만 결국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1967년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여기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는 페기의 딸 페긴을 위한 작은 방이 있다. 이 곳에서 순수한 소녀의 원시적이고 초현실적인 세계를 표현한 페긴의 작품은 베네치아를 흐르는 운하의 수면처럼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다. 최초의 인간이 최초의 인간을 표현할 때 보여줄법한 원초성이 느껴지는 이 작품들은 미술사적으로 크게 의미가 있거나 인간의 본질에 관한 놀라운 통찰을 주는 작품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 갤러리 안에서만큼은 설립자와 혈연으로 맺어진 애절한 사연을 통해 왕성한 생명력을 얻는다. 평생 미술에 둘러싸여 살았고, 모든 재산을 미술에 쏟아 부은 페기는 자신의 딸이 예술가가 되는 것을 적극 지지했고, 그녀의 작품들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으며, 자신의 모든 역량과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페긴을 미술사에 올려 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정보다는 일과 미술을 더 좋아했고, 평생에 걸쳐 한 장소, 한 남자에게 정주하지 못했던 페기에게 어머니로서 딸을 돌보는 역할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고, 이러한 불규칙한 삶은 어린 페긴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굴레였다. 결국 그 애정 결핍은 우울증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41세의 나이로 그녀의 생을 앗아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화려한 미술계의 최정점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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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geen Vail, The Exhibition, 1945, Collezione Peggy Guggenheim, Venice

숙제를 마치듯 페기 구겐하임의 상설전을 다 보고나면 마치 보상처럼 대운하 위에 떠 있는 발코니에 오를 기회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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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오가는 수상택시와 곤돌라를 바라보며, 나를 찍는 그들을 찍으며, 아카데미아 다리 위의 인파를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충분히 쉬었다면 속을 채워야 한다. 전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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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안 별관에 카페가 마련되어 있고, 여기서 비둘기와 함께 오붓하게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나는 커피를 이미 마셨기 때문에 초코 케익 디저트를 주문했다. 견고한 초코렛 안에 부드러운 초코렛 빵이 들어있고, 이것을 포크로 잘라다가 초코렛 소스에 찍은 후 크림도 조금 발라서 먹는다. 이 광경은 마치 우리네 식탁에서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광경과도 흡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만약 어느 이탈리아인이 우리네 가정집에 난입하여 왜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느냐고 비난한다면, 그때 이 사진을 꺼내어 보여주는 것도 적절한 대응이 될 수 있다.

속을 채웠다면 다시 마지막 힘을 짜내어 미술관을 더 돌아야 한다. 상설전 외에 특별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내가 갔을 때는 오스발도 리치니(Osvaldo Licini) 展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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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통해서 그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그의 페이지가 단 세 문장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국제적으로도 그렇게 지명도가 높은 화가는 아닌듯 싶다. 1894년에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추상화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 알게된 바에 따르면, 볼로냐에서 미술학교를 다니던 당시에는 미래주의에 투신했었고,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와 동기였다. 이후 파리로 이주하여 처음에는 마티스의 야수파에 관심을 보였으나, 시적인 추상에 빠져서부터는 단절했다. 궁극적으로는 회화만의 특징을 찾고 싶어 했고, 차가운 추상에서부터 텍스트를 활용한 미술, 상징주의적 모티브 등 다양한 주제를 실험했다. 말년에 천착한 주제는 거대한 초월자가 등장하는 ‘반역 천사(rebel angels)’ 연작이었다. 1958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회화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던 그는 같은 해에 폐기종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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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누드의 양감은 모딜리아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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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는 무겁지 않은, 재기발랄하고 다양한 화풍이 전개되었고, 자신의 특정적 모티브에 대하여 다양한 색채로 실험하는 연작들이 인상적이었다. 시대의 여러 화풍들을 자기 색깔로 소화하는데 있어서 역량을 보였던 화가로 기억될 것 같다.

이렇게 여행지에서 우연히 맺게 된 한 예술가와의 인연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을 끝으로, 베네치아 미술여행은 일단락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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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수능을 치르고 나서 모든 목표를 상실한 고3 수험생처럼 산 마르코 광장 주변을 배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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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직사광선과, 더 엄청난 광광객의 인파를 해치며, 이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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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없었다. 그저 ‘현장의 공기를 조금 더 느끼자’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날 따라 왜 이렇게 관광객이 많은가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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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대형 크루즈 때문이었다. 현재 베네치아에서는 이 초대형 크루즈의 정박을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오버투어리즘 이슈 때문이다(관련 기사). 내가 봐도 이렇게 큰 배가 광장 안마당 코 앞까지 정박한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일단 좀 얄밉다. 뭔가 졸부들이 손 안대고 코푸는 느낌이랄까…. 이 광장을 즐기기 위해 내가 노력하고 투자한 것에 비하면 너무 쉽게 오고 가는 것 같아서 얄미운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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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찍어도 그림이 되는 도시와 날씨였다. 역시 문제는 카메라도, 나 자신도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며 사진에 대한 자신감을 조금이나마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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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처 없이 걸으며, 살면서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마지막으로 담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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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상버스에 올라 스쳐가는 풍경들도 너무나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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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지막 시간을 붙잡으려 애쓰다 보니 밥때를 놓쳐 버렸다. 아마 초코에 초코를 찍어먹는 디저트가 문제였던 듯 싶다. 숙소 앞에서 딱 봐도 부실해 보이는 핫도그로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즐겼다. 뻑뻑했다. 마치 내 일정처럼.


  1. 일부 도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진은 저자가 직접 촬영한 것이며, 장비는 Sony RX10 MK3이다.
  2. 작가 및 장소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은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였다.
  3. 딱히 대단한 컨텐츠는 없지만, 그럼에도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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