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감정기반 구축사업 컨퍼런스 – 「미술품 감정: 전문성과 협업」

2018년 11월 8일(목)부터 10일(토)까지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미술품 감정: 전문성과 협업」이라는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와 워크숍이 열렸다. (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주최한 이번 행사 중에서 8~9일에 열린 워크숍은 평일에 열린 행사였고, 관련성이 있는 소수만 참석이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참석할 수 없었다. 대신 마지막 날인 토요일에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에서 열린 학술대회는 관심이 있는 누구라도 참석이 가능한 행사였기 때문에 여기에 참석했다.

처음 행사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때 주제가 나의 구미를 자극하였으나, 미국감정가협회(AAA: Appraisers Association of America)와 네덜란드AiA(Authentication in Art)의 연사들이 참여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두 명 정도 발표하는 수준이라면 어찌어찌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간다고 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이어지는 ‘영어 공격’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사)예술경영지원센터로 전화를 걸어 문의해 보니 다행히도 동시통역 리시버가 지원되는 행사라고 전해주었다. 150명이나 참석하는 학술대회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싶은 의심을 안고 일단은 제시간에 도착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지하에 있는 세마홀에 도착해보니 정말 안내데스크에 있는 직원들이 친절하게 동시통역 리시버를 나누어주어 첫 번째 감동이 시작되었다. 살면서 크고 작은 행사와 학회에 많이 참석했었지만 막상 동시통역 컨퍼런스는 처음이었기에 은근히 설렜다. 동시통역뿐만 아니라 96페이지에 달하는 자료집, 감성적인 필기구, 에코백, 심지어 다과까지 세심하게 신경(≒돈)을 쓴 행사였다. (by 문화체육관광부 & 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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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는 크게 시가감정, 진위감정, 예술법 등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고, 미술품 감정을 위한 협업을 주제로 하는 라운드 테이블로 마무리되었다. 시가감정은 AAA가, 진위감정은 AiA가, 예술법은 예술중재재판소(CAfA)가 좌장 역할을 맡았고 총 9명이 연사로 나섰다. 우리나라 발제자는 김윤섭 한국미술연구소장 한 사람뿐이었다.

1. 시가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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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셀빈(Linda Selvin)은 740명의 회원을 거느린 AAA를 소개하였고, 시가감정에 있어서 윤리성의 쟁점들을 설명하였다. 그녀가 가장 많이 강조한 단어는 공정성과 독립성이었다. 시가감정은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에 의하여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그 독립성에 있어서는 의뢰인이라도 함부로 개입해서는 된다는 것이다. AAA회원들은 최소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로 기본적으로는 10년가량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고 별도의 시험을 치러야만 회원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 전문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증이 되었다. 시가감정의 영역은 고가의 미술품에서부터 와인, 우표에 이르기까지 매우 세분화되는데, 각 전문가들은 작품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시장에 대한 통시적/공시적 이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비교 대상을 선정하여 시가감정에 임한다. 독립성, 객관성, 공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이는 감정의 대상이 누군가의 재산으로서 금전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며, 그릇된 감정은 시장과 자본의 왜곡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감정가는 어떠한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감정가의 일정 비중으로 수수료를 산정하지 않는 것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AAA는 미국감정재단(The Appraisal Foundation)의 표준지침을 따르며 공통의 프로토콜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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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브런디지(Susan Brundage)는 시가감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론인 가치비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가치비교는 감정 대상에 상응하는 적절한 비교 대상을 찾아서 그에 준하여 감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적절한 비교의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동시대를 살아간 유사한 작가의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한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겉모습이 비슷하다고 무작정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은 마치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와 실제로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브릴로 상자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다. 어느 정도 유사한 속성을 공유하면서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만 적절한 비교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적절한 시가감정을 위해서는 해당 작가의 팔리지 않았던 작품, 사인이 없는 작품, 미완성작, 파손된 작품, 작품 관련 문헌 등 포괄적인 대상들을 비교의 대상으로 검토해야만 종합적으로 균형 잡힌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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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한국에서 미술품의 가치평가와 관련한 여러 가지 쟁점들을 통해 몇 가지 개선방안을 도출하였다. 한국에서 미술시장은 가격의 변동폭이 매우 크고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신뢰할 수 없는 유통체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가격지수를 개발한 사례도 있으나 실질적으로 시장가격을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술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작가적 요소, 작품의 상태, 주변의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 요소들 중에서도 미디어 노출에 따라 작품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되는 상황은 특기할만하다. 발표자는 주변의 환경 요소 중에서도 화랑의 역량을 강조한다. 동일한 커리어와 역량을 지닌 작가에게서 가격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화랑의 역량이 개입된 결과라는 것이다. 발표자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미술품의 가격이 단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술품의 가격에는 전시 가격, 시장 가격, 목적성 가격이 있다. 예를 들어 작가라면 자신의 최고 경매가을 기준으로 높은 호가를 책정할 것이다. 하지만 공공미술관에서 특정 작품을 소장하기 위하여 지불하는 가격은 그 작품을 공공 목적으로 수집, 보존, 전시할 것을 전제하면서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한다. 그러므로 한 작가의 작품들에 대하여 최고 경매가나 공공미술관 책정가를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 유형의 가격에 대한 특수성이 보편타당한 미술계와 사회 전반에서 널리 이해되어야만 성숙한 미술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 끝에 발표자는 시가 책정의 신축적 유동성, 시장구성원의 유기적 협의체제의 정례화, 유통시장의 개방화, 문화산업화에 따른 금융부문과의 연계성 대비,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정부의 지원책 마련 등을 제안하였다.

시가감정은 작품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다. 시가감정을 위해서는 진위감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진본이 아니라면 시가감정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진위가 불분명한 작품에 대해서는 시가감정 보고서 상에서 ‘진품이 아닌 경우 이 감정은 효력을 상실한다’는 주석을 달기도 한다. 진위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세션에서 이어졌다.

2. 진위감정과 테크니컬아트 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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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코 덴 레이우(Milko den Leeuw)는 네덜란드의 AiA 재단을 소개하면서 오늘날 미술작품에 대한 과학기술적 분석이 대두되는 배경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오늘날 미술사는 단순히 인문학적 연구에서 벗어나 과학기술과의 접목을 통하여 새로운 가능성에 도달하고 있다. 특히 진위감정 분야에서 이러한 기술적 분석은 눈부신 성과들을 창출하였는데, 레이우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검증된 프로토콜’이다. 검증되며 재현 가능한 하나의 프로토콜을 여러 작품과 상황에 공통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미술품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보다 일반화 및 체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술사를 둘러싼 여러 주체들의 신뢰성 확보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원칙이다. 그러면서 레이우는 미술사학자, 미술품보존가, 재료전문가의 상호협엽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였다. 그밖에도 그가 자료에서 제시한 보편적인 규칙들은 미술 작품의 이면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목할만한 유익한 내용이었다(저작권상 공개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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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한느 라가이(Jehane Ragai)는 미술 분석에 활용되는 여러 가지 과학기술적 방법론들을 설명하고 그에 얽힌 실제 작품의 사례들을 소개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주제를 다룬 책 「과학자와 위조범」의 저자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적 미술사 분석에서 활용되는 주요 기술로는 X-선, 자외선, 적외선 분광법, 광학현미경 검사, UV유도형광, 라만 분광법, 질량분석법 등이 있다. 작품의 표면과 재료는 물론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크랙(균열)까지도 위조하는 위조범들에 맞서 과학기술도 눈부시게 진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거의 위조 사건들을 현재의 기술이면 모두 식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아니카 에릭슨(Annika Erikson)은 테이트 등 유수의 갤러리에서 미술작품의 수집, 보존, 기록과 관련한 업무를 하다가 현재는 ‘아티체크(Articheck)’의 창업자이자 대표이다. 그의 회사는 미술품 기록을 온라인 상에 보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였고, 이를 통해 세계 유수 갤러리들과 협약을 맺고 미술기록 전산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술작품의 상태보고서는 말 그대로 미술작품의 상태와 이력에 관한 모든 기록을 담은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300페이지를 넘기는 방대한 양의 텍스트와 사진으로 구성된다. 아티체크를 활용하면 이러한 기록을 실시간으로 입력 및 공유할 수 있고 여러 이해관계자와 함께 관리하면서 풍부한 시각적 문헌자료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기록시스템은 교류전, 순회전, 아트페어, 옥션 등으로 인하여 미술작품의 이동이 많아진 현대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어떻게 보면 한 창업자의 회사소개와 같은 발표였지만 미술기록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업무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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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스파펜스(Oliver Spapens)는 네덜란드 흐로닝언에서 1918년에 출발한 예술가 집단인 더 플라우(The Plough)와 얽힌 대표적인 위작사례를 소개하였다. 위작자 코르 반 루넨(Cor van Loenen)은 더 플라우 소속의 대표적인 예술가들 작품을 다량으로 위조하여 유통시켰고, 1991년에 이러한 상황이 밝혀져 1992년부터 법적인 조치가 착수되었다. 하지만 미술 감정 및 법과 관련한 여러 난맥상이 작용하면서 항소와 기각이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2018년 현재까지도 사건은 종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 사건에 대한 법적 해석이 새롭게 등장할 때마다 작품 가격은 등락을 반복하고 있고, 더 플라우 소속 작가들의 작품 전체가 미술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 사건은 궁극적으로 미술과 법 사이의 상호 이해될 수 없는 긴장상태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게 되었다.

예술을 둘러싼 법의 이슈는 다음 세션에서 논의되었다.

3. 예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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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건 노(Megan E. Noh)는 진위감정의 문제가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었던 소송 사례들을 소개하였다. 그녀는 말이 빨랐고, 판례도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저 여러 사례들이 있다는 수준에서만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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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샤론(William Charron)은 미술품을 둘러싼 법적인 쟁점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 주목하여 미술 분쟁을 조율할 기구를 고안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예술중재재판소(CAfA)가 설립되었다. 상기 아니카 에릭슨의 발제에서도 강조하였듯, 현대사회에서 미술작품의 이동은 매우 빈번해졌고, 그에 따라 갈등도 빈번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매, 실사, 감식, 거래에 따르는 법칙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특히 위작 사건에서 법정은 증거만을 보고 판단하는데,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신뢰할 수 없다면 문제가 커진다. 이에 분쟁 조정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모였고, 법, 미술, 과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예술중재재판소를 구성하게 되었다. 예술중재재판소는 기본적으로 양측의 합의에 의하여 결과를 도출한다. 중재위원은 해당 사건에 전문성을 갖춘 사람으로 선임된다. 이때 명성과 전문성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의사를 결정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진위감정에 앞서서 재판소는 먼저 선행연구를 분석하고 이론화했으며, 유사한 케이스들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감정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는데, 이는 판정의 정확도를 올려줄 수 있고, 시장 내에서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는 역할도 하므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립된 재판소의 결정은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제는 진위판정 외에도 다양한 분쟁 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재위원의 자격요건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변호사 자격을 갖춘 사람을 선임하여 절차적 공신력을 확보하고 있다. 중재위원은 50만 유로 이하의 사건에서는 1인, 50만 유로 이상의 사건에서는 3인을 선임하는데, 이는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한 것이다. 중재위원은 중립만 주장하지는 않는다. 중재위원을 대립하는 양측에서 선임하므로 계속적인 논쟁이 발생하는데, 각각이 전문가 풀을 구성하여 근거를 바탕으로 논쟁한다. 또한 별도의 기술자문위원회가 제출된 증거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이때 증거의 양과 질이 적정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증거는 의뢰비의 증가를 야기하므로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 중재 이후 법적 소송으로 이어질 때에는 어느 관할지역에서 어느 법을 가지고 소송에 임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양측은 각자에게 유리한 법과 관할 재판소를 선정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다. 중재 절차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하여 보안으로 진행되지만 중재 이후에는 결과를 공표하여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전달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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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결론적으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미술의 진위감정, 시가감정, 예술법에 대한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이슈들이 논의되었기 때문에 매우 좋은 학습 기회가 되었다. 미술사를 둘러싼 이러한 제반 이슈들은 필연적으로 전문가들 간의 협업을 강조하고 있으며, 미술사가 단순히 서고에서 글로만 쓰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미술 시장 및 정책 이슈와 연계된 논의가 더 많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동시통역이 지원된다는 사실이 행사 홍보 포스터에서 적시되었다면 이렇게 좋은 기회에 더 많은 시민들이 학습 기회를 갖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도 (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준비하는 행사들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 참여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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