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바렛의 「미술비평: 그림 읽는 즐거움(Criticizing Art)」

당신이 미술작품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로버트 로젠블럼

비평한다는 것은 비평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일이다. 58p

한 동안 탐독했던 주제인 미술비평으로 오랜만에 다시 돌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비평가에 대한 나의 선망은 여전하고, 모든 사람이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 또한 유효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소 바빴던 관계로 동시대 갤러리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지냈으며, 그에 따라 안 그래도 무뎠던 미감이 더 뭉툭해진 느낌이다. 안타깝게도 ‘삼류-짜깁기 대학교재’ 같은 표지를 걸친 이 책은 단순히 외향만으로 과소평가되기에는 아쉬울 정도의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나로 하여금 비평적 소양을 쌓고 싶은 의욕을 다시 불어 넣어 주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 예술교육학 교수인 테리 바렛(Terry Barrett)은 직업 특성을 십분 발휘하여 매우 친절하게 우리를 미술비평의 본질로 안내한다. 그의 가르침은 충분히 개방적이어서 독자가 스스로 자신만의 미술관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되어 줄만하다. ‘개방적’이라는 말은 자신의 비평적 관점을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길을 열어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한 특성은 이 책에서 두드러진 표현들이 저자 자신의 말이 아니라 다양한 비평가, 예술가, 미술사학자들의 글에서 인용해온 것이라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실상 이 책은 미술비평에 관한 말들을 재료로 삼는 아상블라주에 가깝다. 굳이 콜라주가 아닌 아상블라주에 비유해야 하는 까닭은 책에서 인용한 비평적 서술들의 스펙트럼이 원천과 방향 측면에서 그만큼 삼차원에 가깝게 풍요롭기 때문이다. 저자는 리언 골럽(Leon Golub)의 회화와 데버라 버터필드(Deborah Butterfield)의 말 조각을 묘사하는 비평가들의 문장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보여준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에 대한 피터 플라겐스(Peter Plagens)와 헤이든 헤레라(Hayden Herrera)의 엇갈린 평가도 대비시킨다. 수 코(Sue Coe)의 작품에 얽힌 비평가들의 상반된 판단 기준들을 내놓고 독자의 마음속에서 싸움을 붙이기도 한다.

이러한 충돌들은 미술비평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다. 그 어떠한 작품이라도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어 수장고에 영원히 갇혀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의미는 더 많은 감동과 가치로 인류의 미감을 살찌울 것이고, 그것을 돕는 자들이 비평가이기에 존중에 기반을 둔 다양한 의견들은 더욱 촉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함락되지 않은 고지를 열어 보이며 내면의 전투를 북돋고 각자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행군을 응원한다.

단 하나의 해석이 예술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의미를 고갈시킬 수는 없다. 164

물론 우리는 어떤 매체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아상블라주의 공간을 우연히 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 나열된 여러 가지 관점과 방법론들도 우연의 산물은 아니다. 독자들은 섬세한 독해 속에서 저자가 형식주의보다는 사회참여적인 미술의 도구적 활용가능성을 더욱 지지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페미니즘, 퀴어, 다원주의의 손을 힘주어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최대한 가치중립적인 열거처럼 보이도록 노력하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며, 결국 모든 판단은 독자(관객)의 손에 달려 있다는 자명한 진리가 퇴색되지 않았다.

미술의 세계란 넓은 대화의 장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그 대화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 리처드 로스

비평은 인간 존재의 자각이며, 몸의 지능이다.

– 조애너 프루

비평의 직무는 논증을 해내는 것이지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 앤디 그런버그

죽음을 각오한 듯이 글을 쓰라.
이와 동시에, 오로지 말기 환자로 구성된 청중을 위해 쓰고 있다고 가정하라.
바로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지켜야할 계명이다.

– 애니 딜라드

책 속의 인용문 중에서 비평의 일반 원칙과 제반 이론에 해당하는 것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진실한 것들이어서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제고 다시 되새길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비평의 실례들에서는 상당부분이 동시대 미국 미술에 대한 것들이기 때문에 다소 지루함을 느꼈다. 확실히 작가와 작품을 잘 모르면 해당 비평에서 배울 수 있는 통찰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이와 유사한 주제 및 형식의 ‘미술비평론’이 활발히 출간되기를 바라본다. (동시대 우리나라 미술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만 ‘맥락’ 면에서는 미국 보다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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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는 독자와 관객을 위하여 예술을 판단하지, 작품을 만든 예술가를 위하여 판단하지는 않는다. 267p

비평은 미술 토론의 끝이라기보다는 시작을 뜻한다. 279p

  • 굳이 덧붙이는 아쉬움: 인용문 따옴표의 시작 부호는 있는데 마침 부호는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3페이지 연속으로 보일 때도 있다. 이렇게 편집 실수가 빈번하면 독자들은 어디까지가 인용문인지, 어디서부터가 저자의 서술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독해의 흐름이 완전히 깨져 버린다. 2004년에 1판 1쇄를 찍고 2017년에 1판 9쇄를 찍을 정도의 꾸준한 판매량이라면, 판 수정을 볼 때가 한참 지났다. 오타들도 제법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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