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미술여행] 1일차(1/2) –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2018. 9. 29.

내가 그토록 꿈꿔왔던 도시, 피렌체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명실상부한 르네상스의 본산인 피렌체에 대한 동경이 본격적으로 내 가슴에 불을 지피기 시작한 시점은 G. F. 영(Young)이 쓴 「메디치」라는 책을 읽었던 때 였다. 미술사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메디치(Medici) 가문과 피렌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한 도시, 한 가문에 온전히 집중한 대서사시를 접하고 나니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한 편으로는 서구 미술사의 위대한 변곡점이었던 피렌체에 가보지도 않고 미술사를 논하고 있는 나 자신이 같잖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이런 자괴감은 미술사의 중심이 ‘서구/유럽/백인/남성’이라는 온당치 않은 기준에 의거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의 딜레땅뜨로서 그 기준을 거스르며 나만의 세계관을 만든다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메디치 가家를 통해서 피렌체가 변했고, 피렌체를 통해서 미술사가 바뀌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피렌체를 알아야 했고, 이곳에 와야만 했다.

빛과 색채의 도시 베네치아를 거쳐 드디어 피렌체에 당도했다. 도시 전체에 메디치 가의 숨결이 닿아 있고, 천재들의 흔적이 묻어 있는 이 도시에서는 어디로 발걸음을 떼든 위대한 예술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첫 발걸음을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으로 옮겼다. 첫 일정으로 우피치 미술관을 간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첫 판부터 끝판왕을 깨겠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둘째날에 마피아에게 납치 당해서 비명횡사하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왜냐하면 이 곳은 현 시점에서 피렌체 미술의 총 본산이며, 세계적으로도 최상위 수준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피렌체 카드(Firenzecard)’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피렌체 여행에서도 베네치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시티 패스를 끊었다. 피렌체의 시티 패스가 피렌체 카드이다. 내 생각에 피렌체 카드는 베네치아 유니카(Venezia Unica) 보다 훨씬 유용하다(베네치아 유니카에 대한 나의 불만). 일단 안 통하는 곳이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의 장소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 범위는 공공과 사립을 망라한다. 베네치아 유니카와 달리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더 상위의 카드(Firenzecard+)를 구입해야 하지만, 어차피 피렌체라는 도시는 작아서 어지간하면 걸을 수 있는데다가 걷는 재미도 넘치는 도시니 개의치 않아도 된다.

피렌체 카드의 가장 큰 장점은 이용 가능한 곳이 많다는 것이다. 현재 공식 홈페이지 기준으로 76곳의 관광지를 이용할 수 있다. 베네치아 유니카가 37곳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2배 정도 차이가 난다. 물론 도시 자체의 면적이나 전체 관광지 수를 감안해야 정확한 비교가 가능하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베네치아의 관광지 및 시설 수가 피렌체에 비하여 2배 가까이 적을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내가 가려고 마음 먹었던 곳 중에서 피렌체 카드가 안통하는 곳은 없었다.

다음으로, 어플리케이션이 편리하다. 베네치아 유니카는 일단 공식 어플리케이션이 없다. pdf 파일과 책자로 브로셔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어쨋든 텍스트/이미지 기반의 정보이므로 매우 단순한 형태의 일방향적 정보만을 보여준다. 반면, 피렌체 카드는 공식 어플리케이션이 있어서 종이 카드 자체가 필요 없다. 물론 원하면 종이 카드를 받을 수도 있다. 공식 어플리케이션은 내가 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가까운 박물관이 어디인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 박물관을 클릭하면 간략한 개요와 함께 입장 가능 시간과 방법 등의 유용한 정보가 노출된다. 그래서 애초에 계획이 없었더라도 충동적으로 가까운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다. 나처럼 즉흥적인 여행자에게는 대단히 유용한 기능이었다. 또한 별도로 검색을 하지 않더라도 휴무일을 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편리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피렌체에 머무는 내내 피렌체 카드 어플리케이션을 거의 끼고 살았고, 한국에 도착해서 이 어플리케이션을 지우려는 순간에는 약간 슬퍼지기까지 했다.

이제 이 피렌체 카드가 내 첫 행선지 선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 해보자. 내가 피렌체 여정을 시작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내가 구입한 피렌체 카드는 3일권이었다. ‘토-일-월’ 동안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피치 미술관은 월요일이 휴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이 곳에서 피렌체 카드를 쓰기 위해서는 ‘토-일’ 중에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토-일’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월요일에 휴무인 우피치와 아카데미아를 갔고, 월요일에는 중요도가 낮은 베키오 궁과 산타 크로체 성당에 갔다.

피렌체 카드를 전략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가고자 하는 박물관의 휴무일을 감안하여 동선 계획을 짜야 한다. 또 피렌체 카드 박물관 중에서는 당일권이 아닌 기간권을 교환해 주는 장소도 있다. 이를 감안해서 계획을 편성하면 실질적으로 3일권인 피렌체 카드를 5일권처럼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방법에 대해서는 두오모 편에서 설명하겠다.

다시 첫 날 아침으로 돌아가자.

내 숙소는 피티 궁 맞은편이었기 때문에 피렌체 시내 중심가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거의 항상 이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지나야 했다. 하루 종일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의 인증샷을 온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이 다리의 아침은 정적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이윽고 밤이 찾아오면, 기분이 한껏 부풀어 오른 사람들로 가득차고 음악과 조명이 화려함을 더해준다. 이 다리를 지나는 일은 피렌체에 머물고 있는, 혹은 머물렀던 모든 사람들과 하나의 접점을 만드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 다리를 건너야만 했던 일주일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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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에서 이런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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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 다리를 건너서 오른쪽 회랑으로 바로 꺾어 들어가면 금새 우피치에 당도한다. 머리 위에는 바사리 복도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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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눈빛으로 아르노 강을 바라 보고 있는 프란체스코 페루치오(Francesco Ferruccio)를 만났다면 우피치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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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를 확인했으니 초코빵 한덩어리를 먹으면서 전의를 불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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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미술관이지만 루브르나 내셔널갤러리에 비하면 규모가 큰 것은 아니다. 북샵을 제외하면 전시관은 단 두 층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3층에는 보티첼리,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피렌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포진해 있다. 2층에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비롯하여 피렌체의 미술 경향과 다소 거리가 있는 이웃 지역들의 화풍을 모아 놓았다.

나는 피렌체 카드 소유자였기 때문에 사전 예약자 줄에서 빠르게 입장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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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너무나 정갈하고 소박해서 역시 이곳이 과거의 정부 관청 건물이었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이 소박함은 딱 여기까지만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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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에 가까워오자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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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입구 양 옆에는 메디치 가의 기념비적인 인물들의 흉상이 놓여져 있어, 이 도시의 예술이 누구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 상기시켰다. 이러한 헌사는 전시장 곳곳에 만연했다. 나에게는 다른 누구보다도 ‘위대한 자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i Piero de’ Medici, Il Magnifico)’ 특유의 주걱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미켈란젤로의 후원자이자 피렌체 르네상스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로렌초가 없었다면, 이 우피치의 하이라이트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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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복도를 통해서 방과 방 사이를 넘나드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복도는 메디치 가문이 수집한 고대 조각상들과 메디치 가문의 인물 초상화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복도가 실질적인 전시의 공간인가?’ 라는 착각이 든다. 하지만 복도는 복도일 뿐이다. 걸작들은 복도를 통해서 이어져 있는 전시 공간에 들어 있다. 복도에 있는 작품들도 훌륭하기 때문에 시선을 빼앗길 수 있지만, 너무 많은 열정을 여기에 낭비해서는 안된다. 생각보다 많은 ‘진짜’ 걸작들이 전시 공간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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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듯 작품, 건물, 그리고 창에 비친 도시의 풍경이 빚어내는 조화에 대해서는 조금 더 주목을 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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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초입에서 트리뷰나(Tribuna of the Uffizi)를 만나 잠시 감탄의 시간을 가졌다. 여기는 베르나르도 부온탈렌티(Bernardo Buontalenti)가 1581-1586년에 피렌체의 두번째 대공 프란체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를 위하여 설계했다. 작품들 보다는 팔각돔 지붕 아래에 아라비아에서 가져온 8000개가 넘는 조개껍질 장식이 화려함의 극치를 뽐내는 곳이다.

하지만 독일 태생의 영국화가 요한 조파니(Johann Zoffany)의 그림에 따르면, 여기는 당초 그야말로 회화의 작은 성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전면에서 당당하게 선보이고 있는 그 유명한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1534)>를 중심으로, 수많은 고전, 르네상스, 바로크 명작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다. 하나하나가 너무나 중요한 작품들이기에, 대부분의 작품들은 현재 각자 전문적인 보존 및 관리를 수행해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몇몇 고대 유물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고서 당대의 맥락을 간접적으로나마 우리에게 설명해 준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리스트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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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조파니, 우피치의 트리뷰나(1772-1778)

이처럼 ‘그림을 그린 그림’은 그 자체로 미술사가 된다. 어떤 그림이 누구의 컬렉션이었고, 어떻게 관리 되었고, 얼마나 자랑스럽게 누군가에게 선보여졌는지에 대하여 그 어떤 사료보다도 명료하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건낸다.

트리뷰나를 지나 본격적으로 회화의 전당에 들어섰다. 투스카니 지방의 15~16세기 르네상스 회화가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영역인 3층의 도입부를 차지하고서 이 미술관이 어떤 예술가들의 공로를 찬양하는 곳인지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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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작품, 휴고 판 데르 후스(Hugo van der Goes)의 세 폭 제단화는 플랑드르에서 건너왔다. 이 작품이 투스카니 화가들과 나란히 한 방에 있는 이유는 메디치 은행의 지점장쯤 되는 인물인 토마소 포르티나리(Tommaso Portinari)가 주문했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은 좌측 패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 폭의 거대한 화면이 한 눈에 관람자를 압도하는 이 트립티크는 유화의 가능성을 정점까지 끌어 올리는 선적인 양식이 인상적이며, 누가 봐도 얀 반 에이크의 후배들이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선명한 색감과 아름다운 색채의 조화 외에도, 이 작품을 실제로 보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하나 있는데, 바로 패널을 덮었을 때 드러나는 수태고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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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큰 세 폭 제단화의 양면을 한번에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다. 당대에는 대체로 제단화를 덮어 놓은 채로 관리 했고, 중요한 미사나 축제일에만 열어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내부를 볼 수 있게 했다. 오늘날 미술사를 공부하는 다수의 학생과 독자 들은 제단화를 열어 둔 상태의 도판을 보면서 그림에 대한 설명을 접한다.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휴고 판 데르 후스의 <포르티나리 세 폭 제단화>는 덮개를 살짝 앞 쪽으로 당겨 놓은 상태로 전시되고 있다. 그래서 관람자는 제단화의 측면으로 돌아 들어가서 덮개의 바깥쪽 그림을 같이 감상할 수 있다. 덮개 안쪽의 장면이 있게 한 선행사건, 즉 수태고지가 덮개의 바깥쪽에 그려져 있기 때문에 이 제단화의 안팎은 예수의 탄생이라는 기독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내러티브로 긴밀하게 엮여 있다. 그리고 안팎은 색채의 유무, 서사적 맥락(배경 및 주변인물)의 유무에 따라 다시금 대조를 이루는데, 각각의 ‘무’는 ‘유’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안과 밖을 비교하는 작업은 글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작품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실제 환경 속에서의 경험을 통하여 구체화되는데, 이러한 순간이 명작을 현장에서 보아야 하는 하나의 이유를 증명한다.

덧붙여, 수태고지 장면의 단색조 음영은 박공 속에 위치한 조각화된 인물을 보여주는데, 인물의 아름다움에 있어서 색채란 하나의 부수적 요소에 지나지 않음을 일깨운다. 마리아와 천사는 북부 거장의 정교한 손 끝에서 영혼을 지닌 조각이면서 동시에 실존적인 생명체로서 생동감을 보여준다. 천사의 옷자락이 미세하게 틀 바깥으로 탈출한 저 재치를 보라! 두 인물의 좌우 배치가 전통적인 구도와 반대인 것도 어딘가 모르게 신선하다.

하지만 역시나 우피치의 핵심 컬렉션은 피렌체의 자랑인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렌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이다. 이들 투스카니의 거장들은 가장 중요한 위치에서 각기 한 방씩을 헌정 받고 위풍당당하게 세계 곳곳의 관람객들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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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의 우아한 선적인 양식은 아름답기는 하나, 이미 도판과 매체에서 너무 지겹게 본 터라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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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인물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가련하면서도 나른한 느낌과 에로틱한 감수성을 담아내는 재주에 감탄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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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은 숨을 못쉴 정도로 많은 관람객으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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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태고지 하나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어찌나 복원을 깔끔하게 마쳤던지 오히려 원작의 아우라를 느낄 수 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갓 칠한 듯 눈부신 색채와 빤닥빤닥한 표면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놓는 복원이 정말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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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방은 더 붐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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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나신들을 뒤로 한채, 뒤에서 앞으로 아기 예수를 건내주는 독특한 구도의 <성 가족(1505-1506)>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 원형 도판은 많이 봤지만 액자를 함께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프란체스코 델 타소(Francesco del Tasso)의 작품이다. 예수와 네 명의 선지자 두상이 정교한 덩쿨 장식과 함께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장식성에는 감복할만 하나, 덩쿨에서 툭 하니 튀어나온 모양새가 어딘가 모르게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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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에 몰려 라파엘로의 방은 빠르게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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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모든 투스카니 거장들의 아버지 격인 조토의 작품도 중요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특히 조토의 주변에는 단체 관람객을 우르르 몰고 다니는 프리랜서 큐레이터들의 열띤 목소리가 가득 넘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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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스카니 거장들의 공간을 빠져 나오면 사실성과 구도면에서 확연히 다른 시각적 견해를 드러내는 플랑드르와 독일 화가들의 작품이 한 구석에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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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의 예시와 같이 한스 멤링, 알브레히트 뒤러, 루카스 크라나흐 등 북부 출신의 작품들은 단조롭고 까만 액자에 표구되어 투스카니 대가들의 화려한 황금 물결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누가 이런 차이를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표구를 통해 우피치 미술관이 작품에 위계를 설정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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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의 끝자락에서 마치 보너스 게임인냥 북부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나면 다소 조악한 라오콘의 모작을 만날 수 있고, ‘라오콘의 오른손은 원래 머리 뒤쪽을 짚고 있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아직 그 사실이 밝혀지기 전의 모작이구만’이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옥상 휴게실로 진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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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휴게실은 전망대와 카페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망대에서는 베키오 궁의 시계탑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기에 좋은 구조이다. 카페에서는 예쁜 창으로 두오모의 돔을 바라보며 커피와 샌드위치를 즐길 수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이곳에서 햇살을 받으며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놓쳐서는 안된다.

식사를 마치고 2층으로 내려갔다. 여기서는 르네상스의 황혼이 저물어 가고 매너리즘과 바로크가 모습을 드러내는 16세기 후반부의 작품들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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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로 부터, 매너리즘의 대표작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엘 그레코가 보여주는 함축적인 양감과 빛의 묘사는 늘 오랜 시간 동안 발걸음을 붙잡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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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소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의 <음악가 천사(1521)> 앞에서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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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치노의 메디치가 초상화는 피부톤와 복식의 소재 묘사가 아름답지만 어딘가 모르게 생명력을 상실한 목각인형처럼 보인다. 한때 이 공화국에서 가장 존엄하고 귀한 존재들이었던 그들의 초상화는 이제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고급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전시실에 걸린 이 최상위 수준의 초상화들을 보며, 또 전시실 바깥쪽 복도와 통로에 걸린 이보다 격이 낮은 수준의 초상화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메디치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문한 초상화가 언젠가 세월이 흘러 이렇게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의 ‘인증샷’ 코스가 될 것이라는 것을 조금이라고 예상했을까? 만약 예상했다면 이 그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늘 그렇듯 이러한 생각들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어 사고의 흐름 속을 유영하다가 거품처럼 바스러진다. 확실한 것 하나는 이 초상화들에 그들의 영광을 영원의 세계에 묶어두고 싶은 영속성의 열망이 짙게 베어있다는 사실이다. <비아 데 메디치(c.1542)>가 보여주는 아름답지만 허망할 정도로 견실한 조형성에서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코지모 1세가 6살의 어린 나이에 열병으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해 장례 직후에 의뢰한 것이다. 브론치노는 비아(비앙카)의 실물이 아닌 데스마스크를 보고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가 워낙 대리석 같은 인물 표현을 즐겨하기는 했지만, 유달리 핏기가 없어 보이는 그녀의 목각인형 같은 얼굴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비록 왕가의 사생아로서 양친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는 못했지만, 코지모 1세의 입장에서는 16살에 얻은 첫 딸이니만큼 남다른 애착이 있었을 것이다. 파란만장한 가문의 영광을 어떤 형태로든 찬란하게 이어나가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 미래 세대에 대한 허망한 간절함이 이 갸냘픈 소녀와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 옥좌에 앉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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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1534)>는 그렇게 큰 감동을 주지 않았다.

백미는 ‘살육의 방’으로 시작하는 초기 바로크 회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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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 레니의 다윗과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가 한 공간에서 피비린내를 연출하고 있었다. 성서에서 따온 이교도에 대한 정의로운 살육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대형 작품들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카라바죠 풍의 화법에 정통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내 편견 속에서 귀도 레니의 화풍은 르네상스에 조금 더 가까운 밝고 명징한 색채였는데, 이 다윗은 달랐다. 고전적인 주두에 나른하게 기댄 이 미소년은 성서 속의 순박한 양치기 소년이 아니라 모피와 깃털로 한껏 장식한 머큐리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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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맞은편에서는 카라바죠가 또 다른 살육 직전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100세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희생양으로 바치기 직전의 아브라함이다. 극적인 키아로스쿠로와 한껏 클로즈업된 인물들, 신성성을 벗어던진 천사 덕분에 당대 어느 작품보다도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아브라함의 주름진 표정에서는 슬픔, 번뇌, 놀라움이 복합된 그야말로 진실한 인간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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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죠가 장식한 가죽방패는 단순한 소장품을 넘어 우피치 미술관의 가장 특색있는 작품이며, 일종의 아이콘 자격도 획득하고 있다. 바로크를 열어젖힌 반항아 카라바죠는 자신의 가장 든든한 후견인인 델 몬테 추기경을 위하여 가죽방패 위에 실감나는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메두사를 그렸고, 추기경은 이 작품을 로마 대사 페르디난도 1세에게 선물하면서 점수를 땄다. 둥근 가죽방패의 형태와 질감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극적인 표정의 메두사를 정교하게 그렸고, 그 뒤로 그림자 층을 정교하게 부각시켜 마치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을 구현했다.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뱀은 얼핏 보면 지금도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다.

메두사의 얼굴은 그리스 신화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적을 돌처럼 굳어버리게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믿어졌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갑옷이나 방패의 문양으로 선호되었다. 그 유구한 전쟁의 역사 속에서도 카라바죠의 메두사 방패는 단연 아름답고, 혁신적이고, 주술적이며, 상징적인 방어구라 할 수 있다.

예전부터 정말 궁금했던 이 작품을 막상 실제로 보니 가장 좋았던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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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뒷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뒷면에 특별한 것은 없다. 박탈된 손잡이의 흔적과 금박 무늬가 보일뿐이다. 그래도 기존의 도판에서는 다루지 않는 면이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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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죠가 사랑했던 제자를 모델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작, <바쿠스(1596-1597)>도 만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나른하고 육감적인 소년의 표정도 중요하지만 사진을 찍은 듯 사실적인 과일, 나뭇잎, 와인잔의 표현력이 일품인 작품이다. 마치 카라바죠가 자신의 정물 실력을 뽐내기 위해 이 소재를 선택하고 인물은 일종의 사은품처럼 끼워준 느낌마저 든다. 이 바쿠스의 방에는 그러한 장점을 더욱 부각하기 위하여 다양한 바로크 정물화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사실 처음 방문하는 미술관에서 발견하게 되는 진정한 즐거움은 기존에 알고 있던 작가나 작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원래 좋아하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게 되면 원작의 아우라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있지만 나의 미감을 새롭게 자극하거나 전에 없던 통찰을 주지는 않는다. 진정한 즐거움은 그동안 간과했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작가나 작품에서 비롯되며, 그러한 경험은 앞으로의 미술 경험 전반에 걸쳐 소중한 인연의 출발점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한 작가와 내가 내밀한 인연을 맺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내가 이번에 우피치 미술관에서 새롭게 발견한 화가는 헤라드 반 혼토르스트(Gerard van Honthorst)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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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에서 처음 만난 그의 작품들은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지만 처음 보는 것은 분명한 그런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아마도 이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일상성’이라는 특징에서 기인한 것일 게다. 고급스러운 당대 네덜란드 부르주아 청년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모습은 물론, 아기 예수의 탄생에 경배를 드리는 성 가족과 천사들의 모습까지도 일상성이 짙게 베어 있다. 기념비적이면서도 영속적인 그림을 남겨야 한다는 작위적인 배치 보다는 마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포착하려고 노력한 듯한 자연스러운 구도가 앞서 있다. 이는 당대의 유화 초상화들이 대체로 성직자나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상인들의 사유재산 및 권력을 전시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질적인 아름다움이다. 물론 부유한 청년들의 식탁에는 계층 간의 엄격한 구분과 사치스러운 오브제의 전시가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전시 기능은 인간적인 소통과 생동감 있는 표정 속에서 아름다운 명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밤의 헤라드(Gherardo delle Notti; Gerard of the night)’라고도 불렸던 이 과소평가된 대가가 그린 성 가족의 모습은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따사로운 미소의 예시를 보여준다. 모델로 하여금 이러한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유도한 화가는 분명 그 자신이 이토록 따사로운 사람이었으리라.

반 혼토르스트는 1592년에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무명의 장식화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도 붓을 들 수 있었고, 아버지에게 입문 교육을 받았다. 나중에는 아브라함 블뢰마르트(Abraham Bloemaert)의 공방에 들어갔는데, 이 스승은 네덜란드에서 선도적으로 카라바죠 풍을 받아들였던 초기 바로크 화가들을 여럿 가르치기도 했다. 네덜란드에서의 교육에 만족하지 못했던 반 혼토르스트는 1616년에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고 위트레흐트 주 출신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로마에서 활동하며 매너리즘과 바로크의 화풍을 채득하였다.

1620년에 위트레흐트로 돌아온 그는 네덜란드와 인근 플랑드르 지역에서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623년에는 지역 화가들의 협동조합인 성 누가 길드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특히 헤이그의 영국 대사인 더들리 칼튼(Dudley Carleton) 경에게 호감을 산 반 혼토르스트는 네덜란드로 망명을 와있던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에게 추천되었고, 이후 왕가의 미술교사와 초상화가 자격으로 여러 점의 ‘로얄 초상화’를 남겼다. 전성기였던 1620년대 중반에 그의 헤이그 스튜디오에서는 24명의 조수를 거느리고 그림을 ‘찍어냈다’고 한다.

다른 네덜란드 황금기 대가들에 비하여 그의 이름이 오늘날 우리에게 덜 알려진 까닭은 무엇일까? 프란스 할스의 소탈한 인간미가 없어서? 렘브란트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이 없어서? 베르메르의 신비로움과 서정미가 없어서?

이유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키아로스쿠로를 정석적으로 준수하고, 화려한 긍정의 세계에 천착했던 것이 매력을 반감시켰을지 모른다. 너무나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주제 의식이 새로운 담론을 발굴하려는 욕망을 억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복잡한 세상사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도 반 혼토르스트가 구현한 온화한 미소가 주는 위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모르겠다. 이제 나도 지쳤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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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세계적인 미술관의 필수 요소가 되어 버린 렘브란트의 자화상 변천사를 뒤로하고, 최상의 르네상스 회화 컬렉션과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피렌체에서 첫 날, 첫 일정이 끝났을 뿐이다.


  1. 일부 도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진은 저자가 직접 촬영한 것이며, 장비는 Sony RX10 MK3이다.
  2. 작가 및 장소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은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였다.
  3. 딱히 대단한 컨텐츠는 없지만, 그럼에도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한다.

[피렌체 미술여행] 1일차(1/2) –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에 대한 답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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