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Save The Bomb 편:便(대학로스타시티 후암스테이지 1관)」

전쟁을 소재로 네 개의 이야기를 한데 엮은 소극장 연극이다. 항일전쟁에 앞서 결의를 다짐하는 독립군들을 다룬 ‘1934년 간도’, 6.25 전쟁 당시 가장 말단 병사들의 이야기에 주목한 ‘1952년 한반도’, 파병 군인들의 엇갈린 입장을 보여주는 ‘1968년 베트남’, 그리고 인공지능과의 전쟁을 소재로한 ‘2028년 서울’까지 100여년을 넘나드는 전쟁 이야기다.

네 개의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고, 병렬되어 있으나, 하나의 주제를 다룬 여러 이야기의 모음집인 옴니버스 구성으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네 개의 극에서 등장하는 네 명의 배우들이 각 작품에서 공통된 성향을 보여주면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타임슬립’ 장르는 더더욱 아니다. 여러 극에 걸쳐 있는 한 명의 배우가 비슷한 성격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일한 인격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네 개의 이야기 속에서 유사한 성향을 보여주는 네 명의 인물들이 느슨한 연계성으로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독특한 구성이다. 

작품의 주제는 결국 ‘전쟁의 밑바닥’이다. 국가 혹은 민족 사이의 무력 충돌인 전쟁은 모두 나름의 정치적 논리와 명분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상 ‘구분짓기’를 통해 내부결속을 강화하고 더 많은 생산 수단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 최상층부의 탐욕일 뿐이다. 그 전쟁의 기저에서 일개 병사와 민초들은 권력이 내세운 표층의 의미만을 내면화한 채, 혹은 그마저도 우격다짐으로 강요당한 채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생사의 갈림길로 투입된다. 우리가 다큐멘터리에서 흑백 자료화면으로 보는 2차 세계대전의 무수한 풍경 중에는 척척 소리를 내며 같은 보폭으로 행진하는 수천, 수백명의 군사들이 자주 보이는데, 그들은 한때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연인이었고, 아버지 였던, 말 그대로 살아 숨쉬는 인격체였다. 하지만 그저 하나의 ‘행군’을 이루는 입자나 화소로 전환된 그들은 권력을 떠받치는 유용한 못이나 망치 하나 쯤으로 퇴행한다. 연극 「Save The Bomb 편:便」은 그러한 전쟁의 비인격성을 과장된 웃음으로 고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그동안 참 많았다. 우리는 이미 「플래툰(1987)」이나 「태극기 휘날리며(2004)」같은 전쟁 영화를 통해서 전쟁의 참상, 인격적 파멸, 가장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외침 같은 것들을 클리셰처럼 소비해왔다. 그렇다면 전쟁의 시각적 스펙터클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연극은 조금 다른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 그 ‘무언가’를 위한 장치가 네 개 이야기, 네 명의 인물이었을텐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했는지는 의문이다. 일단 네 개의 이야기로 꾸미기 위해서 서로 다른 시대에 주목하겠다는 의도는 알겠으나,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1952년 한반도’와 ‘2028년 서울’은 주제 의식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면서도 서로 다른 인물들의 협연이 적절한 합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1934년 간도’는 분량도 짧고 의도도 명확하지 않다. 그냥 여러 시대를 포괄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로 보인다. 전체 러닝타임이 짧은 만큼, 이러한 불명확한 서사를 확충하면서 완결성을 높이던지, 아니면 재미와 주제의식이 분명한 에피소드에 온전히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내 생각에는 ‘1952년 한반도’와 ‘2028년 서울’만 대비시켜도 작품의 주제의식은 훨씬 명확해지고 몰입도도 높아지리라 본다. 

제목도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영어, 한글, 한문이 섞인 제목은 주목도가 낮을 수 밖에 없다. 제목에 작품의 의도를 녹여내는 문학적 의도도 중요하지만, 요즘 같은 SNS 시대에는 바이럴도 무시할 수 없다. 자생적인 수익구조를 갖춘 작품으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는 부르기 쉬우며 검색으로 도드라지는 특정성까지 고려하여 제목을 지을 필요가 있다.  

희희낙락은 소규모 창작공동체로서 서울문화재단의 ‘청년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이 작품을 올리게 되었다. 내가 본 회차는 2018년 11월 15일부터 18일까지 공연한 초연이었다. 이번 초연을 거치면서 여러 의견을 수렴한다면 작품의 완성도는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실험적이고 참신한 이 작품이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로 점령된 대학로에서 살아남아 롱런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비평의 원칙에 따르면, 비평가가 작품의 작가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경우 그것을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이 원칙은 비평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 원칙에 따라 밝히자면, 배우 김윤배와 나는 군대에서 ‘1소대원과 2소대장’이라는 독특한 인연을 맺었다. 나는 김 배우의 커리어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대학 입학 당시에 미력하나마 도움의 손길을 건낸적이 있었고, 그 인연으로 배우로서 그의 행보를 계속 주시하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김윤배 배우는 전쟁의 대의 보다는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소시민으로서, 천진난만함과 격정적 분노를 자유자재로 표출하였으며, 그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감초 코믹 연기도 유감없이 발휘하며 성공적으로 극을 주도하였다.

앞으로 김윤배 배우의 연기활동에 큰 기대를 보내며, 이번 작품이 그에게 배우로서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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