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열, 홍지석의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미술사가는 질문하는 학자여야 하지 단죄하는 판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118

 

고도로 전문화된 학문 영역 중에서도 미술사는 그나마 일반 대중들에게 관심이 높은 영역에 속하고, 소위 ‘대중서’의 형태로 가장 활발하게 출판이 이루어지는 분야이다. 그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참신한 시도가 나타났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는 선후배 미술사가가 미술사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대하여 나눈 대화를 엮어낸 결과물이다. 56년생 선배와 75년생 후배가 서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서 아주 기본적인, 그렇기 때문에 가장 어려울 수밖에 없는 주제들을 풀어 놓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촘스키와 푸코의 TV 토론 수준의 ‘순도 100% 대화록’은 아닌 것 같다. 너무나 정확하게 특정 연도와 책 제목들을 나열하는 대목에서 상당한 사후 보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며 내용상으로도 그런 보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구술을 활자로 옮겨 놓았고, 지면도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에서 색다른 학술적 발견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지식’ 보다는 ‘관점’과 ‘태도’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말과 글은 한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 오랜 사고의 과정을 거쳐 윤색되는 글에 비하여 말은 조금 더 진솔한 내면을 보여준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우리나라 근대미술사학의 거목인 최열의 ‘미술사관’을 집대성한 총체이다. 홍지석의 코멘트들은 사실상 진행하는 역할 외에는 학술적 기여가 없다.

사실 대화록을 계속 읽다보면 점점 ‘인간극장: 미술사가 최열 편’에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어떻게 근대미술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주체로서 민중에 주목한 이유와 실천은 무엇인지, 동시대 미술사학계에 내리는 평가는 어떠한 것인지, 후배들이 어떠한 자세로 이 학문에 접근하기를 바라는지 등 최열의 미술사적 경험과 관점을 집약해 놓은 기록이나 다름없다.

최열은 인품화품일률론(人品畫品一律論)에 입각하여 미술사를 바라본다.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을 창조한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그 사람과 시대에 대하여 객관적인 사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정확한 사료들을 찾아서 집요하게 매달린다. 미술사 서술에서는 계보를 세우는 것이 우선이고, 주관적인 해석은 그 다음이라고 믿는다. 현실 정치의 권력을 민중에게 가져오도록 실천한 미술가들과 그 이론을 옹호하면서 동시에 권력의 품에 안기거나 민족의 고통을 외면한 미니멀리스트들을 단죄한다. 그는 이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상에 대한 지지로서 미술사를 서술하였으며, 전시를 기획하였으며, 각종 단체들을 만들거나 해산시켰다.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힘, 역량, 미감에 대한 견고한 신뢰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정신을 거부하도록 만든 식민사관과 서구중심적 사대주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격하는 입장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사실상 민족주의가 온전히 실현되었던 적조차 없었는데, 그 민족주의를 해체한답시고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무차별적으로 수입해오는 후배들에 대하여 개탄을 금치 못한다.

최열은 자신의 미술사관을 진실하게 실천했고 심지어 정권의 탄압으로 책이 불타 없어지거나 감옥에 갔다 오기도 했다. 자신의 본명을 숨긴 채, 최열이라는 필명으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졌다는 것 자체가 그 수난사를 증명한다. 그의 생각이 옳았는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 다를지라도 그가 보여준 신념에 대한 진실한 실천만큼은 누구나 존중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나는 최열이 매우 우려할만한 서구 사대주의자이자 포스트모더니스트에 가깝기 때문에 그가 보여준 신념들을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특히 나 자신이 한국 미술사에 너무나 무지하기에 이 책의 중심 서술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근대미술사를 바라보는 관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왜 민족을 강조해야만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진심어린 지지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특히 그가 1990년대 초반에 사료들을 수집하기 위하여 국공립도서관들과 대학 도서관들을 전전했던 장면들은 학문에 대한 진솔한 사랑, 그 자체이다. 인터넷과 아카이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잊히기 쉬운 그 땀과 헌신을 늘 상기하면서 존경 보내야 마땅하다. 당연한 듯 넘쳐나는 현 시대의 지식과 교양은 선배들이 그야말로 온갖 시간과 땀을 갈아 넣은 노동집약적 결정체이며, 한때 진리에 대한 접근은 파멸과도 맞닿은 위험천만한 모험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열의 견해대로 민족주의 미술사가 온전히 실현되지도 못한 채 수입된 변질 사상들로 뒤범벅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가 학문에 대한 진솔한 애정으로 하나의 기둥을 견고하게 붙들고 서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견고한 기둥이 역사의 하중을 잘 버텨 주었기에 오늘날 새로운 시각을 가진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학문의 수입업자’들이 또 다른 기둥을 그 옆에 세워둘 수 있었다. 역사의 성전이 언제 어떤 기둥부터 균열을 일으켜 이 모든 성취를 허물어 버릴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현 시점에서는 다양한 기둥들이 균형을 잡고 있는 미술사만이 더 견실하고 발전적인 논쟁들을 촉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역시나 균형은 가장 중요하고, 또 그래서 가장 어렵다.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미술사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고 보아야 하는가에 관한 후배의 질문 선배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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