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의 「갤러리스트」

우리는 위대한 화가들의 뒤에 숨겨진 후원자의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미켈란젤로를 업어 키운 ‘위대한 자’ 로렌초 데 메디치와 반항아 카라바조를 변함없이 후원했던 델 몬테 추기경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왕이든 귀족이든 교황이든 각각의 후원자들은 화가를 통해 자신의 시각적 이상을 실현하며, 자신의 권력과 부를 정당화해왔다. 한 점의 유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값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미술시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에게 후원자는 작품 활동의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서양미술사에서 후원자와 화가의 관계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해술을 비롯한 과학기술에 대한 높은 관심, 그리고 제국주의적 침략과 교역의 활성화는 막대한 부의 창출로 이어졌고, 여기에 개신교를 포용한 북부의 세속적 유연함까지 결합하면서 네덜란드는 빠르게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신흥 부르주아들은 미술의 종교적/정신적 가치나 역사적 정통성 보다는 자신들의 부와 귀족적 생활상을 선전해 줄 수 있는 작품을 원했고, 앞 다투어 대가들의 작품을 수집함으로써 명성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결과적으로 미술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고, 부르주아들은 물론 어지간한 중산층 가정이나 술집, 여관에서도 그림 하나쯤은 걸어 놓을 수 있는 ‘미술 대중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후원자-화가’의 독점적 관계는 ‘화가-화상-구매자’의 관계로 빠르게 재편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서서히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18~19세기를 거치며 이원화된 미술 유통구조를 만들게 되었다. 즉, 왕가나 귀족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후원 체계와 화상에 의한 중개시장이 공존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왕정과 봉건 귀족의 몰락, 계몽주의의 승리, 화상과 근대적 미술관의 정착으로 이어진다. 이쯤에서 다 굶어 죽어가게 생긴 인상주의자들을 먹여 살렸던 뒤랑 뤼엘(Paul Durand Ruel), 그리고 고흐의 동생 테오처럼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상들도 등장하게 된다.

이 책은 미술사에서 간과되었던 갤러리스트들에게 마땅한 찬사를 돌려주기 위한 기획이다. 현대미술의 갤러리스트로서 기반을 다진 7명(팀)과 나아가 새로운 형태의 갤러리를 제안한 혁신가 5명(팀)을 소개하고 있다. 레오 카스텔리(Loe Castelli)로부터 시작하는 현대미술 갤러리스트들의 계보학은 1999년에 창립한 쿠리만수토 갤러리(Kurimanzutto)까지 이어지며 오늘날까지 반세기를 아우른다. 이를 통해서 각 갤러리들의 특징을 강조하며 성공요인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각 갤러리스트들의 배경, 관심사, 학력, 국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목요연한 성공비결 따위를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로서는 딱 하나를 찾을 수 있었는데, 성공한 갤러리스트들은 작품을 거래의 수단으로 삼기보다는 진정으로 작품과 작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에 매진한 결과 자연스럽게 성공의 길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매우 낭만적인 일반화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진정으로 작품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열정을 다해 작품을 중개하는 일에 뛰어들고 컬렉터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작가든 비평가든 컬렉터든 딱 보면 척 하고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갤러리스트가 그 작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확신하는지.

책에 등장하는 많은 갤러리스트들은 그들의 출신성분을 떠나 그저 작품이 좋고, 그것을 소개하는 일이 좋아서 미술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작가를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라도 장기적으로 지원해주었다. 그러한 지원의 열매가 열릴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오로지 성공한 결과물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그들의 성공이 실패를 상쇄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다.

 

만약 작가들이 나와 함께한 첫 15년 동안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내가 그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한 그 다음 15년을 함께할 수 있다.

레오 카스텔리

 

저자는 갤러리스트들의 성공비결을 발견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미술사적 성과를 조명해준다. 가장 인상깊은 성과는 국제적인 가교 역할이다. 갤러리스트들은 국제적인 아트 페어에 참가하거나 비엔날레를 후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 직접적으로 지점을 내면서 소속 아티스트를 백방으로 소개한다. 이는 수익을 다변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미술애호가들에게는 지역적 한계에 의해서 볼 수 없었던 작가와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중화권 미술을 세계 곳곳에 소개한 존슨 창, 멕시코 미술을 미술계 중심으로 다시 끌어 올린 쿠리만수토 갤러리, 무라카미 다카시를 일본 밖으로 끄집어낸 페로탕 갤러리의 사례는 점차 국제화/다변화되고 있는 미술계에서 갤러리의 역할이 더욱 막중해 질 것을 시사한다. 

쿠리만수토 갤러리는 가브리엘 오로스코(Gabriel Orozco)를 중심으로 동료 예술가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모였던 친교모임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여러 가지 창조적인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갤러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내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아마추어 미술사 연구회가 생각났다. 물론 내가 이 책에서 등장하는 갤러리스트들처럼 회사를 때려치우고 갤러리를 차릴 일은 없겠지만, 소수의 창조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예기치 못한 혁신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례만으로도 가슴 속에 묘한 기대감이 생긴다.

다소 많은 갤러리스트들을 한 권의 책에서 집약적으로 소개하기 위하여 글을 거칠게 압축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아예 책 분량을 늘리거나 소수의 갤러리스트들에게만 집중했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좋은 주제이니 만큼 저자의 후속연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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