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두 유형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첫째는 세상에 직접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작품들이고, 둘째는 그보다 초연하게 이상을 지향하는 작품들이다. 단순하게 보면 재현과 추상이라는 표현 형태로 범주를 좁힐 수 있겠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재현을 하면서도 눈앞의 현실을 외면할 수 있고, 추상을 하면서도 그 마음은 현실의 부조리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의 경향은 단순히 형식만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고, 작가들의 욕망과 표현 방법도 저마다 제각각이다.
가령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의 미니멀리스트들에 대해서 혹자는 민초들의 아픔에 대해서 눈을 감았다고 비난하고, 혹자는 그것이 분노와 저항을 표명하는 그 나름의 방법이었다고 옹호한다. 작가 자신 외에 그 속내를 누가 알 수 있을까? 설령 그 작가가 ‘이것이 내 속내요’라고 말한들 우리가 그것을 어찌 믿을 수 있을까? 결국 우리가 누군가의 속내를 알아 낼 수 있는 방법은 오랜 시간 동안 그 사람의 언행을 꾸준히 관찰하는 방법뿐이지 않은가?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 작가라면 그 방법 역시 통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국립현대미술관은 자신들의 소장품을 두 가지 세계관으로 묶어서 제시했다. 대체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형식’ 측면의 선입견에 입각해서 구분 해 놓은 듯하나, 어느 한쪽을 비난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그 교묘함을 발견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진짜 재미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 전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관람자 스스로가 작품과 배치에 비판적인 시선을 들이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를 계속적으로 성찰해보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는 주세균의 「NOTIONAL FLAG」가 재미있었다. 총천연색의 모래로 갤러리 바닥에 각 국의 국기를 정교하게 표현한 설치작품이다. 동시에 한 쪽에서는 그 작품을 빗자루로 쓸어서 해체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저 정교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를 감탄하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전시가 끝나는 순간 그 모든 노력이 이렇게 여지없이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결국 국가라는 선명해 보이는 관념이 그리 영원하지도, 숙명적이지도 않다는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은유를 담고 있다. 어찌보면 너무나 명쾌한 답이라서 재미가 반감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총천연색의 국기를 내려다보는 조형성 자체가 미적 쾌감으로 다가오고, 언젠가 다가올 소멸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동시에 즐겨보고 싶다는 얄궂은 욕망이 이 작품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가 애써 도미노를 쌓는 이유는 결국 송두리째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닌가?
분노와 저항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는 주장이 맞으려면 작가들의 삶도 같이 봐야할거에요 ㅎ 단색화 관련해서 이런 내용의 논문 있었던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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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죠. 다만 어떤 사람을 그렇게 객관적으로 치밀하게 관찰한다는 것이 힘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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