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展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제목에 매우 충실한 전시다. 약 300여점의 사진을 통해 동시대 인류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다각도로 고찰했다. 지역, 인종, 젠더, 종교를 망라한 작품들은 넓은 공간 속에 자유롭게 펼쳐져 있고, 관람객들은 느슨한 동선을 따라 그 사이를 유영할 수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하나의 키워드에 묶여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 키워드에 연관된 사유만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이 매우 복잡다기했던 만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도 각자 처한 위치와 배경에 따라 중구난방으로 가지를 뻗는다. 우리 자신이 ‘현대 문명’에 전적으로 귀속되어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자각하면서, 개별 사안들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지 자문하게 되는 구성이었다.

인상적인 장면은 1원형 전시실로 들어가자마자 펼쳐진다. 흰색의 금속 프레임을 장방형으로 겹겹이 포개진 선형적 구조물에 다양한 크기의 작품들이 제멋대로의 방향과 높이로 매달려 있다. 캡션은 작품의 뒤로 숨었다. 그래서 관람자는 선명한 텍스트가 으레 가져오는 사고의 제약으로부터 당분간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분명 우리와 같은 토지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경한 풍경들을 마주하면서 당혹감과 친근함 사이를 오간다. 이 작품을 매달고 있는 흰색의 프레임은 강박적인 흰색과 층층이 쌓아 올린 선적인 형태 자체로 이미 문명을 상징하고 있다. 이것은 인류가 쌓아 올린 기념비적 건축물의 골격이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의 하중을 떠받치고 있는 인류의 은유이기도 하다. 고도의 기술적 진보가 뒷받침되어야만 실현될 수 있는 창백한 흰색은 인류가 자연의 때를 벗어버리기 위하여, 혹은 은폐시키기 위하여 노력했던 유구한 시간을 함축한다.

이제 몇몇 작품들을 살펴보자. 뱅상 푸르니에(Vincent Fournier)의 「도쿄 빗물배수거 #1, 일본 사이타마 현 ‘여행사’ 연작(2009)」은 어두컴컴한 배수거 아래에서 작업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 세 명의 노동자를 비춘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물리적 생태계는 평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헌신에 기대서 돌아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그 영역을 간과하고 살아간다. 심지어 우리는 그 무성했던 가을 낙엽이 배수로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간과할 때가 많다. 이 작품에서 브론토 사우르스의 뒷다리만큼이나 장대하고 무심한 어느 콘크리트 기둥 아래에 초라할 정도로 미약하게 대비된 존재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구어 놓은 기념비에 오히려 파묻혀 소외되어버린 우리 자신을 암시한다.

에드워드 호퍼(1931), 호텔룸

래리 술탄(Larry Sultan)의 「샤론 와일드, ‘계곡’ 연작(2001)」은 현대 서구인에게 익숙한 공간 속에 헐벗은 모습을 드러낸 고독한 인물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간과 인물의 조합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회화를 상기시키는데, 우리가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아마도 격렬한 섹스 후에 찾아오는 짧은 휴식과 일상으로의 복귀 사이 그 어디쯤일 것이다. 그래서 이 사진들은 그 장면의 전후 관계에 대한 무수한 내러티브들을 구축하도록 요구하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각자의 추억과 인연을 상기시킨다. 속옷만 입은 채 여행가방을 내려놓고 지저분한 싸구려 침대의 끝자락에 앉아 있는 저 여성에게는 어떠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룸(1931)」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이 장면은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라기보다는 원치 않는 여정을 일단락하려는 순간에 가까워보인다. 먼 친척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유해를 확인하기 위해 사건 현장 인근의 호텔로 날아온 밤일까? 애인의 이별통보를 받아들고 어떻게든 붙잡아 보기 위해 말도 없이 애인의 직장 인근 싸구려 모텔을 찾은 것일까? 중요한 것은 저 여인의 진짜 사연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구성한 내러티브가 무엇인가이다. 관람자의 마음속에 엉성하게 구성된 내러티브는 아마도 관람자 자신이 그리고 있는 삶의 궤적을 투영할 것이다.

제프리 밀스테인(Jeffrey Milstein)의 「카니발 센세이션, ‘크루즈 선’ 연작(2013)」은 ‘탈출(ESCAPE)’ 세션에 있다. 이 세션은 현대인들이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기분을 전환하는 장면들을 다룬다. 크루즈 여행은 모두가 한번쯤은 꿈꾸지만 결국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호화 관광의 ‘끝판왕’처럼 여겨지고 있다. 나도 베네치아에서 크루즈 선을 목격했을 때 받은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배의 크기 자체도 인상적이었지만, 갑판에 줄지어 선 탑승객들이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서 항구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실로 무심하고도 배타적인 것이었다. 어느 한 곳에도 오래 정박하지 않는 크루즈의 특성은 그것이 품고 있는 관광객들의 찰나적이면서도 유희적인 시선과 맞닿아 있다. 제프리의 사진은 그 크루즈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의미가 도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앵글은 우리의 일상적인 눈으로 구현할 수 없기에 생경하게 다가오는 것이지만, 그 조형적인 특성 자체로도 새로운 생각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칠흙 같은 망망대해를 느릿느릿 부유하는 크루즈 선은 나사(NASA)에서 제공하는 로켓이나 우주왕복선 자료사진과 너무도 닮았다. 속도, 활용공간, 제작목적이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두 ‘탈 것’이지만 터무니없는 욕망의 집약체라는 점에서 두 물체는 분명 닮았다. 로켓이 지구에 국한된 정주욕망의 탈출(ESCAPE)을 의미한다면, 크루즈 선은 견고하게 뿌리 내린 일상적 토대에 대한 망각과 탈출을 상징한다. 인류가 미지의 세계로 발을 딛는 매 순간의 진보는 지금도 대양과 대기권 밖에서 끝없이 이어지며 밋밋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삶의 목적을 찾도록 독촉한다.

로저 에베르하르트(Roger Eberhart)의 「‘표준’ 연작」은 16개의 사진 쌍으로 아주 간명한 의미를 전달한다. 작가가 직접 방문한 16개 도시의 전경과 호텔 객실이 쌍으로 묶였다. 좌측의 도시 전경은 해당 도시의 역사와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여 매우 특징적이며, 몇몇 도시의 이름은 거기 가보지 않고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우측에 보이는 호텔 객실은 매우 ‘표준’적이다. 옷도 벗지 않은 채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푹신푹신하고 새하얀 시트,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채광, 모던한 감각이 돋보이는 머리맡의 스탠드 조명, 미니멀한 벽채 인테리어 등 각 호텔의 내부 사진은 너무나 동질하기 때문에 설령 작가가 착각해서 몇 개를 뒤바꿔놓는다고 해도 우리로서는 알 턱이 없다. 유럽이 기틀을 다지고, 미국의 특정 가문이 자신의 성을 따서 획일화 해 놓은 호텔업계의 표준은 각 국가의 맥락에 따라 조금씩 수정되었다고 한들 큰 틀에서는 똑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시행착오로 그러한 표준이 자리를 잡게 되었겠지만, 이미 표준화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의문이 남을 수 있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최적의 상태인가? 다른 가능성은 없나? 나아가 나 자신에게 최적의 조건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가능성을 실험조차 해보지 못했으니까.

이처럼 이번 전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에 대하여 무수한 생각들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실로 견고해 보이는 현 시대의 조건들 속에서 껍질을 깨고나올 여지가 정녕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이곳 전시장을 서성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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