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展 (국립고궁박물관)

영토는 작지만 존재감은 작지 않은 나라,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컬렉션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국립고궁박물관의 3개 전시실에서 진행된 이번 전시는 왕가의 미술, 가구, 무기, 도자기, 취미용품 등 온갖 사치품들이 망라되었다.

‘리히텐슈타인’은 대공 집안의 성(姓)이면서 동시에 그 대공이 다스리는 국가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처럼 군주의 이름과 국가명이 일원화된 형태는 역사적으로도 흔치 않다고 한다. 이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로부터 대공으로 승인받은 한 가문이 국가로서 리히텐슈타인의 출발점이었으며, 여전히 그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한 유럽 왕가의 컬렉션을 구경하는 수준을 넘어서 한 국가의 (고급) 문화를 전반적으로 간접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2층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한다면 왕가의 계보를 공부할 수 있는 ‘로열 초상화’들을 만나게 된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500여년의 흐름을 한 눈에 놓고 보면, 아카데미적 화풍의 변화에 따라 대공을 묘사하는 방법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어서 대공 가문의 군사적 역량을 보여주는데, 주로 신성로마제국군이나 오스트리아군에 파병 형식으로 지휘관을 보냈던 역사가 펼쳐진다. 나름 군사적 성과가 높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소국에서 대공 지위를 공고히 하려면 다른 지휘관들에 비해서 더욱 맹렬히(?) 전투에 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어서 무기와 사치품이 나타나는데, 왕가의 저택이나 별장의 실내를 묘사한 루돌프 폰 알트의 수채화들은 현재의 인스타그램 인증샷을 연상케 했다.

동화적인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그리고 은은한 조명이 실내로 쏟아져 사치품들을 비추는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림 속에 등장하는 물건이 실물로 전시되면서 더욱 입체적으로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여러 컬렉션 중에서도 중국 백자를 나름대로 재해석한 물건들이 시선을 끌었다. 동양의 소박한 청화백자에 유럽 특유의 금박 장식을 더하니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동서양의 융합적 미학을 탐색한 시도로서 본격적인 19세기 오리엔탈리즘보다 앞선 계보에 위치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두 번째 전시장에서는 도자기들과 식사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마이센 도자기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자체 공방을 차려 놓고 도자기를 제작했다고 하는데, 동양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여서 로코코와 고전주의 풍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작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강력한 의지로 설립되었던 마이센 도자기 컬렉션을 접했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그 계보를 잇는 유럽의 ‘도자기 동경사’의 일부로 느껴졌다. 확실히 유럽 도자기 2세대여서 그런지 몰라도 훨씬 화려하고 독자적인 장식의 아름다움이 원숙한 느낌이었다. 개별 도자기와 식기 세트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식탁 세팅을 보여준 것은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돕는 부분이었고, 기획자의 공로가 느껴졌다. 

특히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의 <큐피드(1523-1524)> 모작이 그려진 접시는 빈 미술사박물관에서 원작을 보았던 추억과 맞물려 더욱 인상 깊었다. 르네상스의 대가들이 모든 것을 완성해 버려서 어쩔 수 없이 늘어지는 관능성을 표현했던 저 마니에리스모의 육체처럼, 그것을 담고 있는 도자기도 화려함의 극치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파르미자니노의 그림을 품은 것 같다.

끝으로 1층에서는 왕가의 취미였던 말 사육과 사냥을 다룬 그림과 도구들이 전시되었다. 마치 지금 람보르기니를 인증하는 졸부들처럼, 당시의 왕가는 윤기가 좔좔 흐르는 종마를 인증하면서 부와 취미를 과시하고 사냥을 통해서 결속을 다졌다. 이 두 행위는 자연을 사적으로 전유하고 지배할 수 있으며, 그것을 함께 수행하는 자들 간의 동맹을 통해서 지배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말에게 굴레 씌우는 법’을 직접 교범으로 만들어서 후손들에게 전수했던 군다커(Gundaker von Liechtenstein)의 목적은 분명하다. 바로 이 아름답고도 견고한 동맹을 계보로서 영속화하겠다는 것이다.

회화 컬렉션 중에서는 귀도 레니(Guido Reni)의 <사도 요한(1640)>과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Élisabeth Louise Vigée-Le Brun)의 <카롤라인 초상화(Portrait of Princess Karoline of Liechtenstein, 1793)>가 주목할 만하다. 딱히 두 작품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작가의 이름값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두 화가의 작품을 동시에, 그것도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이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의 <알로이스 왕자비 초상(1875)>이 마음에 들었다. 파리에서 인상주의자들의 규합이 공식화된지 약 10년 후, 빠른 붓놀림으로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 기법은 어느새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인상주의와 사진이 아카데미즘을 위협하던 그 시기에 마카르트는 역사화가이자 왕실 초상화가로서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의 타협이 엿보인다. ‘존엄하신 분’의 용모는 그대로 둔 채, 화려한 복식은 거친 붓질로 서서히 추상화되고 있다. 정원의 수풀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사진의 아웃포커싱 기법처럼 마카르트의 화면은 얼굴과 장갑을 제외하고는 뿌연 안개 속으로 흩어지는 것 같다. 새로운 미감을 반영한 이 작품은 복식과 얼굴의 대비가 주는 묘한 긴장감을 조화롭게 활용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훌륭한 전시였지만, 리히텐슈타인의 일반적인 시민들의 생활상을 다루는 영역이 있었다면 훨씬 유익한 전시가 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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