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선규의 「서양 미학사의 거장들: 감성과 예술을 향한 사유의 시선」

개별 사상가들의 핵심을 추려 모은 책들이 시중에 깔려 있다. 나도 원전을 읽을 용기는 없기 때문에 그런 책들을 많이 읽어 봤지만 사실상 만족했던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유의 세계란 깊고도 넓은데다가 여러 추상적 관념들이 다층적으로 뒤얽혀있는지라, 요점만 모아 놓으면 온전한 맥락에서 괴리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니체 이후로 넘어오면 글의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어떤 진리를 체감하게끔 의도한 저술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런 책을 번역 후 요점정리하면 오해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진짜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몸으로 와 닿지도 않는다. 그래서 대체로 ‘사상가 모음집’은 그저 유용한 참고문헌의 원천 정도의 의의만을 지닌다.

그래도 하선규의 이번 책은 유용하고 재미있는 편이다. 「서양 미학사의 거장들」은 미학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녹여낸 짧은 에세이들로 시작한다. 이 에세이들은 대학신문에 기고할 목적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아주 쉽고 명징한 표현들로 기록되었다. 우리가 미학에 대해서 공부할 때 마다 마주치는 가장 큰 장벽은 ‘그래서 도대체 이걸 왜 알아야 하는데?’라는 근본적인 물음일 텐데, 저자는 어느 정도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우리가 견고하게 믿고 있는 이성과 지성은 생각보다 신뢰하기 어려우며, 복잡한 사회에서 몸소 경험하는 매순간의 고뇌와 혼란 속에서 유용한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예술을 음미하고 감성적으로 사유하는 과정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새롭게 재인식할 수 있도록 도우며, 삶 전반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또한 감성적 인간학에 대한 열망과 몰입이 확산될 때, 이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병리적 현상들에 대한 창조적인 대안들도 모색될 수 있다. 이러한 저자의 요지는 20명의 대가들을 시대 순으로 훑어보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뚜렷하게 드러나며,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수많은 대가들이 ‘진정한 미학의 가치’에 한발자국씩 다가가는 과정의 계보학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개별 사상가별로 할당된 분량은 생각보다 짧은 편이다. 375페이지 안에 20명의 사상적 핵심을 간추린다는 것이 애당초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짧은 영역 내에서 핵심을 흥미롭게 간추리기 위하여 저자가 치열한 고민을 했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한 사상가에 대해서 대략 ‘주의의 환기’, ‘사상의 요체’, ‘오늘날 되새겨야 할 의미’ 순으로 접근한다. 서두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그 사상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대략적으로 제시되고, 사상의 요체를 설명한 후 끝에 가서는 그 사상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오늘날의 문제들에 접목하면서 복원하는 것이다. 계몽주의를 뛰어넘어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마저 사그라져버린 오늘날, 고색창연한 과거의 사상가들을 서고에 처박아놓아서는 안될 이유들(어떤 면에서는 ‘면죄부’)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기획의도이다.

한편으로는 공감이 간다. 이미 근대가 해체되어 버린 이후에 태어난 나는 쉽게 말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까기 바쁜’ 우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체의 당사자들은 누구보다도 플라톤, 칸트, 헤겔, 하이데거를 철저하게 읽어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해체할 수 있었다. 다원주의와 후기식민주의의 담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사유의 틀이라면, 그 틀에 이르기까지의 노정을 변증법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반작용’은 결국 ‘작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날의 대가들이 보여준 인간 내면과 예술적 감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 그리고 진리에 대한 진실한 열망과 삶 속에서의 실천들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며, 시대정신의 변화와 무관하게 교훈을 준다. 문제는 언제나 과도한 신비화와 신화화였다.

저자는 존 듀이, 넬슨 굿맨, 아서 단토, 짐멜, 크라카우어, 아비 바르부르크, 에른스트 카시러, 롤랑 바르트, 자크 데리다, 낭시, 디디-위베르만 등을 빼 놓은 점에 대해서 한계로 인정하고 있다. 후속 저술을 기대해 본다.



키워드 학습노트

플라톤: 예술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진리는 결국 스스로 사랑하는 과정에서 깨우쳐 나가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모방의 긍정, 시의 존중, 철학의 낙관

플로티노스: 일자의 빛, 존재론적 층위, 영혼의 구원

중세: 균제와 빛

알베르티: 조화, 융합, 실천

섀프츠베리: 성격과 형상의 조화, 무관심적 관조, 윤리성의 추구

바움가르텐: 감성의 복권

레싱: 동정심과 도덕성, 상상력과 환영, 장르론

하만: 결핍의 실존적 인간, 언어와 이성의 관계 역전. 자연의 신적 계시

헤르더: 감각주의의 모든 역사와 인간학. 조각과 전체

칸트: 능동적 인간의 반성적 판단력

실러: 유희충동과 미적 상태, 예술의 정치철학적 가능성

헤겔: 절대정신의 역사성, 미는 정신으로부터

피들러: 감성적 지각, 이미지의 고유한 인식적 기능

니체: 디오니소스적 생철학, 역사적/문화적 삶의 가능성을 위한 예술비평

하이데거: 시간 속에 걱정하는 현존재, 작품에서 진리 사건을 발견하는 수용자

벤야민: 기술의 양면성과 정치적 가능성

아도르노: 비동일성과 미메시스적 충동, 형식과 내용의 일치

메를로-퐁티: 이원론의 거부, 세계와 소통의 장으로서의 몸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의 조건, 숭고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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