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 展 + MMCA 뮤지엄 나잇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현대미술의 본격적인 미국 상륙을 알렸던 그 유명한 1913년 아모리쇼(Armory Show)의 중심에 뒤샹(Marcel Duchamp)이 있었다. 서명한 변기로 소동을 일으킨 것도 뒤샹이다. 모나리자 엽서에 수염을 그리고 감히 성희롱한 것도 뒤샹이다. 페르소나로 여성적 자아를 끄집어내서 젠더를 비튼 것도 뒤샹이다. 그러고 보니 현대미술의 모든 문헌이 서두에서 그의 이름을 인용할 수 밖에 없다. 잭슨 폴락은 피카소를 두고, “제기랄, 저 인간이 다 해버려서 내가 할게 없잖아!”라고 욕지거리를 날렸다지만, 그 욕지거리의 대상을 뒤샹으로 바꾸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이번 뒤샹 전은 제대로 준비한 전시임에 틀림 없다. 그가 인상주의를 모방하며 회화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표현주의와 입체파의 화풍을 거쳐 다다(dada)의 중심에 섰다가 이내 비물질로 선회하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을 언급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혼자서 이렇게 많은 흔적을 남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던 창조적 괴인을 입체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체스 선수로서의 면모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부분은 신선했다. 아마 더 이상 새롭게 언급될 것이 없을 줄 알았던 뒤샹이 미술계 언저리에 걸쳐 있는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신선함일지도 모른다.

<독신자들에 의하여 벌겨벗겨지는 신부, 조차도(1915-1923)>는 물론 오지 않았다. 대신 이 작품의 개념을 설명하는 미디어가 설치되었고, 개별 상징물들을 단독으로 다루고 있는 사전 준비 성격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신부를 상징하는 기계화된 육체를 눈여겨 보았는데, 이 작품은 뒤샹이 얼마나 성적으로 방종한 환상에 사로 잡혀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게 세상과 대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나 자신도 인간은 동물, 혹은 물질에 가깝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그것을 논증할 지혜나 의지는 없다. 용기는 더더욱 없다. 그저 그렇게 믿음으로써 이성중심적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함, 혼돈, 모순에 대하여 합리화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뒤샹의 기계화된 신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간다. 마치 인간에게 체액을 순환하고, 영양소를 흡수하고, 찌꺼기를 배설하는 기능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듯 하다. (나는 여기서 써야 할 단어를 쓰지 않고 ‘인간’이라고 뭉뚱그려 버렸다.) 우리는 이 정도로 극단까지 갈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기관으로서 인간’을 내동댕이 쳐서도 안 될 것이다.

뒤샹 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이상 없다. 뒤샹은 너무 많은 것을 했고, 무성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무성한 말들을 남겼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마케팅 천재였던 뒤샹의 농간에 놀아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들, 뒤샹에 대한 평가를 함부로 절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뒤샹처럼 되고 싶다고 한들, 모두가 그처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뒤샹의 농간으로 인하여 지금 우리 눈 앞에는 온갖 발자국이 가로세로로 뒤범벅된 설원이 펼쳐져 있다. 거기에 또 다시 새로운 발자국을 찍는 것처럼 재미 없는 일도 없다.

그래도 이번 전시에 대하여 한 가지를 꼭 언급해야 한다면, 최근의 현대미술 전시에서 나를 피곤하게 하는 그 지점을 또 언급해야겠다. 바로 ‘개념의 과잉’이다. 비물질로 전회한 대가를 포괄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글이 많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책장을 덮고 전시를 보러 가는 이유는 감각적인, 즉 신체적인 경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미술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느끼기’ 위해서 미술관에 가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 전시에서 작품에 더 오래 시선을 주었을까, 아니면 설명하는 글들에 더 오래 시선을 주었을까? 설령 글에 더 오래 시선을 주었다고 해도 실패한 전시라는 뜻은 아닐게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품과 나와의 대화에 있어서 ‘글’, 보다 정확하게는 ‘정답’이 꽤나 자주 이간질을 시도한다는 사실이다.

전시보다는 그 이후에 펼쳐진 ‘MMCA 뮤지엄 나잇’이 훨씬 재미있었다. DJ GLOW는 부담스럽지 않은 BGM 성격의 EDM을 깔아 주었고, 이후 김아일과 서사무엘의 공연이 이어졌다. 김아일은 인디한 감성의 랩과 디제잉이 결합된 공연이었다. 서사무엘은 랩과 R&B의 경계를 오가는 보컬을 들려주었는데, 재지하면서도 트렌디한 감각이 더해져 미술관에서 열린 파티의 호스트로서는 제격이었다. 그는 관객 사이를 뛰어다니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디오니소스를 일깨우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공연을 떠나서, 정숙을 요구하는 한 낮의 전시장에서 탈피하여, 와인 한 잔을 들고 리듬을 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묘한 일탈의 재미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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