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랑데부: 이미지와의 만남」

이런 책을 쓰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자질이 필요하다. 의미 없어 보이는 이미지에서 무한한 사유를 끄집어 낼 수 있는 섬세한 눈, 역사/철학/종교에 대한 방대한 지식, 생각나는 무슨 말이건 내뱉을 수 있는 용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용기일지도 모르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섬세한 눈과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떠오른 생각이나 주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전혀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내뱉은 말이 사회 속에서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가치 있는 통찰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 확신을 만들어주는 조건이 앞서 말한 섬세한 눈과 방대한 지식일지 모르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진정한 용기는 그보다 깊고 진실한 애정과 더욱 단단히 맞닿아 있다. 존 버거(John Berger)는 세상, 그 중에서도 낮은 자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용기 있게 자신의 생각들을 꺼내 놓았다. 그리고 그의 문장 마디마디에는 자신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확신이 맺혀 있다. 이 확신은 도서관, 광장, 박물관, 그리고 논밭에서 보낸 지난한 시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존 버거가 24개의 이미지를 만난 후 떠오른 생각들을 24개의 에세이에 실었다. 서로 다른 매체에 기고할 목적으로 썼기 때문에 문체, 접근방법, 깊이, 분량이 모두 제각각이다. 심지어 장르도 넘나든다. 예를 들어, 자신의 어머니를 다룬 자전적 수기(어머니), 미술사-미술비평-문학을 아우르는 지역론(이솝을 위한 이야기), 파리에 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파리를 상상하라), 가시적 이미지와 재현에 대한 생각(직업상의 비밀), 한 편의 초현실주의 소설(곰 한 마리), 세 가지 유형의 드로잉에 대한 개념화(종이 위의 드로잉), 좌절된 노년 예술가의 성이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되는가에 대한 고찰(성감대), 단어의 한계에 관한 자신의 문학관(분노의 곶에서 실종되다), 근현대사 고찰(영혼과 오퍼레이터) 등을 넘나든다. 하지만 이 글들은 결국 공통된 시발점을 지닌다. 바로 이미지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존 버거는 자신이 직접 그린 드로잉에서부터 틴토레토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만났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어떤 글은 이미지를 풀어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어떤 글에서 이미지는 그냥 작은 단초에 지나지 않는다. 어쨋든 존 버거는 그것들과 만났고 그 우연한 만남이 자신의 식견, 지혜, 지식과 조우하면서 즉각적이면서도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게 했다.

랑데부라는 단어가 지니고 있는 찰나성/우연성/일회성의 어감 때문인지 대부분의 글들은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며, 펄떡이는 사고의 흐름, 그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아마도 이는 존 버거의 문학관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떤 단어가 고정적으로 한 대상을 지칭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희의를 품는다. 애매함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부적절해 보이더라도 돌려 말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명쾌한 단어로 표현하려는 순간에 진정한 의미가 파괴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이 에세이에 실린 ‘분도의 곶에서 실종되다’에서 나타나며 소설 「G」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그 덕분에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하여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다 보면 머리가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해가 안가는게 맞다. 우리는 존 버거가 아니니까. 아마 존 버거도 우리가 모든 문장들을 이해해주기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들은 더욱 생명력이 있다. 만약 당신에게 청년 미켈란젤로가 만든 <피에타>에 비하여 말년의 <피에타>가 더 강한 생명력으로 다가온다면, 아마 이 에세이들도 마음에 들 것이다. 존 버거의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을 오롯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다양한 성격의 글들이 여기 실려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서술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들이 읽고 싶은 글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존 버거의 명석하면서도 괴팍하고 불친절한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나에게도 이러한 궤적이 분명 존재했었는데 그것들은 지금 어디로 갔지?’ 라는 의문이 든다. 이제와서 붙잡아 보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 그것들은 이미 썰물에 함께 휩쓸려 나갔고 흔적도 남지 않았다. 혹여 그것들을 기적적으로 붙잡아서 써내려간다고 해도 누구 하나 읽어 줄 이, 이해해 줄 이, 주석을 달아 줄 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존 버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똑똑하지도, 열정적이지도, 부지런하지도, 진실한 애정이 넘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용기가 없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이유이다.

질서보다는 정의를, 정의보다는 사랑을… (223p)

존 버거의 「랑데부: 이미지와의 만남」”에 대한 답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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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섬세한 눈과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떠오른 생각이나 주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전혀 별개의 일‘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좋은 블로그를 알게 되어 기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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