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희의 「강자의 조건: 군림할 것인가 매혹할 것인가」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사장이 예하 임원들에게 선물할법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을 받은 부서장이 이 책의 메시지에 따라 관용과 포용의 자세를 내면화하여 부하들을 대하게 될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설령 그들이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온전히 실천에 옮긴다고 해도 정작 책을 선물했던 사장님이 예쁘게 보아 줄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관용과 포용의 리더십은 조직 문화 전반의 합의를 필요로 한다.

세계사 속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국가들의 공통분모를 찾아보자는 것이 이 책(그리고, 원작 다큐멘터리)의 기획의도이다. 제작진이 발견한 공통분모는 관용과 포용의 자세였다.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인접 국가를 침략한 후 피지배민족에게도 차별 없는 시민권을 부여하여 원로원이나 지배자로까지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몽골도 유럽의 기술자와 지식인들을 등용했으며, 칸 주최의 종교 토론을 개최할 정도로 열린 사고를 보여주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종교탄압으로부터 내몰린 유대인, 이교도, 신교도를 모두 포용하여 지리적 악조건을 극복하고 17세기의 맹주로 거듭났다. 미국은 이민자를 수용하고 흑인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되돌려주는 지난한 과정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세계최강국으로서 입지를 굳건히 세울 수 있었다.

페트라르카가 “역사에 로마의 찬미가 아닌 것이 있는가?”라고 물었듯, 모든 역사는 결국 승자들의 기록이고, 모든 성공의 공식들은 때늦은 결과론이다. 저자는 세계 제국의 공통점으로 관용과 포용을 들었지만, 그 밖에 기술혁신을 들던, 앎의 의지를 들던, 리더십을 들던, 끼워 맞추는데 무리는 없다. 어쨌든 강자의 조건이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만 이해하면 될 것이다.

EBS에서 기획해서인지 폭넓은 대중에게 소구할만한 편안한 문체로 쓰여 있다. 역사 공포증이 있는 독자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짚어내는데도 도움이 될 만하다. 이와 유사한 역할을 했던 책으로는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의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가 생각난다.

그런데 ‘EBS 다큐프라임’을 활자화한 책임에도 왜 저자명이 PD 개인 이름으로 찍혀 있는지 모르겠다. PD가 가장 중요한 총괄책임을 지긴 하지만 특정 방송 프로그램에는 작가와 촬영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모두의 공헌이 있지 않나? 물론 감사의 글로는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만 나라면 서운할 것 같다. 왜인가? PD가 강자이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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