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개인전: 식물에도 세력이 있다 展 (역삼 소피스 갤러리)

우리가 식물의 생명력을 느끼는 순간은 아마존 거대 밀림의 장관을 볼 때가 아니다. 오히려 콘크리트 벽이나 보도블럭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민들레의 춤사위를 볼 때 그것을 분명하게 느낀다. 갸냘프기 짝이 없는 민들레 씨앗 하나가 바람에 날릴 확률, 그리고 허공을 유영하다가 그 작은 틈새로 들어갈 확률, 적절한 압력이 작용해 뿌리를 박을 확률, 최적의 영양소와 일조량을 만나서 발아할 확률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조화를 이루어낸 기적 같은 순간이다. 민들레가 유독 아름답기 때문에 눈에 띄었을 뿐이지 사실상 기적은 도처에 널려 있다. 풀은 인적이 드문 길을 알리는 가장 분명한 표지이다. 그리고 산 속에서 걸어도 좋은 길과 걸어서는 안 되는 길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이정표이기도 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내 풀은 스멀스멀 올라온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이러한 식물의 속성에 진저리를 쳤던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제초작업이라고 일컫는 그 행위는 인적이 없을 수밖에 없는 곳을 굳이 휴머니티의 공간으로 환원하기 위하여 이루어지곤 한다. ‘우리는 이렇게 외진 곳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철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군 부대에서 여름 내내 돌아가는 예초기 소리를 번역하면 대략 이런 뜻이다. 예초기가 돌아가면서 잡풀들이 베여나갈 때 쌉싸름한 녹즙향 같은 것이 퍼져나가곤 하는데, 옆에 있던 식물들이 그 냄새를 맡으면 나름대로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적이 있다.

모든 생명체의 지상과제가 종족 보존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식물의 생명력에 대하여 새삼 놀랄 이유도, 언급할 여지도 없다. 어찌보면 인간이 느끼는 그러한 놀라움은 얼마나 가증스러운 감정인가. 애초에 말도 없고 저항도 없는 그들의 땅을 강제로 찬탈한 주제에 그들이 가까스로 보여주는 저항의 몸짓에는 짐짓 놀라는 것이다. ‘와~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자라날 수가 있을까? 정말 대단한 생명력이네. 하지만 보기는 안 좋으니 결국 뽑아야겠지…’ 하지만 정작 이러한 속내는 애초에 그 대지를 점유하고 있던 풀들이 인간에 대해서 한 때 품었던 감정인지도 모른다.

김유정의 「식물에도 세력이 있다」展은 그러한 식물의 생명력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만약 그녀가 프레스코와 ‘긁기’를 접목한 독특한 기법을 차용하지 않았다면 환경 캠페인 같은 따분한 느낌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제는 미술사적으로 거의 사장되어 버린 프레스코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동시대 갤러리에서 구현했을지 궁금했고, 참신한 시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프레스코 작업을 살펴보니 내가 생각했던 미술사 교과서 속의 프레스코가 아니었다. 명암의 대비 만으로 구성된 화면은 에칭이나 드로잉과 닮았고, 집요하게 긁어낸 자국은 완전한 평면이라기보다는 부조에 더 가까워 보였다. 노동집약적인 작업 시간을 암시하는 화면에서 소재에 대한 작가의 확신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식물을 존중하고 아끼자’ 차원의 환경 캠페인이었다면 이런 작업을 할리가 없다. 식물을 통해서 세상을, 인간을, 작가의 내면을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에 지난한 인고의 시간을 견뎠으리라.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어디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존재, 나약해 보여도 조금만 방심하면 이내 모든 것을 뒤덮을 수 있는 존재, 생명의 근원이면서 가끔은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는 존재, 언제까지고 아낌 없이 내 줄 것 같지만 결국은 심판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 가장 흔해 빠진 소재일지도 모르나 오히려 철저히 간과되어 온 식물을 통해서 자신만의 사유를 끄집어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가의 칼 끝에 맺혀 있다.

세력도원_Plant Kingdom(2018)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업은 독특한 프레스코들이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작품은 <세력도원_Plant Kingdom(2018)>이다. 작가가 직접 쓰던 가구와 각종 집기류에 틸란드시아(Tillandsia)를 빈틈없이 뒤덮었다. 프레스코와는 전혀 다른 매체와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촘촘하면서도 균질한 두께로 덮은 장인정신이 작가의 일관된 성향을 다시금 드러낸다. 빈틈없이 질식당한 집기는 오로지 인류만을 위하여 봉사하는 공간을 구축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신뢰를 전복한다. 모던한 화이트큐브에 이질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식물의 연대는 적나라하게 신체의 감각에 소구하면서 왜 굳이 설치 작업이 필요한지를 정당화한다.

작품의 주제와 상관없이,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삼겹살에 파절이를 잔뜩 얹어서 먹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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