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아침’에 건내는 작별인사

예술의전당 맞은편 우측 골목에 숨겨진 ‘고종의아침’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7~8,000원대의 에스프레소 음료에서부터 2만 5천원짜리 게이샤 커피까지 구비한 핸드드립 전문점이었다. 예술의전당을 배후지로 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딘지 모르게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와 같은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꾸밈 없는 소박한 인테리어와 명료한 조도가 커피에만 집중하는 장인의 공간 다운 기품이 느껴지던 곳이었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은 요즘 카페들과는 달리 좌석으로 메뉴판을 가져다 주고 주문을 받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던 우아한 카페였다.

나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이나 전시를 보는 날이면 어김 없이 서둘러 집을 나와 이곳을 찾았다. 점심은 6천원짜리 예술의전당 구내식당 밥을 먹더라도 커피는 반드시 여기서 즐겼다. 행인들의 눈에는 비교적 쉽게 띄지 않는 고종의아침을 찾아 커피 한 잔에 쿠키 한 조각을 곁들이면, 마치 숨겨진 보석을 나홀로 향유하는 것 같은 알량한 우월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경망스럽게도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언제나 커피 보다는 쿠키 쪽이었다. 주문하는 동시에 오븐에서 갓 구워 커피보다 늦게 나오기 마련인 이 쿠키는 다소 인내심을 요한다. 반가운 마음에 허겁지겁 집어들면 안 된다. 갓 나온 상태에서는 뜨겁기도 뜨겁거니와, 매우 무르기 때문에 축축 늘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너무 뜨거운 상태에서는 미각이 마비되는 탓에 본연의 질감과 맛을 느끼기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쿠키가 테이블에 놓인 후에도 커피를 즐기며 2분 정도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시간이 흐르면 쿠키의 표면이 적절히 굳으면서 바삭한 질감이 살아난다. 하지만 안 쪽은 촉촉함과 포근함이 여전히 살아 있다. 바로 그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쿠키를 한 입 베어 물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사실상 그 날의 목적은 다 이룬 것이나 다름 없다. 그날 보려고 했던 것이 공연이든 전시든 내 알 바 아니다.

‘고종의아침’이 왜 폐업했는지는 알 수 없다. 폐업을 보도한 한 언론은 스타벅스로 대변되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의 확장이 요인인 것처럼 적어 놓았는데, 기사 내용 중에 관계자를 인터뷰한 내용도 없기에 어떠한 근거로 그렇게 추정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대다수가 추측하는 가장 보편적인 원인을 상정해서 기사를 썼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기사의 내용이 맞다면,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선택의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소비자(≒모든 인간)들은 눈 뜬 직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끝없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자유의 박탈을 의미하기에 인간 존엄성에 대한 위협으로 읽힐 수 있지만, 한편으로 무한한 자유도 그다지 달갑지는 않다. 우리는 늘 자유와 구속의 절충적인 지점을 원한다.

지금 우리에게 선택가능성으로서 카페는 무한한 자유 쪽에 가깝다. 지금 대한민국 어디에나 눈을 돌리면 교회, 편의점, 그리고 카페가 있다. 그 많은 카페 중에서도 익숙한, 검증된, 안정적인 선택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다. 주변에서 개인 사업자들의 카페나 음식점이 하나 둘 프랜차이즈 카페로 간판을 바꿔다는 모습을 보면 그러한 확증이 굳어진다. 저 기사도 그러한 배경에서 쓰였으리라.

고종의아침도 그렇게 사라진 것일까? 알 수 없다. 사장님의 공식발표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사라져버린 고종의아침을 기록해 두어야 하는 두 가지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는 그 특별한 장소에 얽힌 내 추억을 (반영구적으로) 박제하기 위함이다. 둘째는 이 글이 어떠한 형태로든 퍼져 나가 사장님에게 전달되어서 ‘고종의아침: 시즌 2’를 개점할 수 있도록 용기를 드리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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